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블랙 2024년 5월22일 no. 742
롱블랙 2024년 5월22일 no. 742
엔야호나미 : 번아웃이 온 건축학도, 목욕탕을 그리며 삶도 다시 그리다
본문 https://www.longblack.co/note/1077
1. 목욕탕은 제게 '일상 속의 비일상' 같은 공간이었어요. 집에 가만히 있다가도, 몇 걸음만 걸어서 코인 하나만 내면 다른 세계로 갈 수 있었죠. 낯선 할머니가 말을 걸어오는 것도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창문을 통해 내리쬐는 햇살은 괜찮다며 저를 다독여주는 것만 같았어요.
2. 좋아하는 게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어지는 법. 더 많은 사람들이 매력을 알아주길. 건축할 때 배운 '아이소메트릭'이란 투시도법을 떠올렸어요. 이걸로 그림을 그리면 목욕탕 공간의 매력을 입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
3. 당시 목욕탕을 좋아하는 분들의 블로그나 트위터를 보면, 수도꼭지의 개수나 목욕탕 온도 등 데이터 정보가 많았어요. 목욕탕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순간은 언제인지,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했어요.
4. 처음엔 스케치북에 대충. 그리고 SNS에. 반응이 괜찮았어요. 좀 더 도구를 갖추고 본격적으로. 친구는 물론 목욕탕 팬들 사이에서도 소문. 여러 매체에서 일러스트 요청이.
5. 완성된 그림을 보고, 우리 목욕탕이 이렇게나 좋은 곳이었구나 하는 말을 들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본인의 건물에 너무 익숙해져서 자신감을 잃은 분들이 많은데, 그 가치를 다시 깨닫는 계기를 제가 제공한 거잖아요. 정말 뿌듯합니다.
3개월의 휴직이 끝나갈 무렵, 고스기유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 들어온다.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어 엔야는 제안을 수락한다. 사진은 그가 고스기유에서 그린 목욕탕 이용 시 주의 사항. ⓒ엔야 호나미
엔야는 현재 고스기유를 퇴사하고,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그러면서 목욕탕뿐 아니라 다방, 극장 등의 도감도 그린다. 사라져가는 것들의 분위기까지 보존한다는 사명을 안고서. ⓒ엔야 호나미
6. 스스로 결정하고 도전하면 실패해도 괜찮아요. 스스로 선택한 것이니 받아들이고 납득하고 다시 도전한다. 그런 반복입니다. 저는 망설임이 있는 사람이 더 멋있다고 생각해요. 망설인다는 것은 내 안에 다양한 생각이 있다는 것이잖아요. 그만큼 선택지도, 가능성도 무한히 넓어지는 것 같아요. 고민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멋진 일이에요.
엔야호나미 인스타(1.4만) https://www.instagram.com/enyahona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