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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사는 건가

이렇게 계속 살고 싶다

4월19일(금), 어제 일이다.


1. 전날 밤, 밥솥 밥을 봤더니 아침에 새로 안 해도 될 만큼 밥이 있었다.


2. 알람이 몇 번 깨웠지만, 끄고 다시 잤다. 그러다 와입님이 지금 몇 시야? 묻더니 스스로 놀라~ 벌떡 일어났다. 8시였던 거다. 나도 놀랐다. 첫째는 830에 둘째는 843에 집을 나서야 안 늦는다. 아이들을 깨웠다. 역시 내가 알람을 무시했듯 그들도 날 무시했다. 워낙 잦은 일이라 지지 않고 깨웠다. 와입은 불과 5분 만에 출근 모드로 변신했다. 너 문 통과하면 옷 입는 슈퍼우먼이니? 그래서 그리 무서웠던 거니?


3. 와입이 나간 걸 확인하고 바로 tv를 틀었다.(그녀가 알면 ㅠ) 아이를 깨우는데 이거만큼 효과적인 걸 아직 못 찾았다. 역시 기어 나오기 시작한 아이들. 먹일 찾아다니는 맹수의 걸음 같았다. 만화를 보니 눈빛이 아침인데도 날카로웠다. 으르렁만 안 했지.


4. 아이들이 정신을 차리는 틈을 타, 미역국을 데우고 입고 갈 옷을 챙겼다. 5분 동안 말이다. 밥을 말고 좌 첫째 우 둘째를 앉히고 밥을 '떠' 먹였다. 이런 상전이 또 어딨나. 이렇게 해야 몇 숟갈이라도 먹지 지들이 밥술을 뜨면 10분에 두어 술 뜰 속도다. 이렇게 밥먹이며 잠옷을 벗기고 옷을 하나씩 입힌다.


5. 어라? 생각보다 발 빠른 대처와 진행으로 평소의 시간을 따라잡았다. 둘째 입에 밥을 넣고, 첫째를 화장실로 데려가 이를 닦인다. 아이는 어떻게든 면을 놓치지 않으려 거울에 반사되는 만화를 까치발을 들고 본다. 집념이 대단하다. 공부도 이렇니?


6. 가 오른쪽 주머니에 (라이언) 물통을 넣고, 점퍼를 입히고 가방을 아이에게 씌운다. 놀이터에서 거침없는 아이들. 아침 집안에선 수동태의 절정을 달린다. 일찍 재우고 일찍 일어나 느긋하고 평화로운 아침을 희망하지만, 그건 늘 꿈과 같다. 매일 아침 조금 일찍 일어나 밥도 먹고 여유 있게 출근하는 걸 15년 넘게 꿈꾸지만 안 되는 것과 비슷하다.


7. 첫째에게 엘베를 누르라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둘째에게 쏟을 조금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새로 이사한 아파트가 고층이라 혹여나 타이밍을 놓치면 많이 기다려야 한다. 아이가 엘베 온다~ 신호를 보내면 둘째에게 거의 마지막 밥을 물리고 신발을 싣는다. 첫째는 엘베에서 보낸다. 초1이지만 학교가 도로 없이 인도로만 갈 수 있는 데다 바로 앞이라 가능한 일이다.


8. 첫째를 보내고 13분 동안 둘째 출발을 위한 마지막 안간힘을  쏟는다. 이를 닦이고 도시락과 수저, 손수건을 가방에 챙겨 넣는다. (완벽하지만 와입이 보면 늘 빈틈 숭숭한 세팅을 '당'한) 둘째 손을 잡고 유치원 버스를 타러 간다. 이미 나온 할머니 할아버지 혹은 엄마들과 소수의 아빠들과 섞인다. 아이들은 헤어질 때 손하트를 마구 보내던데 둘짼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아빤 아웃 오브 안중이다. 쳇 ㅠ


9. 아이가 출발하면, 방금 전까지 아이와 손하트를 주고받던 어른들도 각자의 길을 간다. 아이돌 콘서트가 막 끝난 체조경기장 같은 분위기다. 난 바로 동네 헬스장에 갔다. 이번 달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주 2~3일은 다니고 있다. 40~50분 걷다 뛴다. 하루키가 달리기가 그리 좋다 했지 않나. 그리고 리빙리에서도 달리길 다뤘던 터라 마음이 익숙했다. 잔뜩 땀 빼고 근력운동은 후식 같은 느낌으로 짧게 한다.


10. 헬스장에서 땀을 씻는다. 더위서 흘린 땀을 씻는 것과는 다른 쾌감이다. 낯컨2 형식님이 선물한 블랙웨일 샴푸와 바디 클랜져를 비누 대신 쓰며 샤월한다. 뭔가 도시남자 같은 기분이 들다, 옆을 보면 거의 어르신들이라 여긴 어디, 난 누구? 목욕탕 대신 그곳에서 때 빼는 (어르신)분들이 생각보다 많다.^^


11. 집에 온다. 방앗간 찾는 참새처럼 멀리 돌아 스타벅스에 들른다. 평소 같으면 사이렌 오더로 미리 주문했겠지만, 시간도 있고 그곳은 언제 가도 한산하고 더군다나 생일 때 받은 스벅 쿠폰이 아직 있어 도착해서 여유 있게 주문한다. 한 체급 올려 그란데 아메 샷 추가. 카톡 선물하기 스벅 아메  상품권으로 결제하면 1,100이 모자란다. 이건 스벅 카드로 깔끔하게.


12. 집으로 돌아와 책(중쇄를 찍자)을 잠깐 읽, 노트북을 켰다. 5월부터 바뀌는 리빙리 예약등록을 하기 위해 남의 집, 네이버 예약에 들어갔다. 여기가 자영업 하는 이들에게 그렇게 천국이라 불리는 곳인가. 그런데 예약등록을 하려면 사업자등록을 먼저 해야 하는 게 아닌가.ㅠ 이제 때가 됐다.


13. daum에서 사업자등록증 신청 방법을 검색했다. 네이버는 다음에서 안 될 때만 쓴다지만 갈 일이 거의 없다. 다음이나 네이버 검색 결과 도찐개찐. 나라사랑보다 회사사랑?! 국세청 페이지에서 온라인 등록이 된다 하여 냅다 들어갔다.


14. 국세청 페이지에서 안내대로 사업자등록 절차를 밟았다. 어라~ 생각보단 쉽네. 주손 집주소로 했다.(주소지가 위워크나 패파 같은 공유 오피스면 얼마나 좋나~ 를 잠시 생각했다.) 집주소 등록을 하며 조금 힘들었다. 카카오 맵에 있는 집주소가 등록증 신청 우편번호 창에서 검색이 안됐다. 왜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었지? 몇 번의 도전 끝에 등록을 마치고 어떤 업태인지를 등록하는 페이지에서 다시 주춤했다. 다운로드한 엑셀에 나온 리스트를 보니, 내가 지향하는 일이 도대체 어느 업태와 맞아떨어지는지 못 찾겠더라.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하나 분리해 그것과 가장 유사한 것을 택했다. 그랬더니 7개가 넘었다. 아 뭔가 부자 된 기분이었다. 오~ 이렇게 하면 끝인가?


15. 결국 신청을 못했다. 앞서 등록한 업태와 관련해 서류를 업데이트해야 했다. 가령 자격증 등등 ㅠ 급 포기. 세상 만만한 게 없다. 최근 등록증을 받아 든 채(자영)사장님에게 sos 톡을 보냈다. 그는 직접 세무서를 방문했다며 그걸 추천해줬다. 그래 검색보단 직접 부딪혀야 해.


16. 금요일은 12시 50분에 첫째가 하교한다. 등교와 달리 하교는 마중을 간다. 아이는 손을 흔들어줬다. 캬아. 그 맛이다. 허나 찰나. 나에게 가방과 점퍼를 던지고 친구들과 놀이터로 내달렸다. 반 친구들 또래 친구들과 열심히 놀았다. 놀이터 주변엔 엄마들이 호위무사처럼 병풍을 치며 아이들의 안전과 안녕은 챙겼다. 그들 틈에 끼기 어려운 난, 왕따처럼 그 주변을 휘휘 돌았다. 그렇게라도 해야 덜 추웠다.


17. 2시 50분에 둘째가 도착한다. 그전에 밥을 먹어야 했다. 그런데 첫짼 놀기 바빴다. 자기는 학교에서 이른 점심을 먹어 배가 안 고팠겠지만 난 배가 고팠다. 첫째에게 가당치 않은 부탁을 했다.


"우리 이제 들어갈래~?"


아침처럼 개무시당했다. 천만 다행히 같이 놀던 아이들이 하나둘 엄마 손잡고 집으로 갔다. 뜻밖의 행운.


"이제 혼자네. 들어가자~ tv 보여줄게"


18. 손을 씻기고 소파에 앉게 했다. 리모컨은 종합영양제인가? 그걸 짚은 첫째에게 생기가 뿜어 나왔다. 난 밥을 먹었다. 집밥이다. 반찬은 지극히 빈 하지만 그 맛은 지극히 반할만했다. 그 와중에 첫째 입이 심심할까 한라봉 하나를 줬더니 하나 더 달라했다. 오후에 영어학원을 가니, 그것만으론 허전할까 걱정됐다. 한창때 아인, 하루 종일 에너지를 쓴다. 그래서 부단히 뭘 먹어야 건강하게 몸을 쓸 수 있다.


19. 첫째를 델꼬 둘째 마중을 갔다. 둘째는 3시부터 동네 커뮤니티센터에서 영어뮤지컬 수업에 참여한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리 향했다. (니도 참 힘들게 산다~) 첫째도 같이 갔는데, 놀고 싶다 툴툴거리다 거기서 친한 친구를 만나더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빠와 함께 있을 때 볼 수 없는 밝은 기운이었다. ㅠ


20. 마님이 퇴근해 커뮤니티 센터로 와, 첫째를 데려갔다. 곧 둘째 수업이 끝났다. 집에 안 가려 버티던 그에게 과자로 유혹했다. 슈퍼로 가서, 먹거리랑 그가 먹을 빼빼로를 샀다. 집 가는 동안 그는 맛있게 먹었다. 하나만 달라 여러 번 부탁하고, 애교도 부렸지만 허사였다. 다 먹은 봉지를 주더라. 쳇.


21. 첫째를 마중 나갔다. 뭘 좀 하려 해도 첫째 둘째 스케줄이 달라 정신이 없었다. 오후 5시. 금요일 오후에 가족이 다 모였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외식을 하자며 와입님이 분위길 잡았다. 우리의 선택은 가족을 위한 레스토랑 아웃백. 아 아직도 패밀리 레스토랑 존재한단 말인가. 놀랍게도 대기를 해야 했다. 다행히 금세 자린 났다.


22. 마님은 대기 중에 아웃백 회원가입을 하고 새우 요리쿠폰을 선물로 받았다. 첫째가 스떼이끌 원해 냉장육 고기로 요리한 걸 주문했다. 5만 원이 넘더라. 난 스윗포테또를 원했지만 와입님은 데운 야채를 원해 양보했다. 대신 코크를 쟁취했다.


23. 기껏 뜨건 기름 맞아가며 잘게 썰어 접시에 놔줬더니. 이놈들은 흥미가 없는지 망고주스만 탐했다. 결국 포테이토 하날 추가했다. 싸우듯 먹었다. 스떼끄는 나와 와입만 먹었다. 이럴거면 싸디싼 냉동육 스떼크를 주문했을건데. 우린 고길 먹는단 느낌만 받아도 배부른데 말이다.


24. 원래 외식의 목적은 동네 공원 벚꽃놀이였다. 아이들과 공원에 갔다. 조명이 밝지 않아 흐드러진 느낌을 사진에 담기 어려웠다. 허나 어쩌랴. 금요일 밤, 가족이 이렇게 모여 밥과 산책을 하는데~ 바람까지 순풍순풍 따뜻했다.


25. 집에 오니 10시. 애들 샤워를 시키고 잠옷을 입혔다. 와입은 안방 화장실에서 씻었다. 11시부터 왕좌의 게임 시즌8 첫방을 보기 위해 목욕재계 한 건가? 당분간 그를 위로해주는 드라마가 등장한 건 그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최근 스카이캐슬 종방 후 슬럼프를 겪다 얼마 전부터 도깨비를 정주행 하며 기운을 차리는 걸 봤다. 지금 그의 핸드폰엔 공유가 박혀있다.


26. 낮잠을 자지 않아 아이들은 눕자마자 잤다. 와입님이 원했던 모양새였다. 난 잠시 소파에서 쉬었는데 나도 뻗었다. 왕좌의 게임은 시작했다. 앞선 시리즈를 다 본 그에게 질문 한두 개 던졌다가 조용하라며 꾸사릴 들었다. 맥락을 모르는 난 급 흥미가 떨어졌고, 자릴 못 지키고 침대로 갔다.


27. 11시 30분. 아마 내가 자기 시작한 시간. 매일같이 하고 있는 3개의 100일 프로젝트를 하나도 못한 채 잔 거다.


이렇게 4월19일(금) 하루가 시작됐고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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