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의 발렌타인데이
발렌타인데이가 되기 2주 전쯤 어느 날,
로라가 나에게 와서 조잘조잘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 엄마! 발렌타인데이가 되면 아빠한테 초콜릿을 선물하고 싶어요."
로라가 어디에선가 발렌타인데이가 되면 사랑하는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것이라는 것을 들었나 보다.
특별히 발렌타인데이를 챙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로라에게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대화를 이어갔다.
"로라야 그럼 우리 아빠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사드리면 어떨까?"
나는 연애 때 토리씨가 좋아해서 사줬던 생초콜릿이 떠올라 로라에게 검색한 사진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생초콜릿이 로라의 눈에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로라는 네모난 모양에 코코아가루가 뿌려진 특별한 장식이 없는 생초콜릿을 보며
"엄마 이건 별로 같아요. 예쁜 초콜릿을 그려서 선물로 주고 싶어요." 하더니 휙~하고 자신의 할 일을 하러 갔다.
로라가 자리를 떠난 후 나는 생초콜릿을 조금 더 검색해 보았다. 이번 발렌타인데이때는 초콜릿을 하나 선물해 줄까? 하고 망설였다. 그러다가
'그래 몸에도 별로 안 좋은데 관두자!'하고 인터넷창을 닫았다.
그 일이 있은 후 2주 정도 후 토리씨와 나는 휴가를 맞춰 로라와 함께 에버랜드를 1박 2일로 갔다. 로라에게 직접 호랑이와 사자를 보여주고 싶어 사파리를 가기 위한 여행이었다. 사파리는 나도 한 번도 못 가봐서 마음이 설레였다.
역시 놀이동산 러버 부녀는 행복에너지를 뿜어내며 놀이동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는 캐리비안베이에서 물놀이까지 즐겼다.
지친 몸을 이끌고 호텔에 들어가기 전 밥을 먹고, 간식을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어갔다. 로라에게도 먹고 싶은 간식이 있으면 고르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로라가 편의점 한켠에 마련된 장난감코너 앞에 우두커니 서서 장난감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로라야 마음에 드는 장난감 있어?"
"아니요. 엄마! 오늘 발렌타인데이잖아요. 아빠한테 초콜릿을 선물하고 싶어서 보고 있어요."
"놀이동산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오늘이 발렌타인데이네!" 하고 토리씨와 이야기한 것을 로라가 듣고 기억을 했나 보다.
그걸 듣고 자신이 먹을 과자를 고르지 않고 아빠에게 선물할 초콜릿을 보고 있는 로라가 사랑스럽고 기특해서 로라에게 이야기했다.
"로라야! 엄마가 사줄게! 아빠 꺼 초콜릿 골라!"
로라에게 이야기를 하자 로라가 하트모양을 살까? 큰 걸 살까? 하며 신이 나서 초콜릿을 고른다.
로라를 지켜보다가 이왕이면 선물은 받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로라에게 말한다.
"로라야! 아빠가 제일 먹고 싶은 초콜릿으로 선물해 드리면 어때?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선물하면 아빠도 기뻐하실 거야!"
로라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신이 나서 맥주를 고르고 있는 토리씨에게 가더니 손목을 잡아끌었다.
"아빠! 아빠! 이리 와봐요! 빨리요!"
토리씨는 로라에게 이끌려 초콜릿 코너 앞에 섰다.
"아빠 오늘 발렌타인데이잖아요. 초콜릿 선물하고 싶어서요. 아빠가 골라요!"
로라의 입가에 뿌듯한 미소가 가득하다.
토리씨는 적당한 크기의 하트 페레로로쉐를 골라 로라에게 건네준다.
"아빠는 이게 제일 좋아!"
초콜릿을 건네받은 로라가 갑자기 살짝 한쪽 무릎을 구부리더니 두 손으로 아빠 여기요. 하고 다시 초콜릿을 건넨다. 토리씨는
"로라야 정말 감동이야! 맛있게 먹을게"하며 로라에게 감사인사를 한다.
편의점 한켠에서 둘만의 러브스토리가 펼쳐진다.
편의점에서 사랑고백 후 간식 쇼핑까지 마치고 우리는 호텔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간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토리씨가 로라에게 이야기했다.
"로라야! 3월 14일은 화이트 데이야! 그때 뭐 받고 싶어? 그때는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한테 사탕을 주는 날이야!"
"아빠! 꼭 사탕만 돼요?"
"아니! 로라가 더 좋아하는 것으로 말해줘! 젤리나 초콜릿도 괜찮아!"
"아빠 저는 무지개 색깔 과일맛 젤리빈을 받고 싶어요."
"그래 우리 화이트데이 때 젤리가게 가서 젤리 고르자!"
"그리고 로라야 4월 14일은 자장면 데이야 그때는 발렌타인데이랑 화이트데이 때 아무것도 못 받은 사람이 자장면을 먹는 날이야!"
그 말을 듣자 로라가 갑자기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더니 나를 바라보고는 다시 토리씨를 바라보더니 이야기했다.
"아빠! 우리 엄마를 위해서 그날은 자장면을 함께 먹으러 가주면 어때요?"
나와 토리씨는 그 말을 듣고는 얼굴을 마주보고는 웃음이 터진다.
로라의 이 따뜻하고 엉뚱한 배려에 재미있는 추억이 하나 더 생긴 것 같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로라가 이제 한국 나이로 일곱 살이 되니
함께하는 여행이 훨씬 즐거워졌다는 것 같다.
예전에는 챙기고 돌볼 것들이 더 많았다면
지금은 함께 보고, 함께 웃고, 돌아와서도 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여행은 로라에게만이 아니라 나의 삶도 조금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시간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함께 다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로라가 조금 더 크면 엄마 아빠보다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좋아지겠지.
그래서인지 요즘은 지금 이 시간이 마치 기한이 정해진 선물처럼 느껴져 애틋한 마음이 든다. 이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깊이 함께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