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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2024 읽은 책 문장채집 2)

1. 시카고 극단에 관해 조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화려하거나 영화롭기보다 근면과 굳은 믿음으로 사는 삶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2. 아버지는 언제나 자신의 재능은 재능 자체가 아니라 즐거움에서 비롯한 부지런함이라고 했다... 예술가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나의 생각은 분명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3. 그 그림의 아름다움은 언어적인 것이 아니라 물감과도 같이 과묵하고 직접적이며 물체적이어서 생각으로 번역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듯했다. 


4. 형이 세상을 떠나고 나는 내가 아는 공간 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떠 올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일자리에 지원했다. 열한 살 때와 달리 이번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생각지도 않으며 그곳 미술관에 도착했다. 가슴이 벅차고 찢어지는 듯했다. 한동안은 그저 가만히 서 있고 싶었다.


5. 두 손은 비워두고, 두 눈은 크게 뜨고, 아름다운 작품들과 그것들을 둘러싼 삶의 소용돌이 속에 뒤엉켜 내면의 삶을 자라게 하는 것. 이는 정말 특별한 느낌이다. 기나길게 느껴진 몇 분이 지난 후, 나는 이것이 진정으로 나의 역할이 될 수 있겠다고 믿기 시작한다.


6.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p.69)


7. 예술은 어느 주제에 관해 몇 가지 요점을 아는 것이 대단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경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점이야말로 예술이 절대 내놓지 않는 것이다. (p. 87)


8. 하루가 끝난 후 86번가 지하철을 탄 나는 우물처럼 샘솟는 연민의 마음으로 동승자들을 둘러본다. 평범한 날이면 낯선 사람들을 힐끗 보며 그들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들이 나만큼이나 실존적이고 승리하고 또 고통받았으며 나처럼 힘들고 풍요롭고 짧은 삶에 몰두해 있다는 사실을... 낯선 사람들의 피곤하거나 어떤 생각에 빠져 있는 얼굴들을 애정을 갖고 바라볼 수 있다.(p. 153)


9. 소위 비숙련직의 큰 장점은 엄청나게 다양한 기술과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10. 동료 경비원들이나 관람객들과 나눈 짧은 소통에서 찾기 시작한 의미들은 나를 놀라게 한다. 부탁을 하고, 답을 하고, 감사 인사를 건네고, 환영의 뜻을 전하고.. 그 모든 소통에는 내가 세상의 흐름에 다시 발맞출 수 있도록 돕는 격려의 리듬이 깃들어 있다. 비탄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 리듬을 상실한느 것이다. 누군가를 잃고 나면 삶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한동안 그 구멍 안에 몸을 움츠리고 들어가 있게 된다. (p. 191)


11. 사람들과 소통에서 만들어지는 운율을 깨닫는 것은 내가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를 깨닫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삶에서 마주할 대부분의 커다란 도전은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작은 도전들과 다르지 않다. 인내하기 위해 노력하고, 친철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특이한 점을 즐기고 나의 특이한 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관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간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12. 마음을 어떤 합일점에 고정하기 위해 고안된 종교의식에 하루에 다섯 번씩 참여하는 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본다. 종교 religion 는 묶음 ligature과 마찬가지로 ligio 란 어근을 갖고 있다. 기본형일 때 ligio는 연결 혹은 어떤 공동체가 인식하는 근본적인 진실에 다시 집중하고 교감함을 뜻한다. 나는 특정한 종교적 전통을 섬기지는 않지만 종종 어딘가에 소속되어 사소한 걱정들 대신 더 근본적인 것들과 교감할 필요를 느낀다. 


13. 오랫동안 뿌리쳤지만 나는 결국 혼자가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비슷한 결의 젊은 무리를 발견했다. 우리는 모두 서른 전후로 친구들에게 하는 잘난 척은 그만두고 서로에게 기대어 격려를 받기 시작하는 나이다.


14. 밤이 깊어지고 취기가 오르면서 우리는 덜 어리석고 더 진지해지며 덜 조심스럽고 더 연약해진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우리끼리는 훌륭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15. 7만평이 넘는 매트에서보다 20평짜리 이곳에서 할 일이 훨씬 많다... 지금까지는 사소한 것에 거의 신경 쓰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그 삶에서는 내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 세상을 그냥 둘러보기만 하면 됐다. 그러니 부모 노릇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수없이 많은 사소한 일을 해결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가 받았을 충격을 상상해보라... 노동이 너무 고단해서 그 결실을 음미할 여유조차 없는 느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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