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밝음, 따뜻함 삼박자 갖춘 고양이 그림 전시회

루이스 웨인이 창조한 ‘고양이’ 세계관/ 루이스 웨인展

by 김좌

‘어쩌다 집사’가 된 내가 반려묘를 기르며 고양이가 주는 위로와 따뜻함, 친절함을 그림에서도 느꼈다. 서울 강동아트홀에서 전시 중인 ‘고양이를 그린 화가, 루이스 웨인전’을 통해서다.


올 초, 봄이 왔지만, 따뜻한 아랫목을 떠나기 아쉬워하던 즈음. 출근 시간이 임박했음에도 한 조간신문 기사에 눈을 떼지 못했다. 한 컷의 그림 때문이었다.


동공이 확장돼 눈이 커다래진 고양이 그림이었다. 고양이 특유의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자세히 보면 사람의 표정 같았다.

KakaoTalk_20230807_124443979_20.jpg 루이스 웨인이 그린 고양이 그림. 마치 표정이 사람처럼 살아 있다.
기사 내용은 이랬다. 해당 그림은 영국의 국민 화가 ‘루이스 웨인’이 그린 고양이 그림으로, 투병 중인 아내를 위해 반려묘 ‘피터’를 그린 작품의 하나다. 그는 고양이를 주제로 다양한 삽화와 그림을 그려 한때 명성과 부를 동시에 얻었지만, 아내를 비롯해 어머니와 누이동생의 죽음, 잘못된 투자로 인해 일시에 재정 파탄을 겪으며 크나큰 상실을 경험했다. 말년에는 정신병원 신세를 져야 했지만, 정신병동 안에서도 작품 활동은 멈추지 않았고 그의 작품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였다.


바쁜 일상을 핑계로 제대로 된 문화 활동 한번 못해본 2023년 상반기였지만, 8월이 가기 전 이 전시회는 꼭 한번 가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예약부터 해뒀다.

여름휴가 기간인 8월 6일 오전부터 부산을 떨며 강동아트센터로 향했다. 강동아트센터 아트랑 1~3층 전시실을 사용하고 있는 루이스 웨인전은 사실상 전시 공간은 2층까지이고, 3층은 기념품을 판매하는 공간이다.


“저는 말 못 하는 동물들을 정말 좋아합니다.”라는 글귀로 시작하는 1층 전시실은 주로 석판화와 펜으로 그린 루이스 웨인의 초창기 작품과 마주할 수 있게 배열되어 있다.


KakaoTalk_20230807_124556391_23.jpg 루이스 웨인이 그린 반려묘 '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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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그림 속 고양이들의 표정은 제각각이다. 익살스러운 눈빛과 입 모양, 억울해하는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표정뿐만이 아니다. 포즈와 행동까지 표정과 찰떡궁합이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루이스 웨인 전시회의 특징은 섹션을 총 6개로 두고, 그에 걸맞은 작품을 내걸었단 점이다.

특히 두 번째 섹션은 루이스 웨인 생존 당시의 사람들이 고양이 기르기에 대해 갖던 편견과 선입견을 날려준 것으로 짐작되는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피터는 이 나라의 고양이에 대한 경멸을 완전히 없애고, 노처녀들이나 관심을 가지고 키운다는 편견을 가정 내 반려동물로 영원히 바뀔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루이스 웨인과 그의 아내 에밀리가 반려묘 ‘피터’를 그만큼 아끼고 사랑했단 걸 미뤄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고양이 그림으로 명성과 성공을 거머쥔 루이스 웨인이 아내 에밀리를 떠나보낸 후 피터를 모티브로 한 고양이 그림을 더 많이 그려낼 수 있었던 건, 에밀리와의 행복했던 시간을 보냈을 그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아내를 추모했던 것은 아닐지 짐작게 한다.


1층 전시실 중반부터는 다양한 컬러가 배합된 고양이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스푼 위에 달걀을 올려둔 채 뛰거나 걸어가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에선 고양이가 아닌 사람의 표정, 행동을 떠올렸다. 또 사람처럼 골프도 치고, 정장과 드레스를 차려입고 등장하기도 한다. 고양이의 의인화 정도가 되겠다.


KakaoTalk_20230807_124556391_16.jpg 루이스 웨인의 작품 '스푼에 달걀 얹고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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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웨인은 영국왕립예술가협회 회원으로 등록해 활동한 영국의 국민화가로 불렸다. 그런데 재미있는 이력이 눈에 띈다. 국제고양이클럽 회장으로 5년씩이나 재직했다는 점이다. 그때가 1891년이다. 우리나라에서 고양이를 반려 동물로 제대로 인정하기 시작한 때가 최근 수십 년인데 견줘 영국에선 고양이를 주제로 한 커뮤니티 활동이 100년도 훨씬 전부터 있었단 점이 놀랍다.


2층 전시실에 등장하는 루이스 웨인의 고양이들은 인간의 표정과 행동을 흉내 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인간이 태어나 자라면서 사회화를 위해 학교에 다니고, 무언가를 배우고, 날이 좋으면 피크닉 가고, 운동을 즐기는 것처럼 2층 전시실 고양이 그림들은 인간의 일상생활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루이스 웨인은 단순히 고양이 그림을 그려냈던 게 아니다. 인간사, 더 좁게 들어가면 자신의 삶을 고양이에 투영해 화폭에 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그리고 이 그림들을 보면서 일상이 지루하고 따분한 것 같아 보여도, 참 따뜻하다는 걸 알려준다.


2층 전시실 끄트머리로 가면 루이스 웨인의 화풍이 살짝 바뀌었단 걸 알아챌 수 있다. 과거보다 그림의 배경이 화려해진 것. 만다라 풍의 일정한 패턴이 들어간 배경에는 단색 대신 다양한 색채로 구성되어 있어 한눈에 봐도 그림이 예전보다 더욱 화사해지고 밝아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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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풍이 소폭 변화된 데에는 그의 변화된 삶과도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잇단 죽음과 재정적 파탄이 불러온 상실감으로 굴곡진 삶을 살아온 그가 결국 스키조프레니아(조현병)를 진단받아 스프링필드 정신병원 극빈자 병동에 입원하게 된다.

어느 날 정신병원 방문 관리 위원회 위원 댄 라이더가 업무차 방문한 병원에서 루이스 웨인을 알아보고는 왕립베들렘병원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도움 준다.


1930년부터는 쾌적한 시설, 아름다운 정원이 딸린 냅스버리 병원으로 이송된 루이스 웨인이 1936년 그림을 더 그릴 수 없게 될 때까지 고양이 그림을 그리고 간호사들에게 그림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고 한다. 냅스버리 병원은 동물이 인간에게 주는 심리적 안정감을 긍정적으로 보고 루이스 웨인이 고양이를 키울 수 있도록 허락해 주고, 말년까지 고양이와 함께 지내며 이전보다 훨씬 더 풍부한 색감의 고양이 그림들을 그려냈다고 한다.

1939년 7월 4일, 루이스 웨인은 사랑하는 아내 에밀리와 반려묘 피터가 있는 곳으로 먼 여행을 떠난다.


소위 명작을 남긴 화가들의 작품을 보면 작가의 생각과 정서, 그가 당시 살았던 환경이 어땠을지 짐작게 하는 지점들이 있다. 자신의 마음 상태를 그림을 통해 표현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보노라면 무언가를 숨기거나 없애려 하기보다는 피사체를 통해 자신의 스타일과 감성, 가치관과 세계관을 새롭게 창조하려 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루이스 웨인 역시 ‘고양이’라는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했다는 점에서 인간적으로 부러운 마음이 든다. 또 그가 남긴 작품을 보며 후대들이 웃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인생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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