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
강의의 마지막은 언제나 질문 타임이다. 강의 내내 의문점이 있는 것을 기억해 두었다가 이 타임에 질문을 하는 고귀한 분들! 어쩌면 강의를 하는 이유는 이런 분들의 살아있는 질문이 고파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미처 몰랐던 관점을 제시하는 분들도 계시고, 더 알아야 할 무엇, 당연히 알고 계시리라 생각했던 것들이 질문으로 쏟아져 나온다.
산전수전까지는 아니지만 인생의 공중전까지 치르고 나니 웬만한 질문에는 막힘이 없다. 인생의 개똥철학부터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을 총동원해서 가능한 선에서 최선을 다한 답변을 드리도록 노력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한 질문!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작아진다.
"작가님! 책 추천 좀 해주세요!"
책 추천!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가장 싫어하고, 내가 가장 괴로워하는 질문이다. 어떤 사람에 대한 정보 없이 혹은 지금 그 사람이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과연 몸에 맞는 '책'을 추천할 수 있을까?
어릴 적부터 책보다는 영상을 사랑하고 애정했던 나는 책과는 일찌감치 담을 쌓은 아이였다. 일주일 내내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주말의 명화>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성당에서 부활절이나 성탄절에 성전에서 틀어주던 대형 스크린 속 영화 <벤허>, <미션>을 매번 기다리고, 생일이나 어린이날 엄마의 손을 잡고 극장에 가서 <똘이장군> 시리즈를 기다리던, 나는 그런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후천적으로 주어진 환경 탓으로 인해 책을 읽게 되었고, 이제 읽기는 나에게 쓰기 다음으로 좋아하는 일상이다.
책은 정말 우연히 내 일상에 들어왔다. 영화를 보는 일도, tv를 보는 일도 지치고 힘들었던 순간, 나는 말도 안 되게 그동안 내 인생에서 멀찍이 두었던 '책'을 찾았다.
지친 몸을 끌고 도서관에 갔고, 망가진 몸을 끌고 서점에 갔다.
그때 한 일은 최대한 서점과 도서관에 오래 머물며 나에게 지금 필요한 책을 고르는 일이었다.
우선 서가를 누비고 마음에 드는 제목의 책을 무조건 뽑아 들고 10여 권이 넘게 되면 가장 구석진 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한 권 한 권 목차를 보고, 마음에 드는 챕터를 고른다. 그 챕터의 페이지를 찾아 골라 읽으며 10권은 8권이 되고, 8권은 어느새 3권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 내 손에 잡힌, 한 권의 책을 들고 나는 서가의 구석진 자리를 빠져나온다.
그리고 조용한 카페를 찾아 커피를 옆에 두고 내내 그 책을 읽는다.
그렇게 나는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책을 읽게 되었고 책을 사랑하게 되었고 책을 매일 읽게 되었다.
책을 고르는 일은 시간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마음과 감정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래야 지금 자기에게 맞는 책을 고를 수 있다. 책은 절대 누군가의 선택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닌 그렇게 자기 스스로 오랜 시간이 걸려서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책이 나의 인생 책이 되고, 이후 또 다른 책으로 이어지는 물꼬가 된다.
이제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해줬으면 좋겠다.
"작가님은 어떻게 책을 고르시나요?" 혹은 "요즘 무슨 책을 읽고 계신가요?"라고 말이다.
지금 내 곁에는 축구 관련 에세이 책이 놓여있다. 몇 년 전 출간된 책이고 이미 읽은 책이지만 나의 요즘 관심사의 8할은 축구이기에 다시 한번 읽어보려고 한다
책은 그렇게 고르면 된다
이윤영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