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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리영 Jan 11. 2024

새벽 깊은 밤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

시간 속에 눈물이 가득 차 오른다.

 3번째 수술날짜를 잡기까지 몇 번의 좌절과 애타는 마음이 반복되었다.  왜 우리 아이만 아직도 수술을 못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지내야 했다. 병원 경비원만 알아도 수술이 빠르다는데 우리 주변엔 어떤 인맥도 없었다. 그저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었다.


 갑작스럽게 병원에서 감기로 수술을 못 받게 된 아이가 있어 다음 주에 짐을 챙겨 올 수 있냐는 전화가 왔다. 그토록 기다리던 수술날짜인데 갑자기 연락이 오자 당황스러웠다. 남편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도하며 기다리던 수술이니 가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는 전신마취를 하고 입천장의 모든 근육과 조직을 끌어당겨 뻥 뚫려있었던 입 안을 메꾸는 수술이 남아있었다. 그동안 수술을 하지 못해 뚫려 있던 입천장으로  이유식 한 수저를 먹을 때마다 삼키지 못하고 코로 흘러나오고 귀로 들어가는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귀로 들어간 이물질은 아이에게 중이염을 걸리게 했다.  


 아이의 병명은 구순구개열. 그중 삼종세트 입술, 입천장, 잇몸이 다 갈라져  가장 심각한 수준의 안면기형으로 태어났다.  성인이 될 때까지 몇 번의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기다리던 수술은 그중 3번째 수술이었다.


 아주 작고 어린아이 일 때 입술을 만드는 2번의 수술을 했지만 3번째 수술이라고 해서 마음이 놓이고 익숙해지진 않았다.


 수술실 앞 대기실은 온기가 없다. 그곳은 항상  적정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한기가 드는 곳이다. 수술실 장 안으로 떨어져 보내야 하는 아이의 손을 잡아본다. 무엇을 하는지 알고는 있을까? 전 날 저녁부터  금식한 아이를 들여보내놓고 대기장소에 앉았다.  그리고  남편과 말없이 수술이 끝나는 시간을 기다렸다.


 수술실 안에서 아이는 어떻게 있을까?  천천히 떨어지는 모래시계처럼 한 톨 한 톨 시간이 지나간다. 간절히 내 아이의 회복과 치료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시간을 버티고 기다린다. 가벼운 말 한마디조차 누구도 나누지 않는다. 그저 멍하니... 그러나 먹먹한 마음으로 그 자리를 기다리고 지킨다.  


 5시간이 넘는 수술 끝에 아이의 수술이 종료되고 회복실로 옮겨진다는 전광판이 뜬다. 이미 너무 꼭 쥐고 있었던 손에 땀이 촉촉해진다. 아이는 그 시간을 잘 버텨내고 의식이 돌아와 이동침대에 누워 나왔다.  의사는 아이의 체구가 작아서 어른의 손이 입 안으로 들어가 수술하기에 꽤 어려운 수술이었다고 말했다. 잘 봉합해 놓았으니 수술 후 날카로운 것에 찔리지 않도록 아이의 손을 묶어두고 지내야 한다고 했다.


 아이의 얼굴을 돌아보니.. 수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가 느껴진다. 온 얼굴이 시퍼런 멍과 소독약으로 얼룩져 있다. 5시간이라는 수면마취 동안 아이는 무의식 속에서 입을 벌리고 있어야 했다.  치료를 위해서 한 수술이었지만 처참하게 붓고 멍들어 있는 아이의 모습이 마치 내 잘못인데  아이가 억울하게 맞은 느낌이었다.

코와 입으로 피가 계속 나와 잠도 잘 못자고 아이는 힘들어했다./수술 후 원래의 모습을 알아 볼 수 없게 붓고 멍들어 있는 아이의 얼굴에 마음이 미어지던 시간이었다.


  아이는 퉁퉁 부은 얼굴로 눈도 뜨지 못하고 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입만 벌리고  우는 아이를 잡고 나는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너를 엄마가 지키지 못해서...  부족한 엄마 때문에  네가 이렇게 고통을 받는 거 같아 .... 미안해.... 엄마가 대신 아플 수도 없고..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엄마가 정말... 미안해....."   


 그렇게 병실로 돌아왔다. 수술 후 아이의 입 안에 생기는 피가 목 뒤로 넘어가면 질식할 수 있다고 했다.  아이의 팔은 입안을 건들지 못하게 꽁꽁 부목으로 묶어둬야 한다고 했다. 보호자 중 누군가는  아이를  가슴에 엎드려 눕히고 있으면서  5일간 입원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아이는 통증이 심해 쉽게 잘 자지 못했다. 소리도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아이는 허공에 아픔을 호소하며 울었다.

 

 통증에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안고 복도로 나와 간이 의자에 앉았다. 새벽이 되고 나는 졸렸지만 아이를 가슴에 엎드리게 안고 잘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아이가 갑자기 숨을 못 쉬면 안 되었기에 나는 깊이 잘 수 없었다. 인생에 피할 수 없는  형벌의 시간 중 하나였다.  나는 아침이 올 때까지 엄마이기에  버티고 이겨내야 했다.  


 한 아빠도 아이를 안고 나왔다. 그 아빠는 허리를 벽에 기대고 서서 아이의 몸이 천장을 바라보게 두 팔로 들고 서 있어야 했다. 아이의 몸 중 팔 다리는 무거운 석고붕대로 감싸있었다. 아이는 얼굴 외에 장기와 팔다리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태어났다고 했다. 다리는 무릎 아래로 없었고 손가락도 세 개로  서로 붙어있어 떼어내는 수술을 했다고 했다.

 

 서로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자식을 위해서 버텨야 하는 시간은 같았다. 누가 더 힘들다고 할 수 없이 그저 내 아이가 이 시간을 잘 이겨낼 수만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깊고 어두운 저녁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는 왜 내 아이가 이렇게 아파야 하는지 너무 속상하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아빠와 아이는 무슨 사연이 있는 건지 묻게 되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적고 다음에 이어서  적어보겠습니다......)


사진은 픽사베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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