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106)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2022년 읽은책에서 문장채집 no.6

2022년 읽은책에서 문장채집 no.6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 김진영 다큐에세이


*책을 읽으며, 너무 공감하는 대목이 많아 밑줄을 과하게 쳤다. 그걸 다 옮기는 건 책을 통으로 가져오는 것이니, 줄이고 줄여 29개를 당겨왔다. 부제가 [갭이어, 나를 재정비하는 시간]이다. 이 책은 필자가 뜻하지 않게 맞이한 일의 혹한기를 건너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책이자, 그 여정에서 만난 비슷한 결(일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갭이어를 가진 이들)을 가진 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일이란 게 무엇인지, 앞으로(나이가 더 들어도)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아래 문장 가운데 한 두개라도 끌리는게 있다면, 책을 사보길 권한다. 그 문장을 가진 책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이득이다. 


1. 늘 여름날 같았던 일하는 마음에 겨울이 찾아왔다..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방학이 필요하지 않을까?(p. 5-8)


2. 실제로 오랫동안 나는 번아웃을 겪는 사람들, 일과 삶의 속도를 조절하려고 하는 사람들, 일의 방향과 의미에 대해 자주 번민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일을 덜 사랑하기 때문에 자꾸 생각이 많아지고 고민이 생긴다고 치부해저리곤 했다. 그랬던 나에게 무거운 번민과 어두운 의심이 몰려왔다. 일하는 마음의 불꽃이 '꺼진' 게 맞는지, 왜 꺼진 건지, 어떻게 하면 다시 불꽃이 붙는지, 꺼진 상태를 뭐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이 시간이 지가가기는 하는 건지, 내가 나아질 수는 있는 건지, '나아진다는 것'은 무엇에서 무엇으로 나아지는 건지.. 10년 동안 일하면서 쌓아온 일의 의미와 목적, 나의 쓸모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했다.(p. 13-14)


3. 번아웃의 절정에서 허우적거릴 때, 요즘 뭐해?란 질문에 답변하기 어려웠다.. 이 애매함을 견디기가 힘들어서 서둘러 어디에든 소속되어야 하나 싶었다. 앞으로의 방향성을 모르겠는, 이 아무런 생산성이 없는 시간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다.(p. 21)


4. 일주일에 두 번 심리상담을 받았다. 지금 당장의 절망과 불안부터 일과 삶에 있어서 내 욕망의 본질까지. 상담 선생님과 함께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당장의 번아웃과 우울증에서 회복하는 과정임과 동시에, 앞으로 더 건강하게 오래도록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근육을 키우는 과정이었다(번아웃과 우울/불아증 역시 신체적 질병과 같아 치료를 받으면 나아진다. 다만 처음에 내 마음과 정신의 응급상황을 어디에 호소해야 하는지 어디를 찾아가면 나아지는지 알지 못해 괴로웠다. 인터넷에 번아웃, 심리 상담 후기 등의 후기는 이미 마음이 무너진 사람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검색과 판단력도 건강할 때나 발휘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괴로움과 막막함이 무너진 마음에 공포심을 더했다. 돌아보면 심리 상담을 예약하기 바로 직전이 가장 암흑기. 그러니 마음이 최소한의 견강을 유지하고 있을 때 '몇 개의 119'를 가지고 있자. 마음에도 언제든 응급상황이 올 수 있다.) (p. 23)


5. 직장인들이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커리어와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일과 삶에 대한 내 생각과 가치관에 집중하는 어떤 시간. '앞으로의 방향성을 모르겠는, 이 아무런 생산성이 없는 시간'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겠단 생각. 이런 시간에 이름이 있다면, 이 시간을 누구든 좀 더 자유롭게 쓸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모습의 갭이어를 보내는 사람을 만났다. 다음 회사로 옮겨가기 전 잠시 쉬는 게 아닌,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내가 계획했던 방향으로 커리어와 삶을 잘 꾸려나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잠깐 트랙에서 내려오는 시간.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로부터 거리감을 가지고 스스로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 타인의 속도와 방향에 치여 잃어버린 나의 중심을 회복하는 시간.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띠지만 갭이어는 모두 일과 삶에서 '영점조절'을 위한 시간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p. 25)


6. 사실 우리는 일터에서 여러 영점조절의 순간을 가진다. 프로젝트 회고, 주간 회고, 월별 / 분기 회고 등. 모두 개인과 팀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 확인하고, 목표와 현 위치 간의 조절을 위한 장치. 일의 과정과 결과를 모두 잘해내기 위해 들이는 노력. 이런 순간은 회사뿐 아니라 개인의 커리어와 삶에도 필요(p. 26)


7. 내 번아웃의 많은 부분이 일을 단순히 일로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 일을 과하게 사랑했고, 심지어 이 일이 아니고서는 내 삶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 여러 상황으로 인해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마치 일생일대의 사랑이 잘 안 풀리는 것처럼 끙끙 앓았다(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에서 제현주는 "그 일이 아니더라도 어디서건 의미 있는 일을 또 찾을 수 있다고 믿을 것. 일의 성패가 당신의 가치를 말한다고 착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p. 39)


8. 사전 인터뷰에서 퇴사 후 가장 잘 한 일 중 하나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은 시간'을 보낸 것이라는 답변이 있었어요. 저(작가)는 그 시간이 무척 불안했어요.

생산하지 않은 삶을 살아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요. 뭐든 계획과 이유가 꼭 필요한 사람이어서 퇴사를 고민하는 동안에도 '퇴사하겠습니다'라는 책을 몇 번이나 밑줄치며 읽었어요. 내 퇴사를 결정내려 줄 이유가 책 속에 있을까 싶어서요. 아무리 책을 읽고 여행을 가도 어떻게 해야 나에게 쉼을 줄 수 있는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퇴사하자마자 '쉬는 방법'을 배우러 갔어요. 나에게 주는 퇴사 선물로요. 제주도에서 진행한 3박4일 단기 캠프. 약 100만원. 쉬는 걸 배우기 위해 아낌없이 돈을 썼어요. 그만큼 간절. 쉬는 방법을 찾지 못하면 퇴사한 의미가 없을 거 같았거든요.


3박4일동안 아무것도 안했어요. 프로그램 자체가 아무것도 안하는 일정. 하루 종일 각자 시간을 갖고 저녁에만 모여 나누주는 질문에 답변. 건강한 음식 먹고. 그렇게 보냈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때의 감각으로 이후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캠프 후 오래동안 해왔던 콘텐츠 보는 습관(무엇이든 작품의 레퍼런스로 보게 된)을 멈춰볼 수 있었어요. 드라마 대신 책을 읽고, 커피를 내려 마시고, 내 손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요. 일어나 뭔가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고. 그런 쉼의 감각을 몸에 익혀갔어요.(p. 43-45)


9. 오랜 친구들은 만나 사소한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거나, 자연을 향해 충분히 걷거나, 동네 빵집에서 맛있는 빵을 사 먹거나, 막 태어난 길고양이를 하염없이 지켜보거나. 이 모든 것을 인증하지 않을 때. 인사이트를 뽑아내지 않을 때. sns와 일과 트렌드에서 벗어나 내 두 발로 걷고, 먹고, 숨 쉬고, 만지는 일차원적인 감각이 나를 자유롭게 해줬다(p. 45)


10. 심리상담으로 번아웃과 우울증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 법, 나를 배려하는 법, 내가 건강할 수 있는 적정속도를 찾는 법 등을 배웠다. "내가 조금 아파서, 혹은 당연했던 일상의 모습에 물픔표가 생겨 조금 속도를 늦추면 확 느껴져요. 그동안 내가 얼마나 빨리 달려왔는가요.(김지언/노영은 '마음도 운동이 필요해' 중에서)(p.46)


11. 멘토링을 하는 초반에 1년 넘게 갭이어를 가지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어요. 프로듀서 일을 못 해도, 안 해도 괜찮다고. 그 일이 삶의 전부는 아니라고. 각자의 잠재력을 열어두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한 말이었어요.(p.48)


12. 스위치. 마음이 건강할 때 나만 아는 나의 스위치를 많이 만들어두는 것이 좋다(첫 출근하던 날의 공기, 맨 처음 내가 이 일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던 순간의 기억, 맨 처음 이일의 평생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느꼈던 날의 기분.. 그런 것을 상기시켜주는 스위치)(p. 51)


13. 무엇이 우리를 계속 자유롭게 해줄 수 있을까요?

쉬는 동안 체득한 루틴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일에 나를 전부 투신하지 않으려 해요. 일과 삶을 분리하려고 노력. 그래도 일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어요... 작은 일에도 스스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일의 단위를 잘게 쪼개서 처리하고, 내가 권한을 가진 일의 범위 안에서만 스스로를 평가해요.(p. 55)


14. <포드 vs 페라리>는 극한의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팀과 동료 이야기. 영화 속에서 팀은 서로의 한계를 알기 위해 서로를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그리고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동시에 동료가 자신의 한계치를 넘어 연소(번아웃)되지 않도록 백업해주며 팀워크를 쌓아간다. 일의 청춘기 때에는 한계치를 넘어가며 '끝까지' 달리는 순간을 자주 경험. 한계치가 갱신되는 순간 자체가 큰 쾌감이고,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 쾌감과 성장의 감각은 일을 계속하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일하는 시간이 삶의 그 무엇보다 짜릿했고, 몸과 마음이 체력을 마구 쓰는 데에 두려움이 없었다. 하지만(청춘기가 지나며) 몸과 마음에서 경고 메시지가 떴다. 결국 달리는 것 자체가 겁나기 시작.. 더 건강하고 즐겁게 일하기 위해 일의 청춘기에 알게 된 내 한계 바로 앞에 '세이프존'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무리해서 '해볼게요'하기 전에, '이런 일정, 혹은 이런 금액으로 조정할 수 있을까요?' '이런 부분을 함께 진행해주시면 여기까지는 해볼 수 있습니다' 같은 말을 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기로. 나를 보호하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그건 일을 피하는 것이 아닌 내가 연소되는 걸 피하는 것이니까(p. 63-67)


15. 따릉이를 타는 일은 의외로 재미있었다. 매일 무심히 하는 일이 나를 조금씩 멀리까지 데려가주었다. 멍했던 일상에 조금씩 생각과 기분이 들어갈 자리가 생겼다. 발을 구르는 것은 나였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어딘가까지 갈 수 있다는, 매일 조금씩 더 먼 곳까지 갈 수 있다는 기분은 나에게 최소한의 자유를 주었다... 내리막길에서도 발을 힘차게 굴러 더 빠르게 달리고 싶었다. 그런데 경사와 속도에 기어를 맞추지 않으면 더 빨리 달리고 싶어도 자전거 바퀴가 헛돌았다.. 내리막길을 타고 나서 다시 달릴 수 있기까지 발 구르기를 멈추고 페달을 적당히 풀어놓는 시간이 필요했다.. 평소의 내 힘으로는 닿지 않을 이 비정상적인 속도가 주는 위태로운 짜릿함을 즐기는 마음 반, 어쩔 줄 모르겠는 마음 반. 그런 순간들을 지나며 깨달았다. 따릉이가 감당할 수 있는, 지금 내 다리의 근력이 감당할 수 있는 '적정속도'와 이를 다루는 방법을 이제는 안다. 아찔함이 주는 묘한 즐거움은 없어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그곳에 도달했을 때의 후련함과 자유는 변함이 없다. 번아웃을 겪은 뒤로 일과 삶에서 온몸의 감각이 곤두설 만큼의 즐거운 일이 줄었다. 어쩌면 그런한 일들을 무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짜릿함과 맞바꾼 안전감이 감사하게도 일상을 지속시켜준다. (p.82-83)


16. 사람마다 삶의 속도가 다르듯이 필요한 쉼의 정도나 원하는 쉼의 형태가 다르다고 생각해요.(p. 91)


17. 요가라는 새로운 분야에 깊이 매료되면서 뭔가를 좋아하는 감각을 되새길 수 있었어요.(p.114)


18. 제게 갭이어는 도로 위 휴게소 같아요. 휴게소를 들르지 않으면 목적지에 조금 더 빨리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장거리 운전으로 사고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될 수 있죠. 그 시간이 남은 길을 완주할 힘을 키워줄 거라고 생각해요..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이유'에서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고 말했다. 처음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과정 중에 예상하지 못하는 실패와 시련과 좌절을 겪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결국은 각자의 깊은 깨달음을 얻는 것도 참으로 신비롭다고 했다. 맞다. 우리는 이토록 신비로운 인생의, 일의 여정을 보내고 있다. 어딘가에 다다른 것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길고 복잡하고 우여곡절 많은 이야기를 켜켜이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p.121)


19. 나와 관련된 일들의 답은 사실 대부분 내 안에 있다. 그런데 이 답들은 어떤 내가 보기에는 실망스럽고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동안 '답이 없다'라거나 '답을 모르겠다'라고 외면해오던 것도 있다. 하지만 내 안의 이야기들을 얼마나 솔직하고 처절하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흔들린 이야기의 중심을 다시 세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야기를 만들고 쓰는 것이 직업인 하루키조차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도저히 글을 쓸 수 없겠다고 느낄 때, 무슨 문장을 써도 만족스럽지 않을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럴 때면 그는 일단 그가 느끼고 있는 것, 생각하고 있는 것, 그를 이루고 있는 것들을 그대로 꺼내 놓는다고 한다. "아무튼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밖에"없기 때문에.(p. 145)


20. 우리는 같이 살기 위해 더 시끄럽게 서로의 차이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하기 위해서 더 요란하게 서로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박보나 '태도가 작품이 될 때')(p.148)


21. 달리고 있을 때는, 트랙 위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는 거 같아요. 일에서 조금 떨어져야만 나 자신, 나의 일하는 모습, 그리고 내가 일에서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요.. 내 본질적 욕망을 잘 알게 되면, 외부 환경과 조율을 해나가기도 좀 더 쉬워지죠. 결국 다양한 모습의 일하는 나를 받아들이는 데에 필요한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어떤 방식으로든 앞으로도 계속 일을 할 거예요. (p. 150, 153)


22. 안정적인 회사에 다닐수록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이 더 많고, 성장하기보다 정체되어 있다고 느끼기 마련. 매일 누군가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어떤 순간에는 누군가가 내 뒤치다꺼리를 해주고 있어서 내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느리다고 했던 그 속도가, 내가 지루하다고 여겼던 그 속도가 사실은 나를 안전하게 해줬을 수도 있다. 나보다 훨씬 앞서 뛰면서 내게 자극을 주는 스타 플레이어 같은 동료 외에도, 늘 내 앞과 뒤 그리고 옆을 지키고 있던 동료들 덕분에 내가 최선을 다해 마음껏 뛰어도 안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p. 169)


23. 새로운 곳에서 제로의 존재가 된 것 같다고 느낄때마다 그 동료들과 보낸 시간들이 저를 일으켜주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줘요. 일과 삶에서 나름 큰 도전을 하고 싶으면서도 가장 고민이 많이 됐던 게 내가 '제로'가 되는 것이 아닐까였는데 아무것도 없어진 게 없어요. 그 불안함이 사라지니 정말 삶이 달라졌어요. (p. 216)


24. 그때 배웠어요. 한 사람이 두드러지게 나서서 끌고 나가는 것보다 모두가 심사숙고해서 하나의 플랜을 만들고, 각자가 역할을 해낸 뒤 다 함께 성취해내는 기쁨을요. 한국에서는 늘 경쟁해야했고, 나의 성장을 내가 책임져야 했어요. 그래서 조급했고 도태될까 봐 두려웠어요. 지쳐도 계속 달려야 하는 것이 당연했어요. 그러니까 숨이 막혔죠. 그런데 꼭 그러지 않아도 성장할 수 있고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더라고요. 원칙이 있으면 여유를 가져도 되더라구요.(p. 220)


25. 조용히 집중하고 싶을 때, 내 진짜 삶의 중심을 돌아보고 싶을 때 온갖 sns를 끊고 디지털 디톡스를 결심할 때가 있잖아요.. 은혜 씨는 그런 일시적인 디지털 디톡스보다 강력한 준거집단으로부터 디톡스를 경험하고 성장과 커리어의 중심을 단단하게 잡은 것 같아요.

호주에 와서 중간중간 다양한 아르바이트도 많이 해봤어요. 한국에서라면 6년 차 마케터라면 선뜻 하지 않을 일들요. 길게 한 건 아니지만, 해보면서 제가 자유로울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내가 내 몸을 써서, 어떤 일을 해서든 나는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감각을 갖게 되었어요. 지금 나를 설명하는 일이 없더라도, 꼭 화이트칼라 일이 아니어도 나는 블루베리를 따서 돈을 벌 수 있고, 청소를 해서도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자유로운 자신감 같은 것이 생긴 거예요.(p. 224)


26. 리베카 솔닛은 '어둠 속의 희망'에서 "희망은 문이 아니라 어느 지점엔가 문이 있으리라는 감각"이며, "길을 발견하거나 그 길을 따라가보기 전이지만 지금 이 순간의 문제에서 벗어나는 길이 어딘가 있으리라는 감각"이라고 말했다. 다음 커리어를 고민하는 내게 실리콘 밸리에서 ux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친구가 사실 본인은 한국에서 비디자인 직군으로 커리어를 쌓다가 ux공부를 하고 전업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을 때 그랬다. 정말로 우리는 아직도 무엇이든 될 수 있구나. 그 상상의 감각만으로도 무너졌던 마음을 다시 일으킬 수 있었다.(p. 225)


27. 너덜너덜한 내 상태가 부끄럽지 않은 친구들 사이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다. 시애틀에서 만난 그 누구도 내가 다니던 회사, 인맥, 내가 이뤄온 한 줌의 사회적 성취나 이름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오직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인지, 오늘의 내가 되기까지 나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경험을 통해 무얼 배웠고,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그래서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하고 싶고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 나누었다.(p.233)


28. '결국 내가 가진 자산은 현재의 준거집단이 주는 인정이 아닌 숱한 경험을 통과한 후 나도 모르게 내 몸에 새겨진 여러 역량과 노하우'라는 조은혜씨의 이야길 더 깊이 이해. 관계든 일이든 도시든 나를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안전감을 가질 수 있는 곳이 좋다. 그때그때 나만의 최선을 다했을 때, 나의 시간을 꾹꾹 눌러담아 살아내었을 때, 그 시간이 자연스레 증명해주는 삶이야말로 자유이고 평화이지 않을까.(p. 235)


29. 여전히 열렬한 마음으로 일했던 과거의 나에 비해 에너지도 역량도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에 종종 우울감이 든다. 나는 결국 회복될 수 있는 것일까? 자존감이 낮아진 게 아니라 나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몸과 생각이 바뀐 거예요. 에너지 집중력 영민함이 예전만 못하다면 그만큼 다른 것으로 채워졌을 게 분명해요. '이렇게 살아도 됩니다'라고 상담 선생님의 말씀을 자주 찾아 읽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105) 리더 디퍼런트 / 사이먼 시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