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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 Mar 11. 2020

초록이 보내온 환대였을까요?

#청년인생설계학교 : 청년요양원 2

자연 한가운데에 일부러 나를 놓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며
그냥 충분히 누릴 때.

그 순간들이 내게 준 걸 생각한다.


 청년인생설계학교, 청년요양원을 생각하면 가끔 꿈같을 때가 있다.

 터무늬 없이 깨끗한 하늘과 기시감. 같은 땅을 딛고 살지만 저마다 다른 세계를 가진 사람들이 단지 지금 이 모습의 한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사회에서 만났다면, 또는 마주치기 어려울 만큼 차이를 가진 이와도 나눈 충분한 대화. 초록이 나에게 준 것, 자연 한가운데에 일부러 나를 놓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그냥 충분히 누릴 때. 그 순간들이 내게 준 걸 생각한다. 나는 몹시 받고 온 모양이다. 되게 많이 받고 온 느낌. 환대 대잔치.


 나는 무얼 그렇게 받았다고 생각하나, 막연하게 떠올리지 말고 기록해야 한다. 자꾸 들춰보는 사진은 또렷하지만 대화는 점점 흐릿해지니까. 기억은 왜곡되기도 하고 조금씩 변형되어가니까. 서울에서 청년요양원 때 만난 친구들을 또 만나도 좋은 건, 우리의 여름이 함께 찬란했음을 알고 서로를 포용했던 순간임을 인정하니까. 지금이라도 19년 여름이 내게 20년 겨울까지 살게 했음을 꾹꾹 눌러담아 적어두고 싶다.



 처음 도착했을 때 별아띠 천문대라는 현판이 너무 귀여웠다. pop 글씨체라고 어렸을 때 매직으로, 붓으로 썼던 그것이 내 눈앞에 누군가의 간판이 되는 2019년이라니. 레트로한 것과는 달랐는데 그보다는 정감있다는 편에 속했다. 중형 봉고차가 너무 텃밭 가까이 주차된 나머지 우리는 풀밭에 가장 먼저 발을 떼었는데, 너무 오랜만의 땅이었다. 그리고 자연. 거미와 곤충들. 공존하고 있지만 자주 가려져 보이지 않는 이들. 불편함 또는 난처함을 주니까 보지 않으려고 애썼고, 안 보고 살아왔던 이들이 여기 이곳에 살고 있음을 스쳐 지나가듯 인식했다. 약간 거리 두고 싶은 마음과 어색함으로 숙소를 살폈다. 

 휴대폰을 제출한다는 안내사항이 있었다. 여과없이 휴대폰을 제출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때야 휴대폰을 걷고 내곤 했지 사회에서는 개인물품에 제한을 둔 적이 없었다. 대체로 행사 리뷰를 sns를 장려하거나 이벤트를 지향했고 거기에 사용할 사진을 마음껏 찍고, 온라인으로 소통하기를 바랐으니까. 결국, 사회에 나와서 휴대폰 사용을 금지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야영 같기도 하고 그래서 약간의 반감도 들었다. 이런 규제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실효성에 대해 의심했다. 사실 안내문에서부터 상세하게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알려줬고, 그에 따른다는 걸 바탕으로 이 곳에 왔다.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행하니까 낯설고 어색했던 건가 싶기도 하다.) 미리 2박 3일 동안 외부의 연락을 받지 못한다고 알렸고, 마지막으로 가족과 통화를 했다. 

  

 이 작은 기준은 나의 사소한 부분을 그리고 사소함으로 이루어진 나의 일상을 바꿨다. 

 순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산 시간 동안만큼은 생생했다.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한자락 쓰다보니, 몇가지의 갈래가 생겼다. 결이 달라 하나로 연결된 이야기로 발행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연재해볼 생각이다.

 내가 받은 인상을 몇가지 문장으로 소개한다.





무언가와 단절된다는 것은, 또 다른 것과 촘촘하게 연결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유의 진짜 속 뜻은 나는 당신을 신뢰한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이 순간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최소한의 규칙이 있다. 함께 만든다. 개개인이지만 우리는 한 공동체 안에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정도가 아닐까?

내 손끝으로 그려나가는 세상은 진짜다. 만지고 느끼고 숨쉬는.

산책하고 그리고 쓰는 실을 감는. 한 올 한올 내 손으로 만드는 뭔가가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온 준비물이 마음에 평안을 준다. 내가 지금 살아있음을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음을. 당신께 무언가를 받았음을, 당신의 일부와 나의 작은 행동이 무언가로 보이게 된다는 것을.

아 밤이라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아, 아침이라는 건 이런 소리구나. 지구와 함께 숨쉰다는 것.

잠시 단절되었지만, 결국 단절될 수 없음을 알게 됐다.


내가 찍은 사진들 중에 아끼고 골라서 

이전 브런치 글 <최선의 선택보다 최선의 실행을 했을 때 남는 것>에 썼다.

어떤 모습이었길래 이런 자랑을 하는지가 궁금하다면, 

잠시 평안해지고 싶다면 살펴보셔도 좋아요.


 마지막, 나는 잔뜩 받아왔고 숨 쉴 나만의 폴더가 생겼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틈을 일부러 만드는 연습을 하는 것. 가끔 부단히 혼자만의 충만한 시간을 만드려고 힘쓰는 것. 그렇게 다시 사회 속에서 나와 당신을 마주하는 것. 그래서 우리는 사회와 이 지구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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