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질문과 무례함의 경계
엘리베이터는 생각하지 못한 에피소드가 생기는 묘한 공간이다.
평소 길에서는 모르고 지나쳤을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에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어느 날, 토리씨(남편) 없이 나와 로라(딸) 둘이서 엘리베이터를 타게 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아랫집 할아버지와 강아지도 함께 타게 되었다. 나는 사실 잘 모르는 분이었지만, 로라는 할아버지와 구면인 듯했다. 할아버지께서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셨고, 곁에 있던 강아지도 꼬리를 흔들며 로라에게 애교스럽게 다가왔다.
누가 봐도 평화로운 풍경이었지만, 나는 로라의 어색한 미소에서 긴장감이 살짝 느껴졌다. 로라는 평소 강아지를 귀여워하지만 실제로 강아지를 만나면 조금 무서워하는 편이다. 아랫집 할아버지는 로라의 긴장을 눈치채지 못하신 듯했다.
나는 로라의 긴장감을 풀어주고 혹시나 로라가 말실수를 할지 몰라 입막음을 하기 위해, 로라에게 강요하는 듯 한 뉘앙스를 담아 말을 건넸다.
"로라야~강아지 정~~~ 말 귀엽게 생겼다."
그 말에 할아버지는 기분이 좋으셨는지 로라에게 다정하게 이야기해 주셨다.
"한번 만져봐~ 우리 개는 안 물어!"
로라는 조금 난감한 듯 주저주저하더니,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강아지 예방접종은 했어요?”
순간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내가 로라의 입막음을 하려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 꼬마 아이는 안전 교육 영상을 본 뒤 엄마 아빠에게 잔소리하는 것을 즐긴다. 평소 안전 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로라다운 질문이었지만, 할아버지는 조금 당황하신 듯했다.
“아, 그게... 다음 달에 하려고~”
할아버지의 대답이 이어지자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이러다 로라 입에서 광견병 이야기까지 나오는 거 아냐?'
분위기를 수습해야 한다는 조바심과 로라의 입을 막기 위해 나도 모르게 엉뚱한 말이 튀어나갔다.
“로... 로라야, 강아지랑 로라랑 똑같다! 로라도 아기 때 예방접종 했거든.”
그 말과 함께 할아버지는 도착 층에 내리셨고, 나랑 로라는 인사를 나눈 뒤 다음 층에서 내렸다. 할아버지가 내리신 뒤에도 내 머릿속엔 ‘찝찝함’이라는 단어가 떠나지 않았다. 로라를 귀여워해서 만져보게 해 주시려던 따뜻한 마음이었는데, 로라의 질문이 혹시 무례하게 느껴지지는 않으셨을까?
로라에게는 순수한 질문이었지만 타인에게는 무례한 행동일 수도 있으니, 이 부분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고민이 되었다. 집에 돌아와 로라와 마주 앉았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오늘 일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로라야,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강아지를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시거든. 그런데 로라가 예방접종 했냐고 물어보면, 할아버지는 소중한 강아지를 병균처럼 생각한다고 오해해서 슬퍼하실 수도 있어.”
로라는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로라에게 다음번에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부드럽게 알려주었다.
"로라가 예방접종 했냐고 물어본 것은 만지는 게 조금 걱정된다는 거잖아! 그럼 다음에는 ‘조금 무서워서 못 만지겠어요’라고 솔직하게 마음을 말하면 좋을 것 같아!”
로라는 세상을 '옳고 그름'으로 배우지만, 삶에는 사실보다 중요한 '배려'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로라는 오늘, 상대의 호의에 무안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완곡한 표현'을 하나 배웠다.
로라에게 다정한 세상에 참 감사하다.
가끔은 그 다정함이 내가 원하는 다정함이 아닐지라도
로라가 다른 사람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하고,
배려하며 거절하는 방법을 배우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