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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 Mar 25. 2020

내가 나를 따라잡는 일

과거에 머무르던 시선이 겨우 오늘이 되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제 목소리를 내는 게 여전히 어렵습니다. 나의 과거, 나의 궤적을 다시금 돌아보는 일도 오랜 시간이 걸려 겨우 씁니다. 어떤 이야기만큼은 지나치고 싶지 않은 날이 있어요. 하지만 많이 잊어버렸어요. 머릿속으로 몇 번 되뇌다 결국 쓰지 않고 사라지도록 뒀기 때문입니다. 깊게 파고들어 다시금 내 생각의 구조를 찾고 주변을 탐사하며 '나의 길은 이런 맥락으로 다져온 결과물이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아 버렸습니다. 

 그렇게 살던 날, 말에 사과합니다. 잃어버린 이야기에게 이런 문장으로나마 씁니다. 그리고 더 이상 유기하지 않도록 내 생각에 책임을 지도록 적습니다. 느린 속도라도 움직이니까 이따금 지금의 나에게도 초점을 맞춰볼 수 있겠습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모두에게 얘기를 듣고 풀어내 볼 거예요.

2018, 문화역서울284, ⓒ 채소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굵직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정말 작은 움직임도 괜찮다고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했으니까 저는 꽤 할만하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더이상은 그냥 넘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생각하고 구체화하지 않는 것과 한 글자 한 글자 눌러서 보이게 만드는 글은 결코 같지 않으니까요. 내 이야기가 나의 태도를 만들고 나의 선언이 나의 방향성임을 입증할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하나의 이야기로서 누군가에게 말할 필요가 있는데, 이때의 이야기는 미래를 담는 그릇을 품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과거의 이야기는 스스로 바라는 남은 삶의 방식을 지시한다.(제현주, 일하는 마음, 83p)
이야기가 미래를 담는 그릇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이야기하기는 삶의 태도를 선택하는 일이 된다. 우리는 다른 식으로가 아니라, 그런 식으로 이야기함으로써, 다른 식으로가 아니라 그런 식으로 살기로 마음먹었음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백한다. (제현주, 일하는 마음, 84p)


 비슷하지만 더 적확하고 튼튼하게 쓴 제현주 선생님의 글로 나의 작은 이야기가 당신께 조금이라도 가닿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도 종종 들으러 갈게요. 이야기 타래에서 나는 '도닥이는 손과 다독이는 마음(오은)'으로 살겠습니다.


2018, 문화역서울284, ⓒ 채소


 느린 저도 이렇게나 오늘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순간순간 꼭 해야 할 것만 같은 말을 포착합니다. 더이상 잊지 않으려고 지키기 위해 씁니다. 뭔가를 해보는 게 단순하지만 가장 힘든 일인가봐요. 여기까지 읽으신 당신도 어려우시겠지요. 저는 오늘 이 짧막한 일기같기도 하고 어떤 것도 아닐 수도 있는 걸 쓰기 위해 3시간 하고도 11분, 빈 화면을 노려봤습니다. 다른 사람의 글을 통해 쓰기를 그리고 나아감을 찾고 싶어하셨을 당신께도 저의 지난한 시간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글쓴이들에게 온기를 담아 악수를, 괜찮으시다면 포옹을 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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