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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 Nov 06. 2019

내 이야기를 쓰지 못하는 병

채소를 이야기하는 방법

내 이야기를 쓰지 못하는 병

채소를 이야기하는 방법



 내 이야기를 쓰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 그런데 내가 살아온 몇 개월을 공유하고 싶다니. 앞 뒤가 하나도 안 맞잖아. 그래서 다시 질문하기로 한다. 왜 내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걸까? 고민을 꺼내놓기가 그렇게도 어려웠나.


 잘 모르겠다. 그래서 또 다른 물음을 던져보기로 한다. 글을 썼나. 어떻게, 왜 썼나. 쓰지 않았나? 썼다. 지극히도 필요에 의해. 대체로 나는 때때로 남들과 적절히, 최선을 다해 소통하기 위해서 썼다.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록했다. 스케치를 풀고 요약하고, 레이아웃을 정돈하고. 그 모든 글이 허투루 쓰이지 않았으면 했다. 강약 조절 없이 힘을 쓰고 내가 보기 부끄럽지 않은 걸 내보내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쓰는 글은 대체로 빈약했고, 힘이 없었다. 물론 힘을 잔뜩 쓰는 날도 있었다. 나를 상대로 설득하기 위한 글. 원인을 해석하고 이해해보려고 안간힘을 다해서 흘려 쓴 노트는 그렇게 쓰였다. 그 활자들은 아무것도 아니거나 감정이 전부거나 그랬다. 그래서 남에게 공유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할 필요가 없었다.



쓰고 싶어졌다. 욕심이 생긴다.


근데 쓰고 싶어졌다. 정확하게는 나를 드러내면서 쓰는 글을 써야겠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나의 일상을, 회복해나가는 순간을 기록해두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어딘가의 기준, 정해놓은 목표에 향해 달려가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글 말고 그냥 나인 채로 종일 온 마음을 다해 써보면 어떨까. 빨리 쓰고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문장 대신 다른 걸 써봐도 좋을 것 같았다. 써보고 발행하고 또 쓰고 쌓이고 그래도 괜찮은 날을 기대하고 싶었다. 


하기 싫은 것, 할 수 없는 것을 다 빼고 쓸 게 얼마 없었다. 제외하고 남은 건 내 몸뚱이, 내 이야기뿐이다. 처음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본다. 왜 내 이야기를 안 했나. 나라고 살고 있었지만 내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라고 말하고 싶은 것들을 보지 않았다. 잘 안 들을뿐더러 공감해주지 않았다. 들여다볼 시간을 만들지 않고 자꾸 외부로 시선을 돌렸다. 명백히 피해왔다. 그러니 나라고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제대로 있는 게 이상했다.

그래서 지독히 느리게 아주 좁은 보폭으로 쓴다. 검열이 정말 많이 들어가서 수정하고 퇴고하고 지웠던 것들, 정말 가끔 sns에 남의 문장을 빌려 적던 습관 위에 쓴 이야기다. 여전히 나는 나를 잘 모른다. 지향하는 이상과 실제 모습은 상당히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적당히 있어 보이고 싶어 할 것이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하기도 할 테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에 관심이 많은 걸 티 내고 싶을 예정이다.


채소 상태 : 최소한의 자신으로


 글을 쓴다고 해서 나를 잘 아는 사람이 곧장 되지 못할 것이다. 아마 계속 헤맬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를 뺀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려던 시도에서 나를 최대한 배제한 글쓰기를 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내 몸에서 나온, 채소 상태에서 오롯이 건네 볼 것이다. 최소한의 자신으로. 




글과 사진은 모두 채소의 창작물입니다.
협업 및 제안은 메일을 통해 전해주세요.
고맙습니다.
ⓒ 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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