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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 고객이 있는 곳으로 찾아 가는 것도 답이다

롱블랙 1월 2일, 문장채집 no. 292

롱블랙 1월 2일, 문장채집 no. 292

서신정 : 저민 대나무를 엮듯, 시간을 쌓아 채상의 맥을 잇다

본문 https://www.longblack.co/note/538 


1. 한 사람이 (채상자를 만들기 위해) 모든 일을 하면 꼬박 30일. 세 명이 붙어 나무 손질, 채상짜기, 옻칠을 분담하면 같은 시간에 다섯 상자를 만들 수 있어요.


2. 전부 수작업. 일부라도 기계화할 수 없나 머리를 굴려봤어요. 근데 안돼. 대나무가 섬세해요. 기계로 하면 대오리가 종이처럼 얇게 안 나와요.


3. 동네 마트에 있는 대바구니는 몇 천원. 우리가 만든 건 몇 백만원. 대충 보면 차이를 잘 모르지만. 자세히 보면 보입니다. 담양산 대나무를 한 땀 손으로 쪼개고, 마른 손끝으로 꾹꾹 짜서 만든 바구니는 기품이 달라요.


4. 서 장인은 이십 대 때, 3~4개에 불과했던 국내 채상 문양 개수를 50개 이상 복원했어요. 더해 그의 채상은 다양한 색으로 유명. 바로 천연 염색


5. 대한민국에서 아버지랑 저랑 딱 두 사람이 채상을 하는데, 내가 그만두면 우리 죽세공예는 여기서 끝나는 건가 싶더라고요. 앞이 깜깜해 한동안 잠을 못 잤어요. 그러다 내린 결론이 채상의 현대화예요. 가방, 접시 같은 일상용품을 만들었어요. 아버지는 우려 섞인 눈길을. 하지만 서 장인은 절실.


서신정 장인은 채상의 패턴을 복원하고, 대오리 천연 염색을 시도했다. 또한, 채상 기술을 접목해 일상생활 활용도가 높은 가방, 접시 등을 만들어 작업의 영역을 확장했다. ⓒ롱블랙


6. 세계 공예 전문가들이 한국의 채상에 주목.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4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초청으로 채상 시연, 2018년 미국과 일본에서 채상을 알렸고. 2019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초대 받기도. 하지만 수입은 제자리. 죽녹원은 담양을 찾는 분들은 꼭 들르죠. 이들은 구경은 해도, 구매는 안 해요. 여행지에서 사기엔 비싼 물건. 고민끝에 결론을 내렸어요. "살 사람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야겠다, 크든 작든 서울에다 판을 벌여야겠다"


7. 고민 많던 시기, 여행차 담양에 왔다는 한 남자가 전시관에 왔고. 그는 인사동에서 찾집 운영. "그분이 채상을 보고 반해버렸어요. 서울에서 개인전도 하고 싶다며 이런저런 얘길 했어요. 그랬더니 자기가 장소를 제공할 테니 작품만 갖고 올라오라고 하더라고요" 2018년 40년 만에 첫 개인전. 인사동 백악미술관. 그야말로 대박. 


8. 그렇게 공예에 관심을 둔 사람들 사이에서, 서 장인의 채상은 알음알음 소문. 개인전에 왔던 사람이 공예 페어에 나가도록 도와주고, 공예 페어에서 그의 작품을 본 브랜드 관계자들은 협업을 요청해 왔어요. 장인정신과 품질을 중시하는 브랜드들이 채상의 모양에 반한.


서신정 장인은 프리츠한센 150주년 전시에 한국의 장인 4인 중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 프리츠한센 PK24 데이베드에 서 장인의 채상 작업물이 더해졌다. ⓒ프리츠한센


9. 2014년 루브르 채상 시연 행사. 금발에 파란 눈의 여자아이가 오전 오후 시연 맨 앞에서 뚤어져라 손끝을 쳐다봤습니다. "신기했어요. 사람들이 전부 숨을 죽이고 제가 댓살 짜는 걸 보고 있는 거예요. '이 일을 하기를 정말 잘했다'라는 생각이. 내 일을 이렇게 귀하게 여겨주는구나. 끝나고 제일 작은 채상을 비단으로 포장해 그 어린 친구에게 선물해줬어요."


10. "살날보다, 산 날이 더 많아졌어요. 얼마만큼의 건강이 나에게 남았는가 장담을 못 하죠. 남은 날 동안 채상이 다양한 장르로 뻗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공예품은 시대에 맞게 계속 발전해야 해요. 우리 아버지때는 채상이랑 반짇고리 딱 둘만. 제 시대에 와서야 가방으로 접시로도 만들었죠. 이제 아들이 저를 뛰어넘어 가구 인테리어와 채상을 접목하면 좋겠어요. 아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조력자로 살다 가고 싶어요"


서신정님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chaesang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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