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벽창호

부제: 미국 대학원 본격 준비

by Root Scent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언제나 옳지 않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시작은 일단 하고 나면 끝을 볼 때까지 지나치게 많은 과정과 시행착오가 있음은 물론, 수백 번의 이불을 걷어차는 순간이 덧입혀져야 가까스로 남들이 말하는 절반 정도에 가까스로 다다를 수가 있었다. 그런 내가 공부라고 어디 다를 것이 있었겠는가.


애초에 영국 영어를 쓰는 나라에 입학 원서를 염두에 두고 있어, 토플보다는 IELTS가 낫다는 판단이 섰고 일주일 뒤, 처녀 때부터 모아놓았던 비자금으로 학원 등록을 했다. 3개월간 결석, 지각이 허락되지 않은 곳이었고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마치 고등학생처럼 꽉 짜인 스케줄 안에 스스로를 만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옆자리 사람과 잡담 혹은 인사도 금물이었다. 오로지 모든 과정은 IELTS 점수만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었고 나 자신도 이를 목표로 했다.


물론 처음에는 다소 설레는 감으로 시작을 했다. 대학원 졸업하는 달 아이를 출산하고, 3년 만의 학업이었으니 멋모르는 아주미는 '공부한다'는 명목 아래에서 마음껏 상상을 했을 것이다. 3개월 까짓것 좀만 고생하면 그 점수받고 얼른 탈출하자!! 할 수 있다며 메어든 가방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단어시험, 듣기 평가, 리딩 그런 것 하등 장애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열심히만 하면.


준비하던 중 목표하던 학교가 바뀌었고, 행선지는 영국과 호주에서 미국 상경 대학원이 되었다. (학업이 아닌 미국 내 취업이 목표였으므로 나의 목표는 박사과정이 아닌 MBA가 되었다.) 대부분의 미국 학교는 토플과 GRE 혹은 GMAT를 보는데 내가 가려고 했던 대학원에서 요구하는 입학조건은 최소 IELTS 7.0 , GMAT 700점을 요구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합격 조건이니 반드시 넘어야 할 산 정도로만 생각 헸다. 그 점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고 비루하고 일천한 내 머리로 얼마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지 그 흔한 후기 하나 찾아보지 않고 정말 무식하게 문을 두드렸다. 열려라 참깨도 아니고.


'한 6개월 정도 잡고 고3 마음으로 접근하면 되겠지 '

지금이라도 당장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제발 그 마음 접으라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며 말이다.



추천서를 받기 위해 간 교수님의 연구실 (정신 없..)

사실 점수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졸업한 학교에 찾아가 교수님의 추천서를 받는 과정도 포함되어 있다. 학부 졸업한 지 내일 모레 10년이 다 되어가고, 대학원 졸업한지는 3년이 다 되어가는데 학교에 다시 찾아가 교수님 3분의 추천을 받으라니... 사실 나는 이 과정도 정말 어려웠다. 학교를 다닐 때.. 사실 나는 졸업하면 뭐라도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아니 어렸을 때 생각했던 '훌륭한 어른' 도 바라지 않았다. 나의 일을 가지고 내가 밥벌이를 하면서 가방끈 썩히지 않고 씩씩하게 아이를 키우는 그런 엄마 정도는 되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반찬값 아끼고 아이에게 나가는 돈 한 푼 가계부에 적으며 고지서에 한숨 내쉬며 졸업장 따위 옷장 어디 한 구석에 처박아 두고 '아.. 세월이야' 하는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눈가에는 주름이 까마귀 발처럼 금이 가 있었고 청바지를 입으면 구석구석 살을 비집어 넣어도 꾸역꾸역 나오는 머핀 살이 정겨운 그런 아주머니 말이다. 그런 내가 두꺼운 검은색 패딩을 껴입고 한 손에는 아이를 들고 교수님을 뵈러 간다는 사실이 나는 그토록 부끄러웠다.


이 외에도 SOP(Statement of Purpose)가 있다. 대학원 진학에 GPA다음으로 중요하다고 여겨진다는데 보통 ' 진한 하려는 이유', '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지', ' 커리어 목표' 등 학교마다 가이드라인이 다르다. 물론 분량 제한이 있어 선택해야 하는 단어는 물론 본인의 어필 정도가 고스란히 녹아져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나 역시도 애를 먹었다. 아니 솔직히 진학하려는 이유는 ' 미국에서 돈 벌기 위해 내 돈 들여 MBA를 받는 거다'였고,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 정말 큰일이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였기 때문에, 영작도 잘 못하는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완성해야 할지가 막막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는 그 학교를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나를 낮추고자 한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원서 넣기 직전까지 시험 점수가 나오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고, 교수님께 추천서 한 장 받는 것이 그리 어려웠으며, 진학하려는 이유가 매우 불분명한 길가다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함 경력단절 아줌마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내가 합격을 한다 해도 그것은 기적이고 만약 그러하다면 그 쟁쟁하고 대단하며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대학원 입학 문을 마지막으로 닫고 들어 갈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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