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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2022년 읽은책에서 문장채집 no.8

2022년 읽은책에서 문장채집 no.8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키미 하루키


*이 책 표지 상단에 이 책에 대한 짧막한 소개가 있다. '세계적 작가 하루키의 달리기를 축으로 한 문학과 인생의 회고록'. 그렇다 이 책은 달리기를 빙자해 삶을 얘기하는 에세이다. 그렇다보니 어찌나 밑줄 그은 곳들이 많은지. 처음엔 바지런히 옮기다, 너무 많아 패스를 많이 했다. 두고두고 읽어 볼 책이다.


1. 서머셋몸은 "어떤 면도의 방법에도 철학이 있다"라고 썼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매일매일 계속하고 있으면, 거기에 뭔가 관조와 같은 것이 우러난다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무슨 일에나 품을 들이는 성격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글자로 써보지 않으면 어떤 사물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하기 어려운 사람이기 때문에, 나 자신이 달리는 의미를 찾기 위해 손을 움직여서 문장을 직접 써보지 않을 수 없었다. p. 7-8


2. 풀 마라톤이라는 것은 가혹한 경기인 것이다. 만트라(불교/흰두교의 진언. 신들에게 대해 부르는 신성하고 마력적인 어구)라도 부르짖지 않으면 하지 못할 힘든 일이다.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을 마라톤 시작부터 머리속에 되뇌는 분도 있다. 이 말은 마라톤이라는 경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결하게 요약한 것 p. 8-9


3. 강한 인내심으로 거리를 쌓아가고 있는 시기인 까닭에, 시간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거리를 뛰어간다.. 계속하는 것 -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p.19


4. 이곳 기후는 난해한 점이나 아리송한 점은 보이지 않고, 비유도 없고 상징도 없을 만큼 단순 명료하다.. 눈을 반쯤 뜨고 헉헉 하고 크게 숨을 쉬며,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마치 까무러칠 듯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달리는 살찐 러너도 있다. 일주일 전에 당뇨 검사를 받고, 주치의로부터 매일매일 운동 하라고 강력한 권고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p 20


5. 나는 - 그런 여러 가지 흔해빠진 일들이 쌓여서 - 지금 여기에 있다. p. 21


6. 찰스강가를 1시간쯤 달리면, 양동이로 물벼락을 맞은 것처럼 입고 있는 모든 것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버린다. 머리가 멍해진다. 정리된 생각은 어느 한 가지도 할 수가 없다. 그래도 참고 끝까지 달리고 나면, 몸의 중심에서 모든 걸 깡그리 쥐어짜내 버린 것 같은, 어쩌면 모든 걸 다 털어내 버린 듯한 상쾌함이 거기에 우러난다. p. 22


7. 달리는 것은 내가 이제까지의 인생을 사는 가운데 후천적으로 익혔던 몇 가지 습관 중에서 아마도 가장 유익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라고 생각된다. 끊임없이 달리는 것으로 내 신체와 정신은 대체로 좋은 방향으로 강화되고 형성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 됐든 다른 사람을 상대로 이기든 지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보다는 나 자신이 설정한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 없는가에 더 큰 관심이 쏠린다. p. 24 - 25


8. 끝까지 달리고 나서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가 없는가, 그것이 장거리 러너에게 있어서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일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 자신이 쓴 작품이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도달했는가 못했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며 그것은 변명으로 간단하게 통하는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쓰는 것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것과 비슷하다. 기본 원칙을 말한다면, 창작가에게 그 동기는 자신 안에 조용히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으로서 외부에서 어떤 형태나 기준을 찾아야 할 일이 아니다.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유익한 운동인 동시에 유효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매일 달리면서.. 나 자신의 향상을 도모해 나갔다..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 p 26-27


9. 나와 달리는 일 사이에 서서히 권태기가 찾아오고 있었다. 지불한 만큼의 노력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는 실망감이 있었고, 열려 있어야 할 문이 어느 사이에 닫혀버린 듯한 폐쇄감이 있었다. 그것을 나는 '러너스 블루'라고 이름 붙였다.  p. 29


10.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 보스턴 만을 향해 소리도 없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물줄기는 강변을 적시고, 푸른 여름 초목을 무성하게 하고, 물새들을 키우며, 오래된 돌다리 밑으로 빠져나가, 여름 하늘의 구름 모습을 물 위에 띄우고(겨울에는 얼음을 띄우고), 딱히 서둘러 급한 걸음을 재촉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쉬어가는 여유도 보이지 않고, 여러 검증 과정을 거쳐오며 굳어진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관념이라도 지닌 듯 그저 묵묵히 바다로 향해 간다. p. 30


11. 하루에 1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만의 침묵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p.35


12. 달리고 있을 때 어떤 일을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대체로 오랜 시간을 달려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다.. 나는 달려가면서 그저 달리려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원칙적으로 공백 속을 달리고 있다. 거꾸로 말해 공백을 획득하기 위해서 달리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공백 속에서도 그 순간순간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온다. p. 36


13.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태어나 처음으로 맛보는 감정인 것이다. 그 이전에 단 한번이라도 경험해본 일이라면, 좀 더 분명하게 여러 가지 일을 따져볼 수 있을 테지만, 아무래도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히 치부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지금 나는 자질구레한 판단 같은 것은 뒤로 미루고, 거기에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마치 하늘이나 구름이나 강을 대하는 것처럼. 그리고 거기에는 어떤 종류의 우스갯거리가 예외 없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아주 쓸모없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p. 38-39


14.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와 같은 괴로움이나 상처는 인생에 있어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이다, 라는 점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타인과 얼마간이나마 차이가 있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자아란 것을 형성하게 되고, 자립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유지해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내 경우를 말한다면 소설을 계속 써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풍경 속에 타인과 다른 모습을 파악하고, 타인과 다른 것을 느끼며, 타인과 다른 말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님으로, 나만의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 하나의 소중한 자산인 것이다. 마음이 받게 되는 아픈 상처는 그와 같은 인간의 자립성이 세계에 대해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될 당연한 대가인 것이다. p. 40


15. 나는 신체를 끊임없이 물리적으로 움직여 나감으로, 어떤 경우에는 극한으로 몰아감으로, 내면에 안고 있는 고립과 단절의 느낌을 치유하고 객관화해 나가야 했던 것이다.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직감적으로. 누군가로부터 까닭 없이 비난을 받았을 때, 또는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고 기대하고 있던 누군가로부터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때, 나는 언제나 여느 때보다 조금 더 긴 거리를 달리기로 작정하고 있다. 여느 때보다 더 긴거리를 달림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만큼 자신을 육체적으로 소모시킨다. 그리고 나 자신이 능력에 한계가 있는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인식한다. 가장 밑바닥 부분에서 몸을 통해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여느 때보다 긴 거리를 달린 만큼, 결과적으로 나 자신의 육체를 아주 근소하게나마 강화한 결과를 낳는다. 화가 나면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분풀이를 하면 된다. 분한 일을 당하면 그만큼 자신을 단련하면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말없이 수긍할 수 있는 일은 몽땅 그대로 자신의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소설이라고 하는 그릇 속에 이야기의 일부로 쏟아 붓기 위해 노력해왔다. p. 42


16.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p. 45


17. '그렇지, 내가 소설을 써보자' 라는 생각을 떠올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의 일이다. 맑게 갠 하늘과 이제 막 푸른빛을 띠기 시작한 새 잔디의 감촉과 배트의 경쾌한 소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 하늘에서 뭔가가 조용히 춤추듯 내려왔는데, 나는 그것을 확실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이미지도 없이 '지금이라면 뭔가 나 나름대로 의미 있는 그럴듯한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느꼈던 것이다. p.53


18. 가게를 경영하고, 나 자신도 매일 카운터에 자리를 잡고 칵테일이나 요리를 만들고, 한밤중에야 가게 문을 닫고, 집에 돌아와 부엌 테이블에 앉아서 졸음이 밀려올 때까지 원고를 쓰는 생활을 3년 가까이 했다. 보통 사람의 두 배쯤 되는 인생을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체로 나는 새로운 인생의 막이 열려진 데 따라, 그것이 주는 새로운 자극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즐기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p. 56


19. 내 안에 아직 손 닿지 않은 광맥 같은 것이 잠자고 있다는 느낌도 얻었고. p. 59


20. 달리는 것에는 몇 가지 큰 이점이 있었다. 우선 첫째로 동료나 상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특별한 도구나 장비도 필요 없다. 특별한 장소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달리기에 적합한 운동화가 있고 그럭저럭 도로가 있으면 마음 내킬 때 달리고 싶은 만큼 달릴 수 있다. p. 60


21. 정말로 젊은 시기를 별도로 치면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는 특정한 누군가와의 사이라기보다 불특정 다수인 독자와의 사이에 구축되어야 할 것이었다. 내가 생활의 기반을 안정시키고 집필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조금이라도 질 높은 작품을 완성해가는 것을, 많은 독자들은 분명 환영해줄 것이다. p. 65-66


22. 열 명 중에 한 명이 단골이 되어준다면 경영은 이루어진다. 거꾸로 말하면 열에 아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나 그 '한 사람'에게는 철저하게 마음에 들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래서 경영자는 명확한 자세와 철학 같은 것을 기치로 내걸고, 그것을 강한 인내심을 가지고 유지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선두 주자가 될 필요는 없다.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은 대로 쓰고 그것으로 보통 수준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나로서는 부족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p. 66-67


23. 스피드나 거리는 개의치 않고 되도록 쉬지 않고 매일 달리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게 달린다는 행위가 하루 세끼 식사나 수면이나 집안일이나 쓰는 일과 같이 생활 싸이클 속에 흡수되어 갔다. 달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습관이 되고, 쑥쓰러움 같은 것도 엷어져 갔다. 스포츠 전문점에 가서 목적에 맞는 제대로 된 신발과 달리기 편한 옷도 사왔다. 스톱워치도 구입하고, 책도 읽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러너가 되어간다. p. 68


24. 의식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자연히 근육이 약해지고 뼈가 약해져 가는 것. 무엇이 공평한가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지 않으면 잘 알 수 없는 법이다. p. 71


25. 인생은 기본적으로 불공평한 것.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 그러나 가령 불공평한 장소에 있어도 그곳에 있는 종류의 공정함을 희구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에는 시간과 노력이 들지도 모른다. 어쩌면 시간과 노력을 들였지만 헛수고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공정함에 굳이 희구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어떤가를 결정하는 것은 물론 개인의 재량이다. p. 72


26. 학교에서 배우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다'라는 진리 p. 75


27. 어쨋든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서른세 살. 아직은 충분히 젊다. 그렇지만 이제 청년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떠난 나이다. 인생의 분기점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러너로서 생활을 시작해, 늦깎이이긴 하지만 소설가로서의 본격적인 출발점에 섰던 것이다. p. 77


28.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p. 116


29. 얼마동안 물을 보지 않고 있으면 내가 무언가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p. 140


30. 지는 일에 길들여져 있다. 세상에는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산만큼 있고, 아무리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산더미처럼 있다. p. 145


31. 기초 체력의 강화는 좀 더 큰 규모의 창조를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일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은 해볼 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이다(적어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쪽이 훨씬 좋다) 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무척 평범한 견해이긴 하지만, 흔히 말하듯,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에는 열심히 하는 만큼의(어떤 경우에는 지나치리만큼의) 가치가 있다. p. 150


32. 시간과 세월을 들여, 그와 같은 레이스를 하나씩 쌓아가서 최종적으로 자신 나름으로 충분히 납득하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다. 혹은 가령 조금이라도 그것들과 비슷한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가 내 묘비명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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