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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리영 Jan 09. 2024

무조건 하던 [ 응 ]에서 [ㅇ]을 지워버렸다.

나를 지키는 연습

 오랜 시간 지워지지 않는 말과 눈빛 그리고 그 시간만이 가지고 있던 분위기가 여전히 마음에 남아있다.


 그걸 고이 접어서 넣어뒀다기보다는 구깃하게 접어서 한쪽에 버려두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지울 수 있다면 흔적이 남더라도 그 부분만  쓱 지우거나  하얗게 그어 덮어두고 싶다. 그리고 절대 그걸 궁금해하며 긁어보지 않으리라 , 들쳐보지 않으리라, 그저 덮어두었던 이유가 있었지라는 마음만 기억하리라 생각해 본다.

  마음속 감정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보지만 반갑지 않게 수시로 쑥 올라와 또다시 기억해내고 만다. 얼굴에 열이 올라온다. 미처 억울함만 남아버리고  말하지 못했던 내 감정들이 벌겋게 달궈져서 보글거린다.  


 살짝 구겨진 기억의 틈새마다 보이는 나를 찔러대던 말들,  머릿속으로 제발 내가 이해할 수 있고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납득할 수 있는 표현이 나오길 기다리던 나의 마음, 이미 무슨 기준으로 나를 결정 내렸는지 모르지만 나는 자신의 감정과 일상을 마구 찔러버린 가해자가 되어있었다.


 내가 그렇게 당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어서 억울했다. 그저 응과 끄덕임이 주는  한결같은 수긍이 아닌 그동안 잘 표현하지 않던 '아닌 거 같다'는 마음을 전해서일까? 완벽함의 정석이었던 자신에게 가볍게 던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 자신의 완벽함을 건드려버린 것이다.  정해진 틀에서 그 틀 대로 모든 것이 딱딱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아닌 것도 같다고 말하는 내가 자신의 틀에 칼을 꽂았다는 듯이 말했다.


 인생의 절반 정도를 살면서  아닌 거 같은 상황과 아닌 사람, 아닐 수밖에 없는 경우를 겪어오며 지냈다. 그때마다 벗어나고 싶은 자리가 주는 불편함이 있었다. 피하고 싶지만 참아내야 하는 시간의 정해짐도 있었다. 다수가 따라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그저 마음 한편에 내 소신이 변하지 않도록 꼭 붙들고 있어야 했다.


 서로 지내야 할 시간들이 남았기에 그렇다고 말하며 내 생각을 눌러댔다. 그게 마음에 편했고 나는 배려라고 생각했다. 배려가 익숙해지고 당연한 게 될수록 나의 생각을 정확하면서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연습은 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배우지도 못했다. 그렇네~ 그랬구나~아~ 그랬어라는 정도까지만 하면 좋은데 나는 이미 상대의 감정의 한편에서 같은 마음으로 동조하는 편이었다.


 마치 내가 함께 당하고 힘든 것처럼 괴로움에 함께 헤쳐나가야 하는 마음으로 그 마음이 옳은지 그른지는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맞다는 마음으로 상대의 마음이 충분히 시원하도록  수긍의 단지를 열심히 퍼부어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관계는 돈독해졌다고 생각했고, 나로 인해서 웃고 좋아하는 모습이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관계가 더 중요했기에 정확한 판단은 하지 않았다. 늘 마음의 위치를 상대보다 아래에 두고 상대가 무조건 옳다고 해주었다. 그렇게 상대의 오류를 수긍하며 받쳐 주고 있었다. 든든한 하나의 수긍자. 옳지 않더라도 수긍한 하나의 과반수가 있음을 정당하고 싶었던 한 표. 그게 나였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오해를 만들어 시작한 상대의 결정에 아주 오래  속상했던 이유를 돌아보았다. 나를 생각하는 배려가 없었다. 그저 이제는 자신의 마음에 무조건 적인 수긍의 한 표를 던지지 않아 옳지 않아 진 사람이라는 판단만 있었을 뿐.

 

 이 일로 나는 무조건 수긍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아직도 서로의 마음에 불편함이 남지 않을 정도로 아니다고 말하는 건 잘 못한다. 하지만 아니다고 생각한 부분에 있어서는 그저 가만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옅은 미소마저 보이지 않고 무조건 하던 []이 되지 않도록 ㅇ하나를 덜어내고 []만 유지하며 듣는다.  상대의 생각과 감정이 온전히 상대 안에 버려지도록 나에게 와서 쌓이지 않도록 그런 관계를 유지하는 적정선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가진 나만의 수긍과 공감 한 표가 누군가에게 만만한 과반수가 되지 않도록 나를 지키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사진은 픽사베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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