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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의 인생 변곡점

100개의 질문 100번의 생각 no37

37일 차, 10월13일(화) 

오늘은 당신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것들을 생각해 보는 날입니다. 

자.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한 줄 설명도 더해주세요. 

ㅡㅡ


1) 부모님 장사하시다. 슈퍼마켓.

- 세상 (과자)부자였다. 나의 초등은 그렇게 흘러갔다.


2) 성당 학생회

- 사춘기를 압도했던 건, 성당 학생회였다.

- 주님을 빙자해, 또래 여자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 그렇다고 연애를 한 건 아니다. 참 못났다.


3) 노래패

- 원래는 야구동아리를 들려 했다

- 어쩌다 야구동아리 옆에 있었던 노래패에 들게 되었다.

- 그게 20대, 내 인생의 큰 자극이 되었다.


4) 첫직장, 축제사무국

- 졸업 후, 선배를 통해 축제일을 했다.

- 회사에 들어간다는 기대와 두려움이 없던 때였다.

- 그냥 축제에서 일을 하고 싶었고, 선배한테 전활 걸어 어떻게 하면 좋겠냐! 물었다.

-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작지만 월급이란 걸 받았다.


5) 대학원 입학

- 신의 한 수였다.

- 공대 졸업하고, 축제판에서 일하는데. 배경지식과 네트워크가 없었다.

- 예술경영 대학원 입학이 그 모든 갈증을 채웠다.


6) 서른. 런던 어학연수

- 서른을 맞이해, 어학연수를 택했다.

- 강한 스펙이 없어, 서른을 앞두고 모든 걸 내려놓고, 런던으로 갔다.

- 영어를 배우고자 했지만, 역시나 나이 들어 하는 공부는 쉽지 않았다.

- 하지만 이 경험이 한국에 돌아 와, 공연기획사에 들어가는 챤스를 마련해 줬다.


7) daum 입사

- 인생에서 찬란한 빛이 스며드는 때였다.

- 일을 한다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 문화마케팅 담당자로서, 거칠 것이 없었다.


8) 제주 파견 _ 창조경제혁신센터

- 1년의 제주 파견 후, 판교로 왔다.

- 안타깝게도 판교 라이프는 어두웠다.

- 조직장(나쁜쉐x)은 나보고 '떠나리' 명했다. 까마득했다.

- 그러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오픈 멤버로 결합했다. 전정환님의 배려였다. 

- 다시 제주에서 7개월을 보냈다. 심기일전했다.


9) 낯선대학 시작

- 다음과 카카오 합병 이후, 그 급류에 올라 타지 못한 채. 허우적 거렸다.

- 숨이 꼴딱꼴딱. 돌파구를 찾다,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에 골몰했다.

- 그렇게 기획된 것이 낯선대학.

- 2016년에 시작해, 올해 5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10) 스토리펀딩 PD

- 운 좋게, 펀딩 PD가 됐다.

- 기획이 펀딩과 바로 연결되었다.

- 다양한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그때 리빙리와 100일 프로젝트가 태동했다.


11) 카카오임팩트 입사와 퇴사

- 카카오를 퇴사하고, 카카오임팩트로 입사했다

- 사이드로 시작한, 100일 프로젝트를 서비스로 만드는 프로젝트에 함께했다.

- 주3일 근무로 계약했다.

- 카카오 연봉, 복지를 다 포기했다.

- 주 2일은 내 맘대로 뭔가를 시도했다.

- 그 경험이 퇴사마음을 굳게 만들었다.

- 파라솔을 접었다. 내리는 비 그대로 맞았다.

- 하지만 희열을 느꼈다.

- 나 혼자 견디고 버티고 있다는게 기특했다.

- 그렇게 퇴사 후, 새로운 일들이 이어졌다.


12) 한예종 겸임교수

- 로또를 사도 되지 않는 건, 운이 여기로 몰렸기 때문인가 싶다.

- 퇴사 후, 뭘할까 고민하던 찰라(정말 계획없이 퇴사했다)

- 제안을 받았다. 아니. 한예종이라니!


13) 프립 입사

- 수열님을 만났다. 소셜클럽을 협의하다. 차라리 프립의 멤버로 입사해, 판을 키우는게 어떻겠냐? 제안했다.

- 그렇게 프립에 조인했다. 주1일 근무 조건이었다.

- 카카오임팩트 주3일 근무 경험이 주1일 근무까지 이어졌다. 실험이 이어졌다.


14) 북크루 창업

- 김민섭 작가와 만나, 이런 저런 얘길 나누다 그의 창업 얘길 듣고. 손을 들었다.

- 고맙게도 창업멤버로 끼어줬다.

- 5명의 멤버와 함께 스타트업 창업을 하게 됐다.

- 하지만 녹록치 않았다. 

- 여러가지 이유(코로나 등)로 내가 가진 역량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 결국 1년이 지나, 난 그곳을 떠났다.

- 미안한 마음이 크다. 부디 이 마음 갚을 날이 오길.


15) 페이지 명동 합류

- 낯선대학 공간을 보러, 갔다가. 빠졌다.

- 그들의 협업 제안을 뿌리치고, 난 채용 제안을 했다.

- 프립의 주1일 근무를 어필했고, 그 지점에서 그들과 만났다.

- 63빌딩에서 공간을 베이스로 콘텐츠 기획을 한 이래. 10년만에 공간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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