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리영 Jan 18. 2024

방 한 구석, 흠뻑 젖은 물걸레

어떤 자리에서 전해온 한 마음

 

 아침이면 눈을 뜨기 싫었다.  마주하기 힘든 하루가 날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입이 갈라진 모습으로  둘째 아이는 천장에 달린 모빌을 보고 놀고 있다.  마치 꽃잎이 제각각 활짝 펼쳐진 모양으로 입은 웃고 있다. 아이는 행복하다. 엄마가 함께 있고 푹 자고 개운한 기분으로 아침이 되었다는 사실이 신이 난 거 같았다.  엄마 속도 모르고... 행복한 아이를 보는데.. 나는 마음이 힘들기만 했다.


 내가 아침이 되길 싫어한 이유는 5킬로가 돼야 수술할 수 있는 아이와의 하루종일 먹이기 전쟁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특수젖병을 종류대로 사본 거 같다. 아픈 아이들의 물품은 구하기도 힘들지만 비싸기도 엄청 비싸다.  주둥이가 긴 메델라 젖병부터 한 방울 씩 빨지 않아도 떨어지는 특수 장치가 있는 젖병까지 별 걸 다 사서 물려봐도 먹질 못한다.  아이를 키우는 게 이렇게 서툴지 몰랐다. 아니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모든 게 꼬여버린 상황에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몰라 한참을 엉킨 매듭과 매듭사이를 만지기만 했다.  


 풀리지 않는다고 포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책임지고 키워야 할 소중하고 귀한 생명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아이가 치료해야 할 수많은 일들이 버겁게 다가왔다. 서울까지의 교통비, 진료비, 치료비는 매달 통장을 텅텅 비워가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빠듯한 살림을 어디까지 털리나 알아보자는 듯이 사정없이 털어내는 거 같았다. 다 털리고 먼지만 날릴 때는 다음 진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되었지만 그것마저 깊이 생각할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아이의 안면 기형이 더 큰 문제였다.




 압구정에 있는 한 치과에서 아이와 비슷한 기형을 가진 부모들은 오고 가는 경비와 시간 속에 자신의 몸과 돈을 쏟아가며 아이의 교정치료를 받고 있었다.  교정장치 비용만 350~400만 원에 매번 갈 때마다 최소 20만 원의 경비가 들었다. 오고 가기를 일주일에 한 번씩 몇 달을 가야 하니 큰돈이 드는 치료였다.  우리는 그 돈을 낼 엄두가 안 났다. 아이에게 미안하기도 했던 부분이었다.


 둘째 아이가 다니고 있던 병원은 치과를 연결해 주었는데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교정치료기를 80만 원에 맞춰주고 집에서 교정을 하고 오라고 했다. 마치 동남아의 한 부족이 뭔가를 캐낼 때 쓰는 원시적인 형태의 교정기였다.  아이의 입에 끼울 수도 없었고 교정기 때문에 아이는 더 먹을 수도 없었다.  같은 곳에서 치료를 받는 부모들과 이야기해 보니 다 같은 처지라고 했다. 그 이상스러운 교정기 때문에 아이는 먹지 못하고 수술 날짜는 뒤로 미뤄졌다. 볼 때마다 돈만 쓰고 애물단지 같은 교정기에 화가 났다.


 성형외과와 치과의 협연치료가 있는 날 난 교정치료기를 하지 않았는데

" 아 이제 애가 교정이 잘 되었네요"

라는 담당교수의 말에 몇 달 동안 참고 있던 불만을  항의를 했다.

"그래요? 뭐가 달라졌는데요? "

"아 치과에서 교정을 얼마나 잘해줬는지 교정이 잘 되었어요 "

라고 말하며 교정도 안 된 아이의 입을 보면서 서로를 아첨하고 있었다.

나는 되지도 않는 교정기를 보여주며


"이거요! 한 번도 안 했어요! 아니 요! 한 번도 못했다고요!! 할 수 없고 되지도 않는 구 시대적인 교정기로 뭘 하라는 거예요! 압구정에 있는 치과에서 하는 교정기랑 이건 차원이 달라요~ 아무것도 안되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벌거벗은 임금님 같은 교정기라고요!! "


 라고 말하자 두 교수의 얼굴이 붉그락 거린다.  레지던트들에게 묻는다


"이 엄마가 하는 말, 거 사실이야?!!  "


레지던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아.. 네.. 그게.. 교정이.. 안 되는 게.. 맞긴.. 합니다... "


 그렇게 내가 따지면서 말하기 전까지 수 없는 시간 동안 아픈 아이들의 부모들은 되지도 않는 교정기에 수많은 시간과 돈을 쓰고 있었다.


[ 이런 낙후된 의료기술 같으니라고!]


 몇 달의 애달프다 못해 서러움의 끝판이었던 치료기간을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 뒤로 그 이상스러운 교정 치료가 현재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난 모르겠다.  제발 개선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이에게 손해가 될 까봐 다들 망설였지만 나는 교정이 되지 않는 이상한 교정기라는 사실을  꼭 말해주고 싶었다.  

오래된 치료방법을 고수하기보다는  더 연구하고 개선돼야 함을 알려주고 싶었다.

출처 키즈스콜레 벌거벗은 임금님  :그림책 사실을 말해주는 소년

 나는 벌거벗은 임금의 모습고 벗었다고 말해야 하는 소년이다. 절대로 입지도 않은 옷을 입었다고 말할 수 없다. 느끼는 것 보이는 거 잘못된 사실에 대해서 누군가는 진실을 말해야 거짓되게 흘러가는 걸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일의 여파로 내 아이는 병원에서 미운털이 박혔다. 첫 번째 수술날짜에 대한 소식은 하염없이 길어졌다. 시간이 길어지는 동안 나는 잘 먹지 못하는 아이를 데리고 외출이 어려웠다.  추운 겨울이라 날씨도 춥긴 했지만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고 갇혀버린 하루가 괴로웠다.


'나 사실 외로워... 아이를 낳았는데 누구에게도 축하받지 못하고  아이의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이 현실이 괴로워... 무겁고 고통스러운 내 아픔이 드러나는 게 누군가에게 가볍게 소문처럼 가십이 된다는 게 속상해... 나도 이런 일이 있을 거란 생각도 못했어.... 나는 지금의 나의 이런 모습이 아직도... 낯설고.... 두려워..'


라는 마음의 소리가 가슴 깊은 어딘가에서 숨어 울고 있었다.



 젖병으로 못 먹으면 내가 수저로 한 수저씩 떠주지 뭐~ 하며 컵에 분유를 담아 아이에게 한 수저씩 떠 먹여보기 시작했다. 울컥 들어가면 아이는 컥컥 거리며 괴로워했다. 적당량을 떠서 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이 하루  1200ml를 먹을 동안 우리 아이는 230ml를 겨우 먹었다.  한 수저 한 수저 4킬로도 안 되는 작은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치 고대 동굴에서 한 방울  물방울이 떨어져 오랜 시간 쌓인 기괴 암석이  기다리는 수행 같았다.


 막연했고 까마득했고 어깨가 무엇보다도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팠다.



 그러다 아이가 잠들면  먼지가 쌓인 방바닥을 청소했다.  무릎을 꿇고 구석구석 쌓여있는 바닥을 젖은 물걸레로 닦아낼 때면 무거운 고민도 한 더미 쌓인 걱정도 함께 사라졌으면 싶었다.  눈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 언제까지 난 힘들까? 이 괴로움이 끝나는 시기가 10년이 넘는다면 나는 버틸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떨어지는 눈물을 닦는 건지 먼지를 닦는 건지 의미 없는 걸레질을 했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신 건가요?'


 묻고 싶었다.  하지만 대답이 없다. 그저 나는 버티는 힘을 키우는 수밖에.... 짜증도 나고 서글프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감정에 있어서 어두운 모든 이야기가 나에게 몰려오는 거 같았다.


' 나... 누구보다도... 잘 키우고 싶고..

잘해보고 싶었는데.... '


 꼬인 매듭하나를 잡고 혹시나 하고 매 만져 본다. 너무 많이 꼬여서 막막했지만 하나라도 잡아보기로 했다.  풀릴 매듭이 아니더라도 노력해보고 싶었다. 조금씩이라도 풀려야 포기하지 않을 거 같아서 나는 뭐라도 풀릴 기미가 보이길 간절히 바랐다.




  울고 있던 마음에 부드러운 한 마음이 들어왔다.


 '바뀔 수 없는 현실이란 거 알아.... 근데... 이왕 보내는 거 웃으면서 보내면 좀 더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


' 웃.... 어... 보.. 라... 고??'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웃으면서 버텨보라는 마음이었다.


' 그... 래?.. 웃어... 봐??'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울면서 지내기보다는 웃으면서 지내봐..

피할 수가 없지만 웃어봐...

오래가야 할 길이지만 그래도 웃을 일을 찾아서 한 번이라도 웃어봐.


 슬픔이 가득 찬 마음에 웃음이 들어와 깔깔거리듯 파장을 일으키면 슬픔은 안개처럼 날아갈지도 몰라. '


 젖은 물걸레를 들고 방 한 구석을 닦던 나는


'그래 그냥 웃자. 어쩔 수 없는 일에 울면서 괴롭게 사느니 웃으면서 살자. 어차피 보내야 하는 하루 웃으면서 보내면 나 조금이라도 덜 힘들지 몰라.'


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갑자기 들어온 한 마음이

나를 다독이기 시작했다.  


'오늘도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웃는 모습으로 사느라 고생했어.


웃으니 어때?


조금 더 마음이 풀리지?


생각해 보면 소소한 일들

널 웃게 하지 않아? '


라고 마음의 소리가 대화를 걸어왔다.




 너무나 슬프고 괴롭지만 포기할 수 없어 버텨내고 있던 하루에 나는 단순히


[그냥 웃고 살자]


라고  다짐하며 작은 일에도 웃어보기 시작했다.


 주변의 사람들은 내 모습을 보고 힘이 난다고 했다. 너무나 힘든 상황에서도 도대체 밝은 모습이 어디서 나오는 거냐고 물었다. 그리고 뭔가 모르게 감동적이라고 했다.


 자신의 삶은 내가 살아가는 삶에 비하면  힘들지 않은 편인데 더 높은 곳에 더 나은 모습으로 사는 사람과 비교하느라 마음이 움츠려 들었다고 했다. 당연하게  움츠리고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하루 속에서도 웃고 있는 나를 보고 처음엔 의아해했다가 반성하게 다고 했다.  나의 모습이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이는  힘겨울 수밖에 없는 하루를 버티고 살아가는 내 모습만 봐도 자신의 하루를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고 했다.  잘 버티고 힘들지만 웃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나의 웃는 모습이 자신도 웃게 해 줬다고 말했다.


내가 웃게 된 이유는 사실 나도 모르게 찾아온

한 마음이었다. 그런 내 마음의 변화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다는 것이 나는 신기하면서 감사했다.


아직도 집에서 하루를 보내다 그때 내가 깨달은 그 방 한구석을 지날 때면


 [울고 살지 않고
웃고 살게 해 줘서 고맙다]



는 마음이 함께 스쳐간다.  


힘들어도 웃자.  이왕 이렇게 된 거 웃기라도 해보자.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그게 버티는 힘이 된다. 당신도 눈물을 닦고 한 번 웃어보길 바란다. 웃음이 생각하지도 못한 감사를 가져올 것이다. 찾아 온 감사가  서서히 당신의 꼬이고 꼬인 매듭을 풀어갈 것이다.


데살로니가전다 5장 16-18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미지 출처는 네이버 입니다. 별다락캘리 출처  

사진출처는 픽사베이 네이버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아이의 머리에 전기가 흐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