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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Aug 12. 2024

112/200 나의 멜랑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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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슴도치다. 감정표현이 격한 아버지의 화가 내 등에 박혔다. 그 가시는 이제 타인을 찌르는 무기가 되었지. 최근 말귀를 알아듣는 아이에게 가시 돋친 감정을 기어이 하고 말았다. 그로 인한 어마어마한 죄책감이 밀려온다.  온갖 세상 탓도 하고 진상의 풀코스를 도다. 그리고 혼자 합리화를 시킨다. 나도 억울한 부분이 많아, 하면서. 죄책감을 이겨내기 위한 이 과정들은 사람을 뻔뻔하게 만들고 스스로에 대한 도덕적 장벽을 낮춰보기도 한다. 멍청하긴, 그걸 모르고 살았구나. 그리고 서서히 멍청하고 악독하고 어리석어졌지. 그걸 자각하지 못한 채 단단해지면 완전한 고슴도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고슴도치 되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아이에게서 감정적 거리도 두고 이런 상상도 한다. 저 아이는 공주님이야. 피치 못할 사정으로 왕국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호젓한 변방에서 유모인 나의 품에 안겨 도피한 것이다. 하지만 유모는 언젠가 왕비와 왕에게 어엿하게 자란 공주님을 키워서 돌려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 한다. 외국어를 가르치고 단정한 몸가짐을 가르친다. 정갈하게 음식을 대접한다. 무용이며 음악이며 기본적 소양을 익힌다. 독서도 빠짐없이 한다. 공주님의 방에서 챙겨 온 보석함의 금화와 비단 옷가지를 조금씩 떼어다 팔아 공주님을 위한 투자를 한다. 물론 틈틈이 일하며 빵을 벌지만 말이다. 하지만 왕가의 문장이 찍힌 반지와 공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커다란 펜던트만은 꽁꽁 숨겨둔 채 왕궁에서의 화려한 데뷔탕을 치를 때까지 최선을 다하리라. 이런 상상을 하고 나면 아이에게 엄격하되 권위와 위엄을 가지고 소중하게 대하게 되더라. 내가 왕비라고 생각하는 순간 유모에게 떠넘기고 싶은 하루하루 고비 같은 육아를 그렇게 에 네보자.

방학이라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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