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아이를 좋아한다. 어린아이들을 좋아하고 사랑스러워하고 아이를 보면 한 번 안아보고 싶어 한다. 그런 남편은 첫 아이가 태어나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좋아했다. 운전을 하다 차가 멈출 때마다 뒷 좌석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나를 보는 게 아닌 첫째 아이를 수시로 사랑이 담긴 눈으로 보느라 운전이 어려울 정도였다.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생각했고 자신의 아이라는 사실을 신기해하며 경이로워했다. 그런 남편에게 둘째 아이가 딸이라는 소식은 마음의 설렘과 기대감을 갖게 했다.
임신 7개월 구순구개열, 언청이라는 아이의 선천성기형 소식을 듣고 남편은 어떤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아내인 내가 당황스러움을 넘어 불안해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 그랬던 거 같다.
8개월쯤 우리는 아이의 출산을 위한 병원과 추후 아이의 치료를 위해서 지방병원에서 권유한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진료를 보러 갔다. 고위험 산모들을 위한 산부인과 진료실 앞에 수많은 산모들이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이 아닌 침울함이 차 있는 얼굴로 앉아있었다. 산부인과 진료실은 두 명의 산모가 함께 들어갔다. 앞에 있는 산모가 진료를 보면 그다음 산모가 기다렸다 진료를 보는 순서였다. 앞에 있는 산모가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눈물을 흘리며 나갔다. 그다음 우리 부부가 앉아 의사 선생님과의 진료상담을 기다렸다. 선생님은 초음파를 보시더니 여자아이네요. 지금은 아이가 많이 커서 전체적으로 다 자세히 볼 수는 없지만 입이 갈라진 건 보입니다. 제왕절개 수술 날짜를 잡아드릴 테니 그때 만나면 되겠습니다.라고 말했고 남편은 갑자기 손을 들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 선생님 제가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그동안 남편은 어떤 점도 궁금해하거나 힘들어하는 마음의 표현이 없었다.
나 또한 남편의 질문이 궁금했다.
남편은
" 선생님 이 아이가 태어나면 제가 이 아이의 외모를 보고 많이 놀랄까요? 그리고 저희 부모님이 보시고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일까요?"
나는 남편의 질문이 섭섭했고 사실은 아이의 기형을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인지를 고민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남편의 이런 질문은 사실 시부모님의 완강한 아이의 출산에 대한 반대의사 때문이었다. 서울에 진료를 보러 가는 우리 부부에게 아이를 사산시킬 것을 강요하셨고 아이를 출산해서 잘 키워볼 거라는 우리 부부에게 다시는 보지 말자는 통보와 함께 친정부모님께 나를 설득해서 아이를 낳지 않도록 할 것을 강요하셨다.
뱃속의 아이가 너무 안쓰러웠다. 연약함을 가졌다는 이유로 생명을 존중받지 못해야 한다는 것이 미안했다. 병원에 진료를 가는 나에게 마지막까지 수술이 가능한지를 알아보고 오라고 하셨다. 딸의 고난으로 속상해하는 나의 부모님께 잔인한 요구를 하시며 나와 아이를 부인하고 싶어 하셨다. 병원에서는 그런 수술은 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수술을 하게 되면 산모가 사망할 수도 있다고 했다.
우리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다. 젊음이라는 시기가 그 연약함을 단단하게 지키곤 한다. 나이가 들고 노화가 올수록 단단함들이 하나씩 시간이라는 흐름 속에서 떨어져 가게 된다.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질병이 찾아오고 그렇게 연약함은 아픔이 되고 나약함으로 변해간다. 나는 나약함주는 질병이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는 척도가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는 그 사람이 갖게 된 아픔은 함께 존중받고 돌봐줘야 하는 가족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부모님이나 가족 중 한 명이 아프더라도 다른 가족이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해야지라는 각오가 있었다.
그런데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이는 존중받지 못했다. 뱃속에서 태동을 하며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아이는 기형을 갖고 있다는 사실로 누군가에게 살고 죽음을 결정해야 한다는 타의적인 강요를 받았다. 아이의 엄마로 나는 위로받지 못함과 타인들에게 예기치 못한 죄인이 되어있었다.
남편은 그런 점에서 의사 선생님께 질문했던 거 같다.
의사 선생님은 온화한 미소로 남편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 세상에 모든 아이는 소중합니다. 어떤 병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귀한 생명이니까요. 나는 수많은 선천적인 아픔을 가진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그 아이들 모두 사랑스러웠고 소중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아픔이 있더라도 그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부모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의 힘으로 잘 자랐고 잘 자라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부모님들도 이 아이를 잘 키울 겁니다. "
" 그리고 한 할아버지가 비슷한 기형으로 태어난 아이를 단지 출산을 해줬다는 이유로 저를 몇 개월 동안 병원에 쫓아와 따진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아이를 태어나게 했냐고! 이 아이 어떻게 할 거냐면서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저 손을 잡아드리며 괜찮아질 겁니다라고 말해드렸죠. 그래도 수십 번을 당신 때문이야!라고 말하며 소리를 지르시더군요. 아주 곤욕스러웠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첫 수술을 마치고 온전한 입술로 회복된 것을 보시곤 저에게 그동안 죄송했다며 사과하고 가셨습니다. 아이도 건강하게 잘 자라서 수술을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더 이뻐질 겁니다. 힘내세요~ 제가 잘 출산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
남편은 의사 선생님의 따뜻하면서 진심이 담긴 이야기들에 위로를 받는 모습이었다.
나 또한 옆에서 이야기를 함께 들으며 아이에게 엄마가 잘 키워줄게. 그리고 더 사랑해 줄게라는 마음의 소리를 전했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너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딸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어떤 모습이라도 어떤 아이일지라도 그냥 너의 존재는 특별하다는 사실을 전해주었다.
그렇게 집으로 다시 먼 길을 돌아왔고 우리는 출산 날짜만을 기다렸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출산의 스토리도 다 다양하다. 평범하게 태어날 줄 알았던 둘째 아이는 출산마저 기적의 하나였다. 다음에는 아이가 태어났던 순간들을 이야기 나눠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