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미리 알면 손해라고 했다.

사실 불쑥 찾아와서 문제지....

by 가리영

아이의 기형을 알고 난 후

가장 먼저 했던 건

비슷한 질병의 아이들의 예후였다.


어떤 병인지는 모르지만

아직 아이의 얼굴이 어떤 모습일지

그러니까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지만

막연함이 주는 두려움을 덜어내고 싶었다.



뱃속의 아이가 구순구개열이어서

힘든 어머님은 편하게 전화 주세요


라며 인터넷 한 포털사이트에 전화번호가 있었다.


고민을 하던 나는 전화를 걸었고

나의 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막 달이 되어서 알게 된

지금의 이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내가 무엇을 잘 못 먹은 건지..

보이지 않는 뱃속에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아이의 기형이 내 마음에

너무 극심한 고통을 주는 거 같다며 울먹였다.


전화를 받은 분은 차분한 목소리로


"힘드시죠.. 괜찮아질 거예요.

수술하면 아이 잘 자랄 거예요"


라고 말하며 나의 마음을 공감해 주었다.


이제야 알게 돼서
너무 속상하다는 나의 말에

지금 알아서 참 다행인 거예요.
오히려 더 좋은 거예요.
미리 일찍 알았다면
엄마는 더 속상하고
더 오래 마음이 아팠을 거예요.

그 감정 뱃속의 아이가
함께 오래 같이 느끼거든요.
아이도 함께 불안하고 힘들어요.

늦게 알게 된 걸 감사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엄마는 잘할 수 있어요.

언제든지 궁금한 점이나
위로받고 싶은 일이 있으면 전화하세요.
내가 받아주고 들어주고 함께해 줄게요.




라고 말했다.

그분의 아이는 많이 자라 성인이 되었다고 했다. 비슷한 기형을 갖게 된 부모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공감해 주고 함께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치료가 장기전일 수 있으니 미리 잘 먹고 잘 쉬고 힘을 비축해 두라며 다독여주셨다.


그때 그분의 위로에 나는 마음의 안정감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었다.

물론 갑자기 쏟아져내리는 눈물과

손과 발이 차가워지면서 몰려오는

두려움은 조절하기 힘들었지만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더 좋은 걸 많이 먹고 좋은 생각을

자주 하자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처음 알던 날로 한 달은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거 같았다.


한 번의 수술이 아닌 여러 번의 수술로

아이는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신의 얼굴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괴로워할 거라는 누군가의 조언이

속상한 감정이 생기라며

의도적으로 찔러대는 거 같았다.


뱃속의 아이기 아프다는 소문은

비밀처럼 쉬쉬했지만

사람들의 입을 타고 퍼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내가 어떤 슬픔의 자세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듯이 나를 찾아오곤 했다. 그리고 괜찮아 보이는 나의 모습에 의아해하고 기대하고 왔던 절망의 모습이 아니라는 반응을 보이고 갔다.


아이가 아프다는 사실이 슬펐던 것보다

괴로웠던 건 타인들의 눈에 뻔히 보이는

진심 없는 위로와 동정이었다.


내 일이 아니고 내 아픔이 아니라는 자만감으로 그들은 나를 하나의 이슈 거리로 만들어버렸다.


출산을 기다리는 나의 마음은

긍정이었다 일그러졌다 잘될 거야라고 기운을 냈다 막막했다 감정이 들쑥날쑥거리기 시작했다.


첫째가 아들인데 둘째가 딸이라고 했으니 세상 부러울 거 없이 나는 이제 다 가진 기분이었는데..


예쁜 딸을 낳아서 아기자기 공주처럼 잘 키워보고 싶은 설렘에 마음이 들떠 있었는데..


아이가 태어나면 첫 외출엔 레이스가 달린 예쁜 샤방한 옷을 입혀봐야겠다며 여자 신생아 옷을 보며 웃음을 지었던 나였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절망에서 나오고 싶었다. 나의 카톡명에 일단 나는 <감사>라고 적었다. 그리고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는 노력을 미리 해두자 싶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나의 긍정적인 의지만 있다면 아이의 아픔은 엄마로서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자만했다.


비슷한 개월수의 아이를 임신한 같은 기형을 가진 아이의 산모들은 같은 상황에서 웃고 지내는 나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쳐지려고 할 때면 나에게 전화해서 서로 공감하고 수다로 걱정을 비워내버리곤 했다.


그것은 내 감정을 감추기 위한 더 헛헛한 웃음이었고 공허한 절망에서 메꿔지지 않는 긍정이었다.


과연 나는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아니 우선 잘 낳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쌓여가는 하루하루였다.


그런 나에게 그리고 남편에게 또 다른 누군가가 우리가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그분의 그 한마디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이를 잘 키울 거라는 확신이 서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그때의 에피소드를 나누며

나와 비슷한 상황의 부모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적어볼 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