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가능성'을 열어 주는 것

욕지도와 모네의 '해돋이', 드뷔시'달빛' 그리고 폴 베를렌의 '하얀 달

by 로랑쌤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예상치 못한 순간,

아름다운 정경과 마주하는 것이다.

내가 만난 욕지도의 풍경이 바로 그랬다.


유난히 구름이 많던 날이었다.

'의욕이 넘치는 섬'이라는 뜻을 지닌

욕지도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그날의 섬은

한없이 고요하고 잠잠했다.


남보라빛으로 흐릿한 인상을 주는 욕지도 풍경을

잠시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내가

‘모네'의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모네의 인상주의 화풍과 닮은 통영 '욕지도'의 모습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로 인상주의 미술 창시자이다.

'인상주의(Impressionism)'는 그의 그림 제목인《인상, 해돋이 (Impression, Soleil Levant, 1872)》 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인상, 해돋이》는 르아브르 항구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그린 작품으로, 붉은빛의 태양 아래 떠 있는 배 한 척과 노를 젓는 어른과 아이를 묘사하고 있다. 빛과 함께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색채와 순간적 인상을 포착하여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냈다. 당시 비평가 루이 르로이는 이 그림을 두고 "이건 단지 인상일 뿐이다"라며 조롱 섞인 평론을 남겼고, 그 말이 하나의 장르가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Impression, Soleil Levant, 1872)>

인상주의 미술은 음악에도 영향을 주었다.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는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창시자로, 프랑스 현대 음악의 문을 연 작곡가이다. 드뷔시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확립했는데, 인상주의 미술과 더불어 말라르메와 보들레르 같은 상징주의 시인들의 영향을 받았다. 그가 1984년에 작곡한 교향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말라르메의 전원시 《목신의 오후(L’Après-midi d’un faune)》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으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인 목신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 나른한 여름날, 나무 그늘 아래에서 졸던 목신은

피리를 불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는 비몽사몽, 꿈과 현실을 헤매며 시냇가에서

목욕하던 님프들을 생각한다.


그는 이 몽상의 환영에서 사랑의 열정을 느끼고 그것을 잡으려 하지만,

님프의 환영은 곧 사라지고 그의 욕정은 한층 더 심화되어 더 깊은 공상에 빠져들어

사랑의 여신 비너스를 포옹하게 된다.


이윽고 모든 환상은 사라지고, 목신은 또다시 나른한 기분으로 졸기 시작한다.

이때 막연한 권태가 그의 마음에 엄습해 온다"


이런 줄거리의 시를 바탕으로 작곡된 이 곡은 시가 지닌 환상적인 분위기를 정교하게 살려냄으로써 오늘날 근대 음악의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출처 : 드뷔시 : "모든 것이 내 것이라는 꿈에 부푼 목신의 노래", 정은주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플루트 독주로 시작된다. 전통적인 조성에서 벗어난 음계 - 반음계적 진행과 온음음계의 선율을 혼합하여 사용하여, 의도적으로 몽환적이고 흐릿한 음향을 만들어 인상주의 음악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숲, 햇살, 바람, 몽상 등의 이미지를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해, 부드러운 음색의 목관악기가 주선율을 이끌고, 하프와 글리산도 기법을 활용해 마치 물결처럼 흐르는 소리를 연상케 한다. 또한, 불규칙하고 유동적인 리듬을 사용하여 몽환적이고 감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어, 목신이 꿈과 현실 사이를 헤매는 느낌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드뷔시의 악곡 중 우리에게 더욱 친근한 《달빛(Clair de Lune)》이란 곡이 있다. 이 곡은 한 때 유명한 침대 광고 음악으로 사용되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느린 템포에 피아노 아르페지오 연주로 잔잔하고 흐르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서정적인 선율과 섬세한 음색, 감성적인 표현이 두드러지며, 전통적인 화성 대신 모호한 화성을 사용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고자 했다. 이는 소리를 통해 회화적인 이미지와 분위기를 전달하고자 한 드뷔시의 인상주의적 성향을 잘 보여준다. 이 곡 역시 문학의 영향을 받아 작곡된 곡으로, 상징주의 시인 폴 베를렌의 시 <하얀 달>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얀 달이
빛나는 숲 속에서
가지마다
우거진 잎사귀 사이로
흐르는 목소리

오, 사랑하는 사람아

깊은 겨울
연못에 드리운
버드나무의
검은 그림자는
바람에 흐느끼네

아, 지금은 꿈꾸는 때

별들이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하늘에서
크고 포근한
고요가 내려오는 듯

아득한 이 시간

- 하얀 달, 폴 베를렌




이처럼 자연, 음악, 미술, 문학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 삶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드뷔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음악을 정열적으로 사랑한다. 따라서 음악을 숨 막히게 하는 전통에서 자유롭고자 한다.

음악은 외부로 나아가는 예술이며 소재에도 구속받지 않는다. 바람, 하늘, 바다를 노래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예술이다. 음악은 내부로 차단되고 전통만을 중시하는 예술이어서는 안 된다"



음악 수업을 통해서

그들의 삶에 살며시 스쳐 지나간 선율들로 인해-


어느 날, 이 곡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을 때

어디선가 들어본 곡이라며 잠시 발길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며

짧은 순간, 음악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기를.


먼 훗날, 여행길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드뷔시 '달빛'의 선율이 떠올라

즐거웠던 음악 수업을 기억하기를 바라며,


그렇게 누군가의 삶에

음악을 통해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그것이 내가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것이다.


유월의 선선한 어느 밤,

잠시 눈을 감고 드뷔시《달빛(Clair de Lune)》을 들어보기를 권한다.

마치 포근한 달빛이 마음속으로 살포시 스며들어

평화로운 감정을 남기고 스쳐가는 듯한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언젠가 스쳐 지나간 이 선율을 통해,

아름다운 추억이 깃들기를 바라며.


https://www.youtube.com/watch?v=97_VJve7UVc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달빛'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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