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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 밀란 쿤테라의 명복을 빕니다

롱블랙 7월 29일, 문장채집 no. 485

롱블랙 7월 29일, 문장채집 no. 485

밀란 쿤테라 : 한없이 무거운 세계에서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로

본문 https://www.longblack.co/note/761 


1. 쿤데라와 하루키는 1990년 청년 문화의 영웅. 왼손에 '상실의 시대' 오른손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들고 다녔어요. 이는 집단과 이념의 압력에서 벗어나, 개성과 취향을 마음껏 드러내려 했던 청년들의 내면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풍경화.


2. 청년들에겐 잠시 숨 놓은 축제 공간이 필요. 클럽이고 음악이고 영화이고 게임이고 여행이고 인터넷.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이를 압축하는 선명한 구호. 청년들은 약동하는 생의 감각을 쫓아 그저 가볍게 날아오르고 싶었을 뿐이죠


3. 문학계도 쿤데라 열풍. 불멸, 농담, 느림 등 쿤데라의 작품은 한국 작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 목록에 속했어요. 그의 작품에서 뻗어난 뿌리들은 한국 문화 속에서 수많은 싹을 틔웠죠. 그 덕분에 사유, 감각, 이야기, 스타일 등 모든 점이 새로워졌어요. 


민음사가 출간한 쿤데라 전집.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민음사 대표 편집인 시절, 쿤데라에게 편지를 보내 그의 책을 국내에 번역 출간할 권리를 얻어냈다. 쿤데라가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1988년, 송동준 서울대 교수의 번역을 통해서였다. ⓒ민음사


4. 진실은 오직 다성성, 즉 '다 함께 울려 퍼지는 온갖 목소리로'만 접근할 수 있음을 보여준 거예요. '나만 옳다'고 말하는 이들은 모두 틀렸어요. 악기들이 제각각 소리를 내면서 음을 이루듯, 삶의 진실은 단 하나의 목소리 또는 절대 이념으로 표현할 수 없어요.


5. "천천히 뛰어가는 사람은 자신의 체중, 자신의 나이를 느끼며, 어느 때보다도 더 자신과 자기 인생의 시간을 의식한다." - 느림 중에서


6.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속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해요. - 무의미의 축제 중에서


7. 오로지 소설의 힘만 믿고, 젊어서는 이데올로기의 황폐함과 싸웠고, 나이 들어서는 현대 자본주의가 흩뿌리는 키치적 이미지들과 투쟁했던 이 위대한 거장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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