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회사도서관 갱생 프로젝트, 크루의서재

원티드 인살롱 기고 8 (20210308)

한 권만 파는 서점이 있다

한 달 동안 한 권만 소개하고, 그것만 판다. 그런 만큼 큐레이션에 공을 들인다. 그 선택에 한 달 매출이 달라진다. 어떤 책이냐가 제일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책을 소개하느냐도 중요하다. 그 책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공간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 그 책의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 이 책의 장점을 어떻게 소개할지. 이런 고민이 이어지다 보면, 작은 공간을 가지고도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기획할 수 있다. 고민과 기획의 결과는 손님들이 온갖 감각을 통해, 그 책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공간의 향, 공간의 소리(음악), 공간 디자인, 책의 질감(촉각), 각종 페어링(와인/커피/쿠키 등)이 힘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을 사게 만든다.


안타깝게도 우린 이런 경험을 쉽게 하지 못한다. 대개의 서점은 효율을 위해 공간 구석구석까지 책이 꽂히고 쌓여있다(최근 공간의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는 대형 서점을 중심으로, 여유 공간이 점점 커지고 있다). 키도 다르고, 몸집도 다르고 색깔도 다른 책들은 관리하기 편한 '카테고리'로 구분되어 나란히 흩어져 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책이 가진 각각의 멋진 이야기는 발견되기 어렵다. 선택받은(광고가 붙거나,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거나) 소수의 책만이 제목과 이미지가 어우러진 얼굴(책 앞면)을 보여주고, 대개의 책은 제목만 덩그라니 있는 가냘픈 등판만 준다. 그들은 너무 촘촘하게 붙어 있다보니, 시선을 두기 어렵다.


도서관에선 좋은 책을 만나기 어렵다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책은 매달 새롭게 들어온다. 그러니 서점처럼 그곳도 공간이 여유롭지 않다. 책들은 밝은 얼굴로 사람들과 만나고 싶지만 그럴 수 있는 책은 소수다. 서점의 책들처럼 대개가 책꽂이에 얼굴을 묻고, 앙상한 단면만 드러낸다.


판교에 있는 카카오 오피스의 도서관(지금은 리모델링 과정을 거쳐, 4층으로 이동했다. 이사를 가면서, 버릴 건 버리고 채울 건 채웠다. 그 역할을 사운즈한남에 맡겼다. 고급진 느낌같은 느낌의 책 큐레이팅 덕분에 도서관이 삐까뻔쩍 해졌다)도 그러했다. 카페 공간 옆에 아담하게 자리해, 위치는 너무 좋았지만 책들은 오래 묵어 쌩쌩하지 못했고, 책꽂이에 빼곡하게 자리 잡아 숨쉬기 어려웠던지 모양새가 하나같이 혈기가 없어 보였다(눈길을 주기 미안했다). 그러니 그 곁에 머문 이들의 손길이 쉽게 닿지 않았다. 직원들은 커피를 뽑아 들고, 담소를 나누는 공간으로 그곳을 애용했다. 책들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장식에 가까웠다.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졸부의 책꽂이와 뭐가 다른가 싶었다. 


카페 옆에 자리잡은 도서관이라 쓰고, 휴식공간이라 읽는 곳


아이디어가 꽃을 피기 위해선 때론 구세주가 필요하다

도서관은 휴식 공간만으로도 훌륭한 역할을 한다지만, 그래도 책들이 아까웠고 공간이 아까웠다. 어떻게 하면 책이 배경이 아닌, 읽고 싶은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 한 권의 책만 파는 책방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휘리릭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1) 책을 싹 빼고, 책꽂이 한 칸씩 크루들에게 분양하자.

2) 그 칸을 분양받은 이들은 한 달에 한 권, 자신이 읽은 책 중에 추천하고 싶은 책을 전시한다.

3) 그냥 책만 둘 게 아니라, 왜 그 책을 추천하는지에 대해 소개를 하자.

4) 4달 정도, 테스팅을 하면 부담 없이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정도 생각을 정리 한 후, 시설과 공간 관리를 하는 부서에 있는 동료(dan.seeing)에게 제안을 했다. 고장난명이다. 혼자 쳐서 결코 소리가 안 난다. 정말 운 좋게, 그는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았다. 팀에 제안을 공유했고, 진행에 필요한 협조를 해 주겠다고 피드백을 줬다(구세주, 댄!)


그를 다시 만나, 어떻게 이 프로젝트를 할지 얘길 나눴다.

1) 우선 전체의 절반 정도의 책꽂이를 비운다.

* 해당 책은 회사 창고에 보관한다.

2) 회사 게시판에 '도서관 책꽂이 한 칸'분양 안내를 한다.

3) 4개월 동안 함께 할 크루를 찾는다.

4) 간단한 오리엔테이션과 책꽂이 분양(추첨)을 한다.

5) 각자가 자기 공간에 전시/소개할 책을 세팅한다.

6) 그 얘길 회사 게시판에 소개한다.


책꽂이 전체를 빼기 보다, 중간 부분의 책을 뺐다. 그래도 판교 땅위에 70칸 이상을 확보했다.


이렇게 정리를 한 후, 본격적으로 진행을 했다. '크루의 서재'란 프로젝트 이름도 정했다. 다음 회차엔 그 진행 과정과 실재 어떻게 책꽂이가 구성되었는지 소개를 해 보려 한다.


ㅡㅡ

원티드 인살롱에 기고한 글(20210308)입니다. 


록담(백영선) Flying Whale 대표 rockdamf@gmail.com

축제와 공연기획사에서 열일하다, 한화호텔앤리조트(63빌딩 문화사업부)를 거쳐 Daum(문화마케팅)에 입사했다. 곧이어 카카오 행성을 돌다(조직문화, 교육, 스토리펀딩, 브런치, 소셜임팩트 등) 궤도를 이탈합니다(퇴사했단 얘기죠^^). 지금은 매일 ‘다른’ 곳에 출근하는 ‘독립노동자’이자 '프리워커'입니다(딴짓 덕분이죠!). 여러 일을 하지만 ‘기울기’가 있습니다. 느슨한 연결을 통해, 모두 안전하고 즐겁게 잘 사는 걸 의도합니다. 백영선이라 쓰고, 록담이라 부릅니다. 어색어색하지만 플라잉웨일 대표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카카오 동료들과 경험공유살롱 리뷰빙자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