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나는 당신을 좋아해> 말하기 3일 차

by 가리영

3일 차 아침 일어나자마자

남편에게 <나는 당신을 좋아해>를 말해야 할 적절한 타이밍을 잡기 위해 남편의 동태를 살폈다.


남편은 아침부터 휴무일임에도 불구하고 급한 전화를 받고 있었다. 회사 설비에 트러블이 생겨서 들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11시는 자동차 엔진오일을 갈고 회사를 갔다 오면 오후 3시쯤이 되겠다는 남편의 간략한 설명에 빨간 휴무임에도 불구하고 딸과 함께 단둘이 집에 콕 박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니 뭔가 속에서 부글거린다.


*당신은 일 더 한다고 관리자라서

OT수당 주는 것도 아닌데 꼭 가야 돼?

*아니 돈을 더 줘야 일을 하는 거지

뭔 책임감으로 쉬는 날까지 출근해야 되냐고~!


남편이 말한다. 톡 쏘듯이


그럼 당신이 뭐 내 직장생활 책임져줄 거야?

어쩔 수 없어 나도 가봐야 되니까 간다고 하지!!


한마디 더 하고 또 하다 보면

아침부터 싸울 게 뻔하다.


에라! 냅다 말해버렸다.


나는 당신을 좋아해!


남편의 표정이 헛 하고 웃는다.

저 여자 왜 저러나 하는 표정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남편은 그렇게 출근을 해버렸다.


해가 이제는 져물어가려고 할 즈음


남편은 집에 돌아와서 미안했는지 늦은 오후 겸 저녁시간의 계획을 말한다.

목구녕까지 부글거리는 속마음을 휘젓는 말이다.

이 남자 치명적 단점이 눈치코치가 없다이다.


*지금이라도 1시간 30분 거리 목포를 갔다 올까?


*아니 부산 옆 기장에 무슨 휴양림이 8만 원이던데 내일 갔다 올까?


나는 갑작스러운 행동을 싫어한다.

몸이 약한 둘째 아이의 컨디션도 챙겨야 하고

나 또한 몸이 피곤해지는 시간에 왕복 3시간 거리를 늦은 오후에 가자는 건 딱 싫었다.

이 부분은 신혼 때부터 남편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늦잠과 점심 먹고 또 낮잠을 자는 늦은 생체시계로 늘 나들이를 오후 3시쯤 간 게 지긋지긋했기 때문이다. 아침 오후 자고 또 잔 남편과 달리 오후 3시쯤이면 나는 피곤했다. 나의 생체시계는 새벽 6시에 시작하기에 그때쯤은 나른하고 눈이 때끈하게 빡빡하며 건조해졌다. 서로가 너무나 다른 생체시계라 주말이나 연휴가 되면 서로의 마음속 하루 계획이 달라도 너무 달라 싸우기 일쑤였다. 아니 나로서는 짜증 나는 일정이었다.


결혼 10년 차부터는 이럴 때 나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비용지출을 해보았다. 부글거림을 나 나름의 시발비용으로 달랜 것이었다. 부글거림의 강도가 높을수록 비용은 높아졌고 낮을 때에는 1~2만 원 정도의 배달음식을 먹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오늘 거는 그래 좀 더 참아보자 남편이 틀린 게 아니라 다름이라고 생각하면서 불필요한 지출을 하지 말아 보자라는 이를 악무는 결심을 해보았다.


남편은 주로 먹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라 먹고 싶은 거 사줄게~ 라며 자신의 성향으로 나를 달랜다. 안다. 사줘 봐야 남편의 스케일은 분식이다. 됐다. 그 따위로 내 마음을 달래고 싶지 않다. 내 알아서 먹고 말지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다.


여기저기 가자는데 비가 왕창 쏟아진다.

그냥 비도 오고 전통시장이나 가보자!라고 말하며 시장 이곳저곳을 걸어보았다. 어린 시절 다녔던 추억의 전통시장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니 마음이 좀 풀어진다. 그러다 남편이 뭔가를 하나 잡으며 이거 꼭 사고 싶다고 말한다. 현란한 무늬의 몸빼바지! 집에서 이걸 입으면 얼마나 편하겠냐며 꼭 사야겠단다..


힘을 꽉 주고 있던 잇몸이 비틀거리는 심정이다. 눈을 딱 감고 생각해 본다. 남편이 몸빼바지를 입고 있을 집 안에서의 실루엣................


더운 여름 내내 불어 터지게 생긴 뱃살을 드러내고 웃통을 벗고 다닌 것을 보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이상한 몸빼바지를 입겠다니....


보고 싶지 않다. 나의 눈을 괴롭게 할 터이니


나.. 느... 는 도저.. 히... 나는.. 당.. 신.. 을 조.. 아.. 해.. 를 할 수 없겠구나라는 단념이 내 마음을 쥐어잡는다.


안돼! 그거 입고 있으면 진짜 싫어.

(진짜로 꼴 보기 싫을 거 같았다.)

여자는 청각에 예민하고 남자는 시각에 예민하다고 하지만 사실 부부 사이에도 어느 정도의 시각적 예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전통시장 곳곳에 숨어 있는 몸빼바지를 볼 때마다 남편은 졸라댔고 나는 절대 허락할 수 없다며 집으로 돌아왔다.



휴... 오늘은 남편이 싫을 행동을 할 때마다.

아니 내가 좋아하지 않는 내 기준의 꼴 뵈기 싫은 말과 행동을 할 때마다. 받아치지 않고

(나는 당신을 좋아해!)라고 말하며

서로에게 생길 수 있는 갈등을 싹둑 잘라버렸다.



억지로 할 때도 있지만 싫을 때에도 나의 뇌를 속인다. 나는 싸우기 싫으니 나의 마음아 남편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렴. 아무튼 당분간 몸빼바지가 공포스러워 전통시장을 안 갈 예정이다. 참고로 나는 댄디하면서 미국 유학을 다녀온 듯한 폴로남을 좋아한다. 단지 남편이 그런 취향을 안 가졌을 뿐이다.


항상 길고 긴 휴무는 부부 사이를 위태롭게 한다.

일을 하느라 떨어져 있는 시간이 서로를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음을 감사하며 오늘도 잘 버티며 보냈다. (휴무일이 3일이나 남았다 -_-;;)


아~오늘 하루~ 어금니를 어찌나 자꾸 꽉 힘을 주며 보냈는지 턱이 아프다..얼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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