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꾸준함도 '재능'이 될 수 있을까

어쩌다글쓰기- 글 쓰는 한량

 ‘방송국 놈들’ 생활로 조금 일찍 새해 계획을 세우는 편이었다. 하지만 올해에는 1월이 지난지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올 한 해 딱 부러지는 새해 계획’이 없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새 다이어리에 한 두 줄이라도 적으면서 새해를 맞이했었는데 올해는 그런 ‘가벼운 의식’조차 거행하지 않았다. 예기치 못한 1년을 겪어서일까, 새해가 약간 ‘시큰둥’하다. 그렇게 새해 첫 주말을 지내고 보니 약간의 ‘현타’가 왔다. 서둘러 그동안 눈여겨봤던 다이어리를 주문하고, 이것저것 1월의 스케줄을 정리하다 문득 올해는 거창한 계획 대신 그냥 작년에 하던 것들은 이어서 ‘꾸준하게 해 보기’로 작정해본다.


재야에 숨어있던 '무명'가수들을 발굴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과거 가수를 했거나 음반을 낸 ‘족적’이 있는, 이른바 ‘가수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새롭게 ‘앨범’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신인 발굴에 집중했다면 이 프로그램은 재야의 숨은 가수를 찾거나 한때 우리의 심금을 울렸던 노래를 불렀지만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잊힌 가수 혹은 노래는 한 번에 들으면 알지만 그 노래를 부른 가수는 정작 알 길 없는, ‘얼굴 없는 가수’들의 자기 이름 알리기가 프로그램의 콘셉이다.


수많은 '무명'출연자 중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한때 아이돌로 활동했던 출연자였다. 그는 편곡부터 노래, 춤에 이르기까지 혼자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다양한 역할을 해냈다. 한눈에 봐도 그의 노력이 고스란히 보이는 무대였다. 무대가 끝나자마자 MC였던 가수 이승기는 그에게 점수를 떠나서 꾸준함이 ‘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무대였고,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가수 이승기 역시 그와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는 말을 토로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되자 마자 온통 한,두명 가수에게 집중된 기사와 영상클립들이 쏟아졌다. CSI급의 대한민국 네티즌은 그의 형과 부모님까지 소환했고, 과거 그가 출연했던 영상, 친구의 유튜브에 잠깐 출연한 영상까지 죄다 찾아냈다. 

모든 관심은 그 출연자에게 집중됐고, 본선이 시작되기도 전에 김빠진 맥주처럼 그의 우승을 예견하는 이들이 차고 넘쳤다. 우승이 이미 예견된 그는 한눈에 봐도 끼와 재능을 한몸에 갖고 태어났다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사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본선을 시작하기도 전에 우승자가 확연히 눈에 드러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하지만 그 정도로 그의 끼와 재능, 음악을 해석하는 능력, 자신감과 당당함 사이에서 드러나는, 깊이있는 태도까지 그야말로 한눈에 봐도 고수 중에 고수였다. 

살다 보면 어떤 분야에 정말 기가 막힌 ‘재능’과 ‘끼’를 가진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그가 가진 재능과 끼에 부러움을 발사하다가 나에게는 왜 저런 능력이 없을까, 자책하게 된다. 자책의 끝에는 신을 원망하고, 조상을 탓하며, 부모를 책망한다. 내 몸 안에 흐르는 DNA 하나하나까지 미워진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런 것들은 내가 원망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타고난 ‘재능’과 ‘끼’는 분명히 다르다. 그것이 충분히 갖고 태어난 이들, 애석하게도 존재하고, 평범한 나같은 이들은 그들을 부러워 할 수 밖에 없다. 

친구 중에 글을 무척 잘 쓰는 친구가 있었다. 난해한 소설, 두꺼운 책, 들어도 뒤돌아서면 바로 잊어버리는 철학자들의 이름까지 줄줄 막힘없이 내놓고, 글도 어쩌면 그리 잘 쓰는지 자신의 생각을 군더더기없이 촘촘하게 담아내는 그런 친구였다. 수년이 흐른 얼마전 그녀의 소식을 접했다. 아쉽게도 그녀는 지금은 글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탁월한 재능을 마냥 부러워만 했던 나는 그녀가 지금 글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그녀가 최소한 작가가 되어 있는지 않더라도 어디 페이스북이나 브런치, 블로그에라도 글을 쓰면서 살 줄 알았다. 


재능과 끼를 이기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꾸준함이 아닐까, 한때 아이돌이었던 그가 재능과 끼가 넘치는 수백명의 '아이돌' 틈바구니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매일 꾸준히 운동하고 연습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쉽게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많은 것을 포기한다. 사실 이 땅에 '재능' 이 있어서 한가지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지인 중에 아이가 셋인 맘이 있다. 그녀는 매일 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회사를 다니고, 소소하게 자신의 또 개인적인 일과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재테크 및 영어 공부에 열중이다. 틈틈이 운동까지 한다. 난 그녀에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그녀는 '꾸준함'이라고 답변했다. 그냥 매일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어쩌면 뭔가가 잘 되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내 몸 속을 '탈탈' 털어보고, 앞뒤를 다 뒤집어 봐도 나오지 않는 '재능'에 울지 말고, 남은 생은 '꾸준함'에 승부를 걸어보는 건 어떨까? 크게 기대는 하지 말고 말이다. 어쩌면 '꾸준함'의 이름으로 맹목적으로 달렸던 일들이 나에게 근사한 결과물에 짜잔하고 나타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꾸준히 걷고 있는 한강변 @글쓰는한량

매거진의 이전글 일기 같은 글은 그만 쓰고 싶다는 당신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