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살아감의 기쁨이 넘치는 사회를 기대하며

by 가리영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살아감에 있어 본인의 가치가 잘 유지되며 성장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래 터전을 내리며 살아간다. 생명이라는 것은 살아 있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며 번성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비옥한 터전에 생명 있는 한 씨앗이 뿌려졌다. 작은 싹이 난 후 줄기가 생기며 가지가 퍼져간다. 나무로 성장하기까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잎사귀의 풍성함을 더해갔다. 드디어 오랜 시간이 지나 나무는 열매를 맺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자라온 땅이 비옥했기 때문에 그리고 늘 마르지 않는 물가였기에 나무는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행복했다. 그 소식을 들은 다른 나무들도 씨앗을 뿌리고 자라기 시작했다. 서로의 간격이 너무나 가까워서 때로는 각자의 가지가 꺾이기도 했고 햇빛이 비치지 않아 말라가기도 했다. 더 많이 빽빽하게 채워가는 나무들 사이에서 비옥함은 고갈되어가고 더는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 나무들을 관리해줄 수 있는 전문가는 부족했고 살아갈 터전은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몇몇 나무는 열매를 맺는 번식을 그만두게 되었다. 더는 살아갈 수 없는 터전이었기에 나무 자신조차도 서 있기 어려운 현실임을 깨달았다. 그곳에는 예전처럼 열매를 맺지도 새로운 나무가 자라지도 않게 되었다. 점점 숲이 사라질 위기의 터전이 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저출산 문제의 현실이 이와 같다. 수도권으로 모인 젊은이들 그들이 살아가는 터전은 비옥함이 없다. 매일 치솟는 비싼 집값과 장보기가 무서운 높은 물가 아무리 일해봐도 늘어나지 않는 주머니 사정에 그들은 본인의 가지를 잘라내고 있다. 풍성함은 없이 마음마저 말라가고 있다. 열매를 맺을 생산의 마음은 없어진 지 오래전 일이다. 오늘 하루 내가 버티고 살아가느냐가 생명의 이유인 현실이기 때문이다. 정책을 만드는 정치가도 행정을 이끌어가는 공무원들도 그들의 사정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저출산이라는 문제에 돈을 더 얹어주면 해결이 되지 않을까? 라는 대책으로 문제를 풀어가려고 한다. 나는 해결되지 않고 점점 더 심각해지는 저출산의 원인과 대책에 대하여 함께 고심하며 생각해야 함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생명의 고귀한 존재인 아이를 키워가려면 잘살아갈 수 있는 환경인지를 매우 민감하게 따지게 된다. 단순히 더 많은 출산장려금을 일시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제도가 먼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저출산의 문제에 대한 사회환경과 제도 준비가 늦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다. 줄어드는 인구소멸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아이를 키우며 살아감이 행복하고 출산장려를 유지하고 싶은 사회가 되도록 준비하고 개선해야 할 것이다.


젊은이들은 고향을 떠나 수도권으로 몰려든다. 그 이유는 고향에서는 본인이 가진 적성과 자격으로 찾아갈 직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직장이 서울과 수도권에 밀집되어 있어 취업하려면 어쩔 수 없이 힘든 수도권 생활을 해야 한다. 파릇파릇 싹이 나고 생명을 피워갈 마음으로 무엇이든지 해볼 수 있다고 시작했지만, 나이 30살이 되도록 남은 건 빚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집 한 채 없다는 게 서글픔이라고 말했다. 새도 알을 낳기 전에 둥지를 먼저 준비하지 않는가? 가장 서럽고 막막한 건 먼 미래의 고령화된 대한민국이 아니라 지금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왜 결혼과 출산을 멀리하는가, 당장 생계와 삶을 위해서 뛰느라 그들은 오늘도 버겁고 힘들다. 즉 둥지도 알을 낳을 생각도 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경쟁이 심한 우리나라는 상위 몇 프로의 사람들만이 풍요로움과 여유로움을 누리고 산다. 대부분 사람은 아침저녁 출퇴근에 지옥철을 맛보고 적은 월급으로 월세를 내면서 생활비를 쪼개가며 살아간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새로운 삶인 결혼을 생각하기도 힘들다. 결혼한다고 해도 생활의 유지를 위해 맞벌이가 필수이지만 아이를 돌보거나 맡길 곳은 어느 곳에도 여유 있게 있지 않다. 아이를 적게 낳게 되고 키우기 어렵다 보니 산부인과는 수요 타산이 맞지 않아 적자이고 소아청소년과는 새벽부터 줄을 서도 아이의 진료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내가 사는 곳은 중소도시 중 하나인 여수이다. 이곳에도 산부인과가 세 군데였지만 가장 규모가 컸던 산부인과가 최근에 문을 닫았다. 결혼과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병원이 적자가 오래되어지자 결국 폐업을 할 수밖에 없어졌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가깝게 갈 만한 산부인과가 없는 데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도 작은 감기에도 소아청소년과에 가면 오전 반나절은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맞벌이 부부들에게는 시간을 내고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한다는 건 소도시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단순히 아이 한 명 당 매달 100만 원 몇 년씩 더 준다고 해도 생활의 여건과 사회제도가 달라지지 않은 이상 돈이 현실을 메꿔주거나 변화시키지 못한다.

출산율이 높은 이스라엘의 경우 20대 초반에 아이를 많이 낳는 사회 분위기이다. 조부모가 아이들의 양육을 함께 도와주는 편이다. 젊은이들은 대학교에 다니면서 출산을 하고 대학교 안에 보육 시설(어린이집)이 함께 있어 부모가 공부할 동안 아이들의 양육을 맡아준다고 한다. 출산하기에 건강한 20대 초반에 건강한 아이를 많이 낳고 공동체가 함께 아이들을 키워가다 보니 출산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직장 보육 시설이 있는 것과 같이 사회의 분위기가 20대에 출산할 수 있도록 대학교 근처 보육 시설이 준비되어 양육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었으면 한다. 물론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대학생 부모의 경우 주거공간 지원과 생활비의 지원도 함께 필요하다고 본다.


나는 아이를 낳고 10년 넘게 경력단절인 가정주부로 아이를 집에서 양육했다. 그때 아이를 처음 키우는 게 너무 서툴러서 몸이 고단하기도 했지만, 혼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정신으로도 우울하고 고립된 기분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내가 먹을 음식과 아이 이유식을 만들고 무한 반복되는 집안일을 하며 직장생활을 하는 것보다 아이를 키우는 게 훨씬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죽하면 우스갯소리로 ‘애 보느니 밭에 간다.’라는 옛말이 전해지겠나 싶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이 젊은 부부들이 많이 사는 동마다 0~3세 부모와 아이를 위한 [부모가 함께하는 공동육아 기관]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공동육아시설 프로그램 안에서 아이도 사회성을 기르고 부모도 가정에서 혼자만 하는 육아(일명 독박 육아)가 아닌 다른 부모들과 소통하며 함께 기르고 양육에 대한 전문 지식과 정보를 주고받는 공동체 서비스인 것이다. 기관에서 점심 식사는 급식처럼 제공되어 부모와 아이가 양질의 식사를 통해 육아에 대한 부담과 고립된 우울감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육아에 있어서 체력이 팔 할이라는 말이 있듯이 점심 식사 제공과 공동육아 공간 지원을 통해서 주 양육자가 아이를 돌볼 힘과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본다.


먼저는 중소도시나 농어촌 지역부터 우선으로 이런 서비스가 잘 활성화되었으면 한다. 중소도시, 농어촌 지역에서 육아와 경제활동을 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나라에서 먼저 제공하고 추진한다면 대한민국의 어느 곳에서나 아이를 키우기에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달 지급하는 양육비를 주로 육아·보육서비스 기관에 쓸 수 있도록 하고 3개월이나 1년의 단기적인 지원 서비스가 아닌 부모와의 애착 관계와 주된 돌봄이 필요한 3살까지 3년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산부인과나 소아 청소년과에서는 육아·보육서비스 지원인력에 대한 자격증을 교육하고 발급하면서 공동육아 서비스 기관에서 종사할 전문 인력이 많이 늘어나야 한다.


이와 비슷한 제도로는 노인 요양보호사제도가 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은 배우자끼리도 상대 배우자가 몸이 불편하게 되면 가족이 병간호서비스를 하면서 일정 소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가족 병간호에 관해서도 부담이 적고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해결되는 점이 고령화 시대에 맞는 서비스이다. 이처럼 저출산 시대에 필요한 인력인 조부모나 양육의 경험이 있는 경력단절 40~60대의 유아 양육보호사 자격증을 취득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자격증을 취득해서 본인의 손주들을 돌볼 때에 나라 지원급여를 받을 수 있다면 맡기는 부모의 마음도 한결 편할 것이다.


이 글을 쓰며 나는 젊은 부부들에게 “왜 아이를 안 낳는 거야?”라고 물어보기 전 저출산이 될 수밖에 없었던 대한민국의 현실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아이를 키워왔던 시간보다 젊은 부부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본인의 꿈이었던 직장을 내려놓거나 포기하지 않고 더 좋은 터전과 환경에서 아이를 양육하기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마음에 이 글을 적어보았다. 단순히 실행할 수 없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생명의 풍성함이 넘치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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