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친구
어린시절 온 가족은 2년간 일본에서 아버지의 유학차 살았던 적이 있었다. 이국만리라 우리 가족은 섬처럼 외로웠기에 한국 지인이나 가까워진 일본인 이웃은 가뭄의 단비였다. 그 중에도 가장 반가웠던 사람은 아빠의 친구 태양아저씨였다. 그는 이름처럼 호탕하고 가무잡잡하고 밝게 웃으셨다. 태양아저씨 곁에는 새댁 아내가 있었는데 삼남매 우리는 그분을 달님아줌마라고 불렀다. 태양과 함께 다니니까.
역시 아이들의 작명센스란.
달님아줌마 얼굴은 정말 달처럼 하얗고 예뻤다. 어린 눈에 긴 머리 곱게 묶고 다소곳하게 웃는 성인여자는 웬만하면 예뻤겠지만 여튼 달님아줌마는 이름으로 한 몫 먹고 들어간데다 차분하고 여성스러웠다. 태양아저씨와 달님아줌마가 놀러오면 부모님은 맥주로 술상을 받아놓고 우리를 위한 다과를 깔고 맞이했다. 한국에서였다면 어른들 노는데 우리까지는 딱히 안껴주셔서 우린 티비나 실컷 봤겠지만 고립된 섬에게 찾아온 갈매기 두마리를 섬 전체가 반기듯 막내인 나까지도 기꺼이 친구가 되었다.
태양아저씨는 따뜻하고 환하게 분위기를 만들어주셨고 달님아줌마는 차분하고 화사하게 자리를 빛내주셨다. 그들은 젊은 신혼 유학생이었기에 어린 눈으로 볼 때 생기롭고 기대고 싶은 선생님같았다.
그분들이 자리를 털고 귀가할때는 어김없이 아쉬워서 우리 남매는 자고가라고 매달렸다. 또 아이들만이 할 수 있는 서슴없는 질문도 뒤따랐다.
'아기는 언제 낳아요?'(거참 오지랖도 넓지)
'걔는 태어나면 별님이라고 해야겠다. 햇님달님별님. 달님아줌마 옆에 붙어있으니까.' 같은 말들을 늘어놓으며 복도 끝까지 따라가서 배웅했다.
해와 달이 머물던 자리는 환하고 따뜻했다. 어른의 자리에 초대받을 때의 그 뿌듯함과 이웃의 온기를 쬔 기쁨이 만연했다. 그 온기를 빌어 부모님이 술상을 치우느라 분주하실때 나는 몰래 맥주를 한 모금 맛봤던 것 같다.ㅋ 술자리는 참 즐거워 하하. 거참 그때부터 알았던거군. 아 ..쓰다보니 쏘맥 한잔 원샷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