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카카오프로젝트 100. [문장채집] 100일 간 진행합니다. 1) 새로운 책이 아닌, 읽은 책 중에서 한 권을 뽑습니다. 2) 밑줄이나 모서리를 접은 부분을 중심을 읽고, 그 대목을 채집합니다. 3) 1일 / 읽은 책 1권 / 1개의 문장이 목표입니다(만 하다보면 조금은 바뀔 수 있겠죠).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 / 김윤정
1) 세심한 진심은 결국 닿을 수밖에 없다.(p. 10)
2) 오늘의 고기리막국수는 하루하루 먹고살기 위해서 시도했던 노력에 손님의 이야기가 더해진 총합일 뿐입니다. 특히 손님의 행동과 말씀에 관심을 기울이고, 마음의 소리까지 듣고자 손님 간의 대화도 - 되도록 멀리서, 때로는 가까이이서, 심지어 엿듣기도 하면서 -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거기에 손님이 식당에 오셔서 음식을 맛보고 식당에 대한 어떤 정서와 의미를 담아가시는지도 세심하게 살피고자 했습니다. 물론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손님에게 사랑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손님의 마음을 얻으려는 태도가 어느 정도 몸에 배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국숫집을 좋아해주시는 손님들이 다른 손님을 데리고 와주셨습니다.(p. 24)
3) 경기가 좋을 때는 기본만 지키면 어느 집이나 잘됩니다. 위기가 오니까 손님이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위축됩니다. 이는 결국 단 하나의 식당, 단 하나의 제품만을 찾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들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기에 누구보다 불안을 느끼는 분들은 바로 손님입니다. 매 순간 건강과 안전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손님들은 막국수 맛을 보기 위해 여전히 줄을 서주시지요. 이렇듯 위기에도 손님의 선택을 받으면서, 국숫집 이야기를 더 많은 분과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이 커졌습니다.(p. 26)
4) 이 정도면 됐다 라는 생각에서 멈춘다면 정지가 아니라 퇴보와도 같지요. (p. 44)
5) 오래가는 생명력을 지닌 식당을 하고 싶습니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듯, 생명력이라는 것은 본질에 다가갈수록 강해지겠지요. 맛의 근본에 이를수록,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가닿을수록 어떤 큰 위기가 닥쳐도 손님들의 귀한 선택을 받으리라 믿습니다.(p. 45)
6) 국숫집 곳곳에는 음식이 맛있게 느껴지게 하는 장치들이 있습니다. 손님을 모실 때는 '편한 곳 아무데나 앉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가리키는 손끝의 언어를 곁들여 정확하게 좌석을 안내합니다. 손님들이 서비스가 잘 갖춰져 있다는 느낌을 받도록요. 파인다이닝에 가야 볼 수 있었던 생화를 막국수집에 놓아두었습니다. 흰 벽에는 간결해서 더 인상적인 메뉴판이 걸려 있습니다. 오픈 주방에서 입는 조리복, 특히 홀에서 손님을 맞을 때 입는 앞치마는 주문 제작으로 맞추었습니다. 음식을 낼 때는 직원이 맛있게 먹는 방법을 빠뜨리지 않고 안내합니다. 손님이 머무시는 방마다 맑은 음직을 갖춘 스피커를 설치했습니다. 조도와 온도도 섬세하게 조절했습니다. 한여름에는 실내공기를 시원하게 하더라도 바닥은 따스하게 하여 한기를 느끼지 않게 합니다. '맛있는 집이구나'라는 인상을 주는 이런 장치들은 음식의 가치를 높이는 고기리막국수의 미장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국수의 가치를 올리려면 음식맛은 물론이고 다른 요소의 합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융합되는 과정에서 수치화될 수 없는 '사람'이 반드시 관여합니다. 사람이야말로 식당의 온도감을 형성하기 때문이지요. (p. 67-68_
7) 식당이 오래가려면 원가보다 가격이 높아야 하고, 가격보다 가치가 높아야 합니다. 원가와 가격은 주인이 정하지만, 가치는 손님들이 매겨주셔야 하는 거잖아요. (p. 68)
8) 손님의 눈이되어 모든 동선을 살피는 일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습니다.. 손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일은 식당 내부에서도 이어집니다. 제일 신경 쓰는 부분은 화장실입니다. 한 분 한 분 정돈된 화장실을 이용하실 수 있게 늘 복도 앞에서 서성이며 정리할 기회를 엿봅니다.. 무심코 바라본 화병에서 누군가 신경 쓰고 있다는 흔적이 느껴진다면 좀 더 아늑하고 즐거운 식사가 될 거예요. (p. 77)
9) 우리 집을 찾아주신 손님이 자신을 그저 수많은 손님 중 한 명일 뿐이라는 느낌을 받게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일을 하는 데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식당에 가서도 정작 음식보다는 디퓨저에 먼지가 쌓여 있거나 바닥에 뭔가 떨어져 있지 않은지 이상하게 작은 것들부터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작은 일을 행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손님은 작은 것들에 마음이 움직입니다. 작은 것이 모여 결국 손님에게 기억됩니다.(p. 80)
10) 네이버 블로그에 가입하면 가게 홍보를 무료로 올릴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일 처음 올린 글은 비빔막국수 사진 밑에 '맛있어요, 오세요' 둘째 날은 '물막국수도 맛있어요. 수육도 곁들여 드세요'였지요. 메뉴가 많지 않다 보니 그다음 날은 식당 밖 풍경 사진을 찍어 올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더 이상 올릴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읽어주는 분도 없으니 왜 블로그를 계속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똑같은 국수를 내어가도 그 국수를 먹는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습니다. 저마다 다양한 사람의 기호를 읽어 내려가다 보니 거기서 이야기가 생기다라구요. 일방적으로 우리 음식이 맛있다고 주장을 쏟아내는 대신, 상대방이 관심을 가질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기로 했습니다. 그때부터일 거예요. 블로그에 가치를 담기 시작했던 것이. 사람들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저희 부부의 이야기도 블로그에 담았습니다. 우리 집 손님들이 가실 만한 식당에 더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렇게 전국에 있는 막국수집 100여 군데를 다녔습니다. 그 이야기 역시 블로그에 차곡차곡 쌓였지요. (p. 94-95)
11) 많은 손님의 사랑을 받고 싶었습니다. 결국 해답은 메뉴판이었습니다. 주인이 받고 싶은 가격, 주인이 만들고 싶은 메뉴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손님들이 흔쾌히 내고 싶은 가격으로 손님들이 사랑해마지 않는 메뉴를 넣을 수 있을지 손님 입장에서 생각했습니다. 국숫집의 간결한 메뉴판에는 가격만 있는 게 아니예요. 사실 제가 말하고 싶은 말들이 가득 들어있지요. 더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뺄수록 저희는 더 풍성해졌습니다. (p. 105)
12) 사리의 법칙(p. 110)
1) 원래의 양과 똑같은 한 그릇이 나간다. 양념장을 정확히 계량해 얹고 육수도 콸콸 부어 나간다.
2) 반값만 받는다.
3) 다른 막국수 사리도 가능하다. 들기름막국수를 드셔도 비빔사리를 드실 수 있다.
13) 직원을 위해야 음식 준비가 잘되고, 음식 준비가 잘되어야 손님에게 맛있는 국수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손님을 위하는 길임을 믿어요.(p. 130)
14) 아직 많은 식당에서 테이블 위에 각자 덜어 먹도록 공용 김치통을 둡니다. 손님들이 뚜껑을 열 때마다 김치 양념은 점점 말라가고, 어떨 때는 아예 열려 있기까지 합니다. 거기다가 식사 중에는 이야기를 하거나 재채기를 하는 일도 빈접합니다. 부족함 없이 편하게 드시라는 사장님의 선의가 무색하게, 위생상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와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p. 136)
15) 카운터에서는 마치 오늘 그 손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배웅합니다. 오늘도 한 분 한 분 어떻게 하면 손님들을 다르게 모실까 생각합니다. (p. 141)
16) 저는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헤아림을 받았고, 타인을 헤아리는 마음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깊게 연결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p. 162)
17) 손님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기억해주기를 바라나요? 지금 식당의 언어는 어디로 향하고 있나요?(p. 178)
18) 국숫집도 처음부터 이런 식당이 되어야지 정하고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 손님의 마음에 들고자 하루하루 수집한 목소리들을 따라가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p. 180)
19) 손님이 쿠폰을 쓰실 때 '나 이 집 단골이야' 하는 자부심을 느끼기를 바랐습니다. (p. 198)
20) 음식은 손을 거쳐 구현되지만, 실제로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지닌 마음가짐을 통해 구체적으로 발현됩니다. 음식은 주방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식당을 하면 할수록 음식이 사람의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p. 218)
21) 사소하고 지루한 것의 반복으로 진심을 담는다.(p. 236)
22) 오늘 저희는 괜찮습니다. 당신은 괜찮으신가요? 라는 메시지로 손님들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소독이나 방역이 아니라 공감의 말이었습니다.(p. 258-259)
23) 직원들이 어떤 경우에도 식당의 비전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여겨주길 기대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고, 그것을 강요해서도 역시 안 되었습니다.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해주는 것이 사장의 본분임을.. 국숫집이 안정되고 나서 남편과 가장 먼저 정한 건, 비전으로 직원을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당장 오늘 더 나누기'를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p. 267)
24) 성과를 내는 만큼 이익을 나누는 시스템을 도입하자, 잦은 회식이나 외국 연수 없이도 직원들의 사기가 올라갔습니다. 덕분에 직원들은 '어떻게 하면 우리 식당이 더 잘 되게 할 수 있을까?를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되었지요. 이는 분명 '나중에 잘되면 더 많이 드릴게요'라는 장밋빛 약속을 했을 때보다 직원의 동기를 북돋는 데 더 큰 효과가 있었습니다. (p. 268)
25) 국숫집을 시작할 때의 모습과는 완연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간장 고춧가루 메밀 등 모든 재료를 더 좋은 것으로 바꿨고 재료의 보관과 활용 역시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해나갔지요. 위행에 관해서도 더 철저해졌음은 물론이고요. 믿지 않으실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바꾼 것들이 어림잡아 100가지는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의 치열했던 고민과 노력은, 결국 '우리'의 식당을 완성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을까요. (p. 284)
26) 좋아하는 것을 하거나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 아니야. 내가 선택한 것을 좋아하도록 해야 한다. 내 앞에 주어진 것을 좋아하도록 노력해야지.(일본의 스시 장인 오노 지로가 다큐 영화 <스시 장인 : 지로의 꿈>에서 한 말)(p. 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