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랑 토리씨는 싫어해! 엄마만 좋아해!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시골이었다. 동네에 작은 슈퍼가 있고, 그다음 가장 가까운 슈퍼는 20분 정도 걸어가야 나오는 정류장 근처 슈퍼였다. 우리 가족은 저녁식사를 하고, 종종 가족끼리 밤산책을 갔었다. 키우던 진돗개를 산책시키기도 하고 나랑 동생은 자전거를 타고 놀기도 하고, 정류장에 있는 슈퍼에서 간식도 하나 사 먹고 돌아왔다. 도란도란 그날의 이야기를 하며 밤공기를 맞으며 다닌 그 산책의 좋은 기억 때문일까? 나는 밤산책을 좋아한다. 그 시간 때가 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른 저녁시간일 때도 있었고 깊은 밤일 때도 있었지만 나는 아무래도 저녁산책보다는 밤산책이라는 말이 더 감성적이고 운치가 있어 마음에 쏙 든다.
불안과 걱정이 많은 내 성격 때문일까? 나는 하루 중 해가 저물어가는 노을 지는 시간과 저녁, 밤이 좋다. 오늘도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다는 안도감이 드는 시간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밤산책은 무사히 오늘을 마무리한 나를 다독이며 서로의 하루를 도란도란 나누는 시간이다. 기쁜 마음은 나누고 지치고 힘든 마음은 쓰다듬어 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저녁 먹고 가족들과 산책하는 게 내 나름의 로망이다. 소화도 시키고, 노을 지는 하늘이나 밤하늘을 보며 산책을 하는 그 풍경이 참 따뜻하고 편안하다.
하지만 우리 토리씨(남편)의 생각은 다르다. 힘들게 밖에서 하루를 보내고 겨우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쉬어야 하는데 밤산책을 나가자고 하다니 나의 로망은 그에게는 귀찮음이다.
로라(딸)도 마찬가지다. 집순이인 우리 꼬마아가씨는 집에 들어오는 순간 웬만해서는 나가려고 하지를 않는다. 집에서 그림도 그려야 하고, 인형친구들이랑 놀이도 해야 해서 로라는 집에서도 늘 바쁘다. 저녁 먹고 이제 막 놀려고 하는데 산책이라니 로라에게도 토리씨와 마찬가지로 밤산책은 로망이 아닌 귀찮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은 토리씨가 큰 마음을 써서 밤산책을 나가준다. 음...... 굳이 횟수를 생각해 보면 일 년에 3~4번 정도? 토리씨의 귀찮음과 로라의 귀찮음을 이기고 함께 산책을 나갈 수 있는 날은 생각보다 많이 찾아오지 않는다. 밤산책은 오로지 나를 위해 토리씨가 함께 가주는 봉사다. 토리씨가 나를 위해 밤산책을 가주기로 마음먹으면 2단계로 로라도 설득해야 한다. 로라에게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고 살살 달래 가며 애원한다.
산책하기에 적당한 날씨
토리씨의 결심
로라의 허락
이 삼박자가 맞아야 갈 수 있는 나의 로망 밤산책!
오늘은 마침 그 삼박자가 맞아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