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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리영 Nov 09. 2023

인사도 못하고 그녀가 멀리 떠났다.

상실이 남긴 이야기 :죽음

 처음 만난 날 그녀는 안절부절거렸다.  그녀의 딸이 내 아이의 얼굴을 손톱으로 긁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이스크림 쿠폰과 작은 책 두 권을 들고 나에게 찾아왔다.  그냥 괜찮다 하기에는 속상한 상처였다.  그녀가 너무나 미안해하며 사과하기에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며 지나갔다.


 그녀의 아이는 외동딸이었다. 동생이 생겨 큰 아이가  동생을 챙기다 보면  그녀의 아이가 가진 외동아이 성향이 줄어들지 않을까요?라고 말해보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몸이 많이 아파 치료 중이라고 했다..


 몇 년 전 둘째 아이가 많이 아파 아이를 천연오일로 치료해 주시던 분이 해주신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는데 한쪽 가슴은 아이가 절대로 먹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중 혹이 만져져.. 병원에 가니 유방암이었던 아기 엄마가 있다고 했던 사연이 생각났다. 혹시 그분이냐고 조심스럽게 여쭤보니 그렇다고 했다. 아직 항암 치료 중이라서 병원에 다니느라 아이가 엄마와 떨어져 지내면서 불안해하며 돌발행동을 보일 때가 있다고 말했다.


 둘째 아이 치료로 왕복 10시간을 하루종일 써가며 병원진료를 질리도록 다닐 때라 나와 그녀는 서로의 병원 다니는 이야기로 공감대를 형성했다.

 "나는요 서울이 생각만 해도 병원 때문에 싫어서 머리를 서울 쪽으로 하고 자지도 않아요~ " "맞아요 나도 병원이 아닌 여행으로 서울을 가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서로의 고된 병원투어 일화를 나눴다.


 마음이 맞았던 그녀와 나는 한 달에 한두 번씩은 만나 차를 마시거나 맛있는 밥을 먹고 함께 걷기도 하면서 수다를 떨었다. 서로가 고된 병원투어 후에 만나서 나누는 수다는 힘들었던 일정들이 잊어져 버릴 정도로 즐거웠다. 웃음코드도 잘 맞아서 작은 이야기에도 깔깔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내 아이가 아프거나 그녀가 아플 때마다 우리는 자신의 일처럼 서로를 공감할 수 있었다.


 그녀는 마음이 착해서 다른 사람에게 싫다. 아니다는 표현을 잘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를 임신했을 때 우리 아이는 자기 의사표현을 잘하는 아이가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고 그녀의 아이는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정확하고 확실하게 표현하는 아이였다. 다소 엉뚱할 수도 있지만 그런 면이 매력적인 아이였다. 그런 아이의 성향으로 고민할 때마다 나는 유아교육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이렇게 하면 어때요?라는 이야기도 자주 나누곤 했다. 하루의 루틴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라든지 좋은 책을 읽어보고 나눔을 하기도 하고 남에게 다 말하지 못한 불편한 감정도 서로 나누며 깊이 있게 다독이고 공감하며 위로받곤 했다.




 그렇게 5년 넘게 그녀와 친분을 가지고 있던 중 매우 더운 여름이었던 어느 날부터 그녀의 연락이 뜸해졌다. [저번 병원 잘 다녀왔어요?]라고 남긴 톡에 읽지 않음이 떴고.. 나는 마음에 불안함이 들었다.. 시간이 오래 지난 후 그녀의 연락이 왔다.. 갑자기 저녁에 쓰러져서 응급으로 병원에 가게 되었고 정밀 검사를 해보니 뇌로 암이 전이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거 같았다.. 그녀는 애써 괜찮을 거라고 수술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며 자신을 걱정하는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 괜찮은 건지 걱정이 되며 마음이 아팠다. 매일 교회에 가서 기도했다. 수술이 잘 되고 그녀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말이다..


 수술이 잘 되었다는 그녀의 연락에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여전히 힘이 없어서 조금은 누워있어야 해서 조금만 더 기운을 차리면 같이 산책하자는 문자에 안심을 했다.. 그렇게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어도 그녀는 만나지 못했다.. 밥맛이 없고 기운이 없어서 계속 누워있지만 괜찮다는 연락이었다. 그녀의 연락에는 자신의 상태를 괜찮다고 알려 내가 걱정하지 않았으면 하는 배려의 마음이 배어있었다. 그녀는 항상 그랬다. 본인이 아프고 힘들지만 나를 먼저 배려하고 챙겼다. 내가 괜찮은지 걱정했고 힘들어서 괴로울 때면 그녀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나를 응원했고 위로해 주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그녀에게 멋진 그림이 그려진 고급 커피잔 세트를 선물로 보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힘을 내보라고... 그녀는 그 뒤 연락이 없었다. 걱정이 되었지만.. 기다려보기로 했다.




 눈이 많이 내린 구정 연휴.. 한 문자가 그녀의 이름으로 도착했다.. 장례식장.. 나는 그녀의 이름이 부고라는 문자와 함께 온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떠나간 것인가... 미처 인사도 나누지 못했는데.. 꼭 다시 보자고 했는데... 이별의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그녀는 멀리 가버렸다..


 그녀의 장례식장에 도착하자 그녀의 친구와 엄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자를 잘 보지 않는 내가 발인 전날에서야 문자를 확인한 것이었다.. 모두가 나를 기다렸다고 말하며 그녀가 힘든 시간 동안 가장 의지한 사람이 나였다고 했다. 나의 딸에게 그리고 친구에게 힘이 되어주고 웃게 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무엇을 하고 요즘은 어떻게 지내며 누구와 있냐고 말하면 나와 함께 있는데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말에 내가 누구인지 궁금했다고 했다.  


 그래서 모두가 기다렸고, 그녀 또한 기다리고 있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헤어질 줄 알았다면.. 인사라도 할걸.. 우리의 만남에 대해서 헤어짐의 인사라도 나눌걸..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모두들 나와 같이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다고 했다..


 서로가 힘들 때마다 더 이상 아프지 말고 흰머리 왕창 나는 할머니가 될 때까지 지금처럼 웃으면서 지내자고 했는데 그녀는 40이라는 나이에 멀리 가버렸다.  나는 여전히 그녀가 떠난 뒤에도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도 같이 행복해하며 웃어주던 사람 내가 아파서 힘들 때면 더 아픈 몸으로 나를 위로해 주던 사람 내 아이의 성장에 자신의 아이처럼 감사하고 기뻐하던 그녀가.. 이제는 없다...  


서로가 묵혀둔 감정을 나누고 괴로움을 나누며 행복을 나누고 일상 속에 많은 것을 나눴던 그 시간이 나는 여전히 그립다.. 나의 소중한 그녀가 멀리 떠나버림이 여전히 실감 나지 않는다..



그리고 아직도 너무나 보고 싶다...

사진출처는 픽사베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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