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로 Jul 09. 2023

몸의 비상사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두려움

사진: Unsplash의Manuel Chinchilla

나는 어릴 적 겁이 많은 아이였다. 특히 주삿바늘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도 컸다. 일명 '바늘공포증'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공포증은, 나는 마루밑으로 데려갔다. 초등학교 저학년쯤이었을 것이다. 단편적으로 남아있는 나의 기억에 그날은 예방주사를 맞는 날이었다. 엄마는 예방주사를 맞으러 가자고 나의 손을 이끌었고, 나는 그 손을 뿌리치고 도망쳤다. 그리고는 급하게 둘러보다가 평상과 비슷하게 생겼던 현관 앞 마루밑에 숨었다. 숨을 죽이고 엄마에게 들키지 않기를 바라며 웅크리고 있었던 그 순간의 심장의 소리를 나는 아직 기억한다. 그 소리를 듣고 엄마가 나를 찾을 것 같아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그 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엄마에게 들키고 등짝을 한 대 맞고는 주사를 맞으러 갔겠지.


이런 나의 바늘공포증은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헌혈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 바늘을 꽂고 오랜 시간 동안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바늘공포증은 주사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고 친구와 귀를 뚫으러 간 날, 나는 정말 기절할 뻔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작은 귀걸이로 귀를 뚫고 나는 현기증이 나서 주저앉고 말았다. 속이 울렁거리고 세상이 노랗게 보였다. 무슨 큰 수술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귓불에 구멍하나 뚫렸는데 말이다. 사실 크게 아프거나 어떤 감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두려움이었다. 바늘이 내 살을 뚫고 들어와 있다는 두려움이 나를 꼼짝 못 하게 꽁꽁 묶어버렸었다.


조금 더 커서는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사를 멀리했다. 그렇다고 바늘 자체에 두려움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바느질도 하고, 바늘에 손가락이 찔려도 따끔했다는 느낌 외에 크게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만약 바늘 자체에 두려움이 있다면 바느질도 하지 못했으리라.


그러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였다. 이른 조산기에 선택의 여지없이 나는 입원을 하게 되었고, 40여 일 동안을 하루도 빠짐없이 팔에 바늘을 꽂고 살아야 했다. 3일에 한번 바늘을 갈아야 할 때가 가장 곤혹스러운 때였다. 내 몸의 긴장은 식은땀과 경직으로 정직하게 드러났다. 간호사에게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을 했던가. 그렇게 링거 바늘을 갈고 나면 나는 한동안 정말 어지러워 가만히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팔은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바늘이 내 몸속에 들어있는데 어떻게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런 두려움 속에서 매일을 살아가던 며칠, 나는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내 몸속에는 바늘이 없으며, 링거바늘은 혈관을 찾을 때만 쓰고 뺀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제껏 그 찔렀던 바늘이 몸속에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움직이면 바늘이 내 살을 뚫고 나올 것이라는 공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찌를 때를 제외하고는 몸속에는 실리콘 호수만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고는 조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바늘공포증을 해소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그 원리를 스스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한다. 위험하지 않으며,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난 일이 아님을 스스로 알아차리면 그때 두려움이 사라진다고 한다. 물론 나는 지금도 바늘공포증이 있다. 살을 뚫고 바늘이 들어오는 것이 무섭다. 혈관에 닿아서 그 얇은 막을 뚫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예전 막연하게 두려워하던 때와는 확실히 다르다. 이제 아니까. 내가 생각하는 그 공포가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니까 말이다. 


우리의 부정적인 감정은 대부분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두려움이 우리 뇌의 편도체를 활성화시키고 온몸에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마치 거대한 맹수가 나타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듯한 두려움이 온몸을 관통한다.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이 뛰고, 온몸이 덜덜 떨리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일상의 대부분에서 느끼는 두려움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것이 아니다. 어쩌면 두려울 일이 아닐 경우들도 있다. 그런데 부산스러운 편도체는 작은 일에 비상벨을 마구 눌러댄다. 


아, 그러니 나는 공포를 알아차려야 한다. 바늘공포증이 엄습해 올 때 가장 부산스럽게 구는 편도체를 진정시켜야 한다. 이성적인 전전두피질을 깨워서 편도체에게 별일 아님을 알리고 살살 달래주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편도체를 안정시킬까. 나를 똑닮은 첫째가 치과 가기 전 극도의 두려움에 떨 때 이 아이에게 뭘 해주면 좋을까를 잠시 고민하다 해본 방법이 있는데, 나름 효과가 있었다. 아이에게 나는... (다음편에)

작가의 이전글 내가 택한 소란스러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