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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리영 Feb 05. 2024

당신의 첫 아이디는 무엇인가요?

27년 전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 시절 이야기

중학교에 입학하자 컴퓨터라는 과목이 생겼다.

집에 486 컴퓨터가 있으면 부자이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손편지보다는 이메일을 통해 소식을 주고받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화처럼 내가 쓴 글이 다른 곳으로 컴퓨터만 있으면 간다고? 신기하면서도 상상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선생님은 새 학기 후 2달의 타자 연습이 끝난 우리에게 각자의 이메일 아이디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아이디가 뭐야?

 뭐 집 주소 같은 거야

라고 친구가 말했다.


 지명이나 사람의 이름처럼 인터넷상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것을 '아이디'라고 친구가 이야기해 줬다.


생소한 이메일과 아직은 낯설던 컴퓨터 활용으로 아이디라는 게 꼭 필요한 게 아닐지도 몰라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숙제로 내준 아이디 정하기를  무엇으로 할지 크게 고민하지도 않았다.  친구에게 직접 전하는 손 편지가 좋아서 고집스럽게 메일 따위는 쓰지도 않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 아이디 그거 중요해?


 라고 말하며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를 미뤄두며 반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아이디가 없는 상태였다.


컴퓨터 부장을 맡은 친구는 시골 중에 시골에서 살았지만  농사짓는 중에도 앞서가는 교육마인드를 가진 부모님 덕분에 우리 중에서 가장 컴퓨터를 잘 다뤘다.  이미 학원을 다녔다며 타자도 가장 빨랐고 이메일이나 컴퓨터를 가지고 하는 수업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야야~너만 지금 아이디 없어~얼른 말해줘~~  


-그냥 네가 알아서 해줘~나 어차피 그거 안 써

니 맘대로 해도 상관없어~


야 진짜지? 진짜 내 맘대로 한다.


그렇게 성의 없는 나의 대답에 친구는 자기 마음대로 내 아이디를 적어 냈다.


선생님은 이메일 아이디로 서로 메일 보내는 연습을 해보신다고 했다.

친구가 적어준 내 아이디는 정말이지 어려웠다.

이게 뭐야 하며 영문을 하나씩 따라 적어보았다.


rlarkdudEhdRh@hanmail.net


영어대문자까지 더해서 적힌 아이디에 나는 하나씩 적어가다 화딱지가 내려앉았다. 옴마야~~ 길게도 만들어놨네. 친구에게 이게 무슨 의미냐고 내 아이디 도대체 뭐냐고 물어보니 그건 비밀이라고  메롱을 날리고 도망갔다.  

그 뒤로 사람들과 친구들은 이메일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안부를 묻는 게 유행이었다. 처음 만난 지인들이 이메일을 물어보면 나는 나도 모르는 아이디를 불러주느라 애를 먹었다.


r.. l... a... rk... du.. d.. EhdR... h


다들 이렇게 어려운 아이디는 처음 본다면서

이메일이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비밀이라고 말하며 살살 도망 다니는 친구를  달래며... 제발 부탁인데 무슨 의미이고 왜 내 아이디가 저렇게 어려운지 너의 의도를 말해줄래?라고 사정사정을 해보았다.


친구는 정말 화 안 낼 자신이 있냐며 물었다. 나에게  몇 번의 다짐을 받고는  작은 쪽지를 건넸다.


궁금함과 문제 파악을 위해 펼쳐본 쪽지 안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너의 아이디는.. 사실.... 한글로 바꾸면 그러니까 뭐냐면......


김가영똥꼬야

라고 쓰여있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말.. 똥꼬...

아이디를 고민하지 않았던 나의 덜렁거림과 미루길 좋아하던 그 시절의 습관을 후회한 들... 어쩌리오...


친구들은 영어와 숫자가 적절하게 어우러진

외우기도 쉽고 말해주기도 쉬운 아이디였는데


미루고 미룬 나의 아이디는 친구가 진짜로 자기 마음대로 만들면서 골탕이 한가득 들어있는 아이디였다.


처음 만난 교회오빠가 쑥스러움 많은 나에게

다가와 너의 이메일 주소 좀 알려줄래?라고 플러팅을 할 때에도 나는 볼이 상기된 얼굴로 고민하며 알려주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제발 알려주라고 말했을 때에 나는 작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웅얼거리듯이 말해줘야 했다.


한글로.... '김가영똥꼬'.... 골뱅이 한메일....


듣는 사람들은 그런 아이디가 어디 있냐며 황당해했고. 사실이냐고 다시 묻곤 했다.


한동안 메일을 새로 계정 추가해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나는 온갖 쑥스러움을 가지고 입술마저 똥꼬처럼 오물거리며.. 나의 아이디를 말했다...



인스타에 자상한 한 아빠가 딸의 구글계정아이디를 만들어주라는 요구사항에 아이디는 평생 써야 하니 뭐라고 해줘야 하나 고민하는 스토리를 보고 소환된 나의 첫 아이디 일화이다.


아이디가 27년이 지난 지금까지 박제되는 것이 아님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쑥스러움이 가득담긴 그 시절 추억으로 지금은 꽤나 신중한성격이 된 나를 보며 뭐든 시행착오 끝에 배우고 알아감을 이야기하고싶다.  지금은  생일과 나만의 둥글거리는 느낌을 살려 아이디가 [ roroa3023]이 되었음을 알리며 이야기를 마무리해본다.




ps. 작가명 가리영은.....


 인어아가씨 드라마가 대히트를 치던 고3시절

페트병을 하나 들고 아리영이 빡! 친 상황에 호통을 치며 하고 싶은 말 다 하던 신을  고3의 애환을 담아 친구들 앞에서 더운 여름 선풍기 바람에 버티는 야자의 부당함을 흉내 내게 되었다.  학교 홈페이지에 고3에게  에어컨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글을 올렸다. 그 뒤 교실마다 에어컨이 설치되게 되었고... 이건 아리영을 뛰어넘는  가리영이다라는 말과 함께.. 생긴... 필명임을 고백합니다..... (오물오물... rlarkdudEhdRh)


#사진출처는 네이버이미지, mbc드라마넷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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