부제: 사고
합격 통보 이후 부지런히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곧 아이 출산이 임박한 동생네에게 갈 한 트럭. 아이 침대, 옷장부터 시작해서 각종 전집까지. 아이 방과 거실이 휑해졌다.
크지도 않은 내 옷장에서도 무언가 꾸역꾸역 나오기 시작했다. 옷에 지대한 관심이 있던 터라 미어질 듯이 터지기 일보직전의 무더기들을 모두 침대에 뿌려 놓았다. 먼지와 함께 감당도 못할 짐들이 쏟아졌다. 결혼할 때 받았던 예물 가방부터 시작해서 처녀 적부터 사 모든 가방들 그리고 장신구, 원피스, 블라우스.
지역 커뮤니티에 전부 내놓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람들이 우리 집을 오고 갔다. 문지방이 마르고 닳도록. 사람들은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값이 나가는 물건들을 헐값으로 팔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글을 올리는 내가 무척이나 신기했던 모양이다. 돈이 안되면 아이가 먹을 우유나 빵으로 교환을 했다.
그렇게 집은 텅텅 비어만 갔다. 이제 남은 건 식탁, 소파, 세탁기, 냉장고, 침대.
모두 중고샵에 헐값으로 팔아넘길 때쯤... 어디 찬장 깊숙이 넣어둔 작고 반짝이는 것들이 눈에 띄었다.
'아이의 돌반지'였다. 금방울, 금팔찌, 금두꺼비.. 금으로 된 열쇠.
가까운 금은방에 찾아가 떨리는 손으로 건네주었다.
"이걸 다 파시게요?"
금은방 주인이 다시 되물었다. 사정을 묻지 않았지만 눈은 빤히 나의 얼굴에 향해 있었다. 고개를 떨구고 최대한 많이 쳐달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나에게, 금은방 주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네. 제가 다 매입해 드릴게요. 그런데 이 반지 하나는 꼭 가지고 가세요. 나중에 기억하고 싶은 날이 있을 거예요. "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빨간 눈을 겨우 가리고 급하게 가게를 빠져나온 나는, 그 동네 놀이터 그네에 앉아 단 하나 남은 그 작고 작은 금반지를 손에 쥐고, 한참을 고개를 떨구고 울었다. 깊은 찬장 속에 넣어 두었던 아이 돌반지들은 아이가 결혼할 때까지 손대고 싶지 않아 내 기억 속에서도 지우려고 찬장에 보관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나는 아이와 함께 갈 비행기 값이 필요했다. 부끄러움 때문이었을까 혹은 베풂만이 있어야 할 엄마가 아이가 태어나 처음 가져보는 값나가는 것에 손을 댄 당혹스러움이었을까. 그 속을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한번 내려앉은 마음이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미국 여행을 간다며 신이 나 있는 아이에게 반지를 판 돈에서 김밥을 사 하나를 입에 넣어주며 말했다.
"우리 미국 여행이 많이 길어질지도 몰라. 우리 비행기 타고 멀리멀리 가자."
대학원에 장학금 신청을 하고, 며칠이 지나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오늘 일진 좋은데!' 하며 입꼬리를 실룩실룩 하던 날이었다. 해가 저물고 아파트 복도에 슬슬 땅거미가 질 무렵, 된장국에 하얀 쌀밥을 고슬고슬하게 지어 올리고 있던 어느 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떡해..."
엄마가 울었다.
살면서 엄마가 우는 일은 거의 없었다. 정말 없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 엄마 알아듣게 설명해 봐."
"아빠가 사고가... 크게..."
그랬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대전을 간 엄마는 갑자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
오랜만에 친구와 자전거를 타러 가신 아빠에게 큰 사고가 나 생사를 가늠할 수 없다고 했다.
머리가 아득해졌다.
급하게 아이를 둘러업고 가방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이래야 내 인생 답지...'택시에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에 단 30분만 면회가 허락되는 중환자실.
하루에도 생사를 가르며 튜브와 생명연장장치가 사방에 매달려 하늘에 대고 울부짖는 공간.
친척들이 엘리베이터 앞에 진을 치고 서 있었다. 휴지 뭉텅이를 쥐고 있던 엄마는 내 얼굴 보자마자 오열하기 시작했다. 이모들도 빨개진 눈을 가리며 내 손을 잡았다. 희한하게 슬프지 않았다. 아빠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저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갑작스러움과 당혹스러움이 컸다. 중환자실 주위에는 환자들의 가족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울고 있었다. 엄마에게 줄 휴지를 뽑아 든 나는 그대로 울고 있는 그들에게 전해주기 시작했다. 후에 그 광경을 보고 눈을 흘기던 이모들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나를 두고 '독한 년'이라 곱씹었다고 한다.
공감. 눈물. 슬픔. 걱정은 나에게 그다지 다가오지 않았다.
그저 둥그스름한 사건이 뾰족하게 형상화되면서 앞으로 어떤 전개가 펼쳐진 것이고 당장 내가 이 순간 해야 할 일만 생각이 났다. 아빠를 살려야 하는 담당의사가 누구인지 확인해야 했으며, 실비 보험은 어디 것을 어떻게 들어놓았고, 총 수술비와 입원비는 얼마를 예상해야 하며, 가장 잘 고쳐 줄 분야의 최고 의사 선생님을 선택하고 예약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결정해야 하고 처리해야 했다.
당횡스러웠지만 당황스럽지 않았다.
이 비슷한 것을 바로 직전에 해냈던 것이 기억이 났다.
-바로 미국 대학원 입학 준비 과정이 나에게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