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소 귀에 경 읽기

부제: 유학을 간다고 네가?

by Root Scent

하루에 8시간 이상 미드(미국 드라마)에 빠졌다. 아니 무슨 엄마가 아이 밥도 안 챙겨주고 그 시간 동안 드라마를 본다고? 그게 가능해? 가능하다. 틀어놓고 세수도 하고 밥도 짓고 핸드폰에 넣어놓고 이동시간 틈틈이 본다. 기본적으로 하나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3~4개는 돌려가며 영드(영국 드라마)도 슬쩍 끼워 넣는다. 옛날 기억 저편에 있던 아이팟에 수백수천의 팝송을 넣는다. 주인처럼 낡아버린 아이팟이 그때 나를 기억하고 용케 작동을 해 준다. 그렇게 절반은 매국노처럼 영어 속에 담그며 유학원이 있는 강 이남으로 향했다.




무슨 마음으로 유학을 준비했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었다.

아니 꼭 무슨 마음이 있어야 준비를 하는가. 그냥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경력 단절로 취업도 되지 않았고, 대학원 졸업학위는 그저 꼴좋은 액자 장식에 불과했다. 삼십 중반을 바라보는 아이 엄마에게, 세상은 젊고 아름다우며 빠릿빠릿한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을 뽑고 싶어 했고, 어렵게 일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경력직을 선호했다.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밟자니 전공하고 싶은 공부도 없었고 그저 말뿐인 별걸이 하나 더 늘어나는 형국이라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한국을 떠나 더 넓은 세상에 나를 던져보자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 또한 할 이야기가 아주 많다.)


유학원에서는 나를 아주 보기 흔치 않은 팔자 좋은 여자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시집 잘 가서 미국 보내줄 돈은 있는데 아이 하나 덜렁 데리고 어디 하와이쯤에 정착해서 명목상인 신학 대학교에 들어가 학생 비자 신분은 유지되고 아이는 유치원에 넣어놓고 비교적 손쉬운 이민 생활을 할 수 있는 그런 부류 (겪어보니 이민생활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힘이 들어 고개가 꺾인다. 그 분들을 절대 폄하하거나 비하하는 의도가 아니다. 실제로 훌륭하게 소명을 실천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정도로 말이다. 물론 혼자만의 생각이었겠지만 실제로 상담을 받으러 가도 내가 원하는 만큼의 도움은 얻기 힘들어, 대학원에 제출할 수많은 서류를 대신 작성해 줄 대행업체 정도로만 생각하기로 그 이상 그 이하도 바라지 않기로 했다. 오로지 학교에 들어갈 성적만 나올 수 있는데 최대한 모든 걸 쏟기로 마음먹었다.


IMG_6819.JPG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아주 조금은 윤곽이 잡힌 기분이 들었다. 유학원을 나서며 괜히 편의점에 들러 따뜻한 두유 한 병과 과자 하나를 샀다. 그리고 은행 ATM에 들러 잔고를 확인하였다. 가진 돈은 얼마 없지만 일단 입학 서류를 준비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합격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괜히 아이 볼을 만지작 거려 보았다. 항상 굳은 얼굴로 멍하니 시선을 보던 엄마가 오래간만에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보니 아이도 신기한지 연신 "엄마 뽀요요 뽀요요 (뽀로로)"하며 연신 신이 나서 떠들었다.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나에게 사치였다.

다른 대안은 없었다. 물론 살던 대로 살면 되는 옵션은 있었다. 하지만 다른 대안은 없기로 했다. 참으로 무모하고 생각해 보면 이기적인 결론이자 결단이었지만 지금 그 당시로 돌아간다고 해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그냥 살던 대로 살지 왜... '경'은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10년이 흐른 후 '소'같은 내가 나에게 뺌 싸대기를 날릴 것이 더 무서운 나였다.


돌고래보다 조금 나은 아이큐로 도전한 MBA도전기가 시작. (사진: 사방 벽이 보드, 치열했던 팀플의 흔적)



이전 03화2.EBS 교재=냄비받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