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표현력
‘표현’은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언어나 몸짓의 형상으로 드러내어 나타내는 것’이라고 국립국어원에서 정의합니다. 인간은 언어로 표현하고 소통합니다. 언어는 글과 말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데 매우 취약하고 미숙합니다. 생각은 관념이고, 말이나 글은 형태이기 때문이지요. 무형의 것을 유형의 것으로 드러내는 일은 멀고도 험한 길입니다. 예술 작품의 경우 이런 현상은 더 극명하게 드러나지요. 작가가 멋진 의도를 갖고 표현했지만 향유자들에게 가닿지 못했을 때 우리는 갑갑함을 느낍니다.
저는 어렸을 때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아주 미숙한 아이였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쯤, 같은 반의 한 남자아이를 무척 좋아했어요. 그 아이는 학교 근처의 목욕탕집 아이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집이 목욕탕을 해서인가, (농담입니다!) 그 아이는 항상 깔끔했어요. 머리도 단정하고, 피부도 1년 내내 사우나에서 막 나온 것처럼 희고 고왔지요. 당시 초등학생은 남녀불문하고 운동장이나 동네 골목, 놀이터에서 해가 질 때까지 놀던 때라 말쑥한 아이들이 별로 없었어요. 어쩌면 제가 조금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 아이의 깔끔하고 단정한 외모에 저는 조금은 반해있었어요. 무엇보다 언제 어디서든 큰 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또렷하게 발표하는 그 아이의 목소리와 태도를 좋아했습니다. (당시 그 아이는 학교 방송반 아나운서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학교가 아주 떠들썩했어요. 당시 한 방송국의 어린이 프로그램 <누가 누가 잘하나>에서 출연자 섭외차 학교를 방문한 거예요. 평소와 다른 옷차림에 번쩍거리는 구두까지 신고 등교한 아이들이 많았어요. 너도나도 예선전을 준비하느라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바빴지만, 당시만 해도 학교에서 내성적인 아이로 둘째가라면 서운했을 저는 멀리서 그 아이들을 쳐다만 보고 있었지요.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저는 운명 같은 소식을 듣게 됐어요. 내가 좋아하는 그 아이가 학교 대표로 뽑혔다는 말이었어요. 그리고 이내 각반에 그 아이와 함께 출연할 여자 친구를 추가로 더 뽑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어요.
“이번에 정훈이가 <누가 누가 잘하나>에 나가기로 했다. 근데 방송국에서 남녀 듀엣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여학생 한 명을 더 뽑기로 했어. 혹시 여학생 중에서 정훈이랑 듀엣으로 나가고 싶은 사람 있으면 선생님한테 내일까지 이야기해 주길 바란다.”
당시 무뚝뚝했던 50대 후반의 담임선생님은 교실이 군대 내부반이라도 되는 것처럼 전달할 사항만 전달하고 이내 교실을 홀연히 나가셨어요. 그때 저는 ‘크게’ 외쳤어요.
“저요! 제가 하고 싶어요. 제가 정훈이랑 나가고 싶어요!”
라고요. 당연히 속으로요! 결국 이 말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고, 정훈이는 다른 여자 친구와 함께 방송에 출연했고, 그 주에 우승해서 연말에도 방송국에 갔던 걸로 어렴풋하게 기억합니다.
그날 이후였던 것 같아요. 저는 변했습니다.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내 생각과 감정을 모르는구나.’ ‘내 생각과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야만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라는 사실을 인지한 거예요.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꼬마 아이가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못했던 한순간은 그렇게 큰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사실 만약 제가 용기를 내어 손을 들고 예선전에 나갔다고 해도 정훈이와 함께 방송에 나갔을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당시 저를 돌이켜보면 뽑히지 않았을 확률이 높아요. 하지만 ‘하고 싶다’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점은 아주 큰 후회와 아쉬움으로 남았어요. 만약 그때 예선전에 나갔다면, 설사 선발되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거예요. 왜냐하면 제 생각과 감정을
표현했으니까요.
그때부터였습니다. 내 생각과 감정을 틈틈이 다이어리에 제 생각과 감정을 메모하기 시작했어요.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던 말들을 먼저 글로 옮겨놓았지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다수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데 힘겨워했습니다. 타인의 것도 아닌 자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는 것뿐인데 그게 왜 그리 어렵고 힘든지, 도통 알 수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가끔은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내 생각이고, 내 감정인데 왜 이걸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고 심지어 두렵기까지 한지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이런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기록에는 힘이 있으니까요. 전에는 놓쳤던 일상의 좋은 감정과 깊이 있는 생각을 글로 적어 보며 자신의 일상을 더욱더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여기에 작은 욕망이 하나 샘솟기 시작했습니다. 내 감정과 생각을 좀 더 명확하고,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였습니다. 당연한 현상이고, 글쓰기의 참 의미를 깨달았다는 좋은 신호였습니다. 반가웠어요. 하지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단순한 메모 이상의 무엇이 가미되어야만 했어요.
『자기 표현력』에서는 대학과 기관, 기업에서 했던 ‘표현력 글쓰기 워크숍’ 강의를 중심으로 ‘자기 표현력 향상’을 위한 여러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내 감정과 생각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신기해요.
그동안 나의 표현을 방해했던 것들이 결국 타인이 아닌 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줄 메모가 나 자신을 제대로 아는 귀한 밑거름이 되는군요.
- 워크숍 참가자들의 소감
표현력 워크숍을 진행하면 할수록 단순히 글쓰기나 말하기 기술이 부족해서 사람들이 ‘표현’에 서툴렀던 것이 아님을 확연히 느낍니다. 우리가 표현을 못하고 힘들어하는 이유 너머에는 ‘나 자신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고 사는 자기 자신’이 있다는 사실과 마주하지요.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대해서는 더더욱 무지하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여러분에게 진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만나고, 자신만의 표현법을 찾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표현력 훈련’을 한다고 해서 갑자기 자신의 표현력이 놀라울 정도로 늘어나는 신비로운 일은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여타의 습관처럼 표현력 역시 부단한 훈련과 연습을 통해서만 향상됩니다. 많이 실패할 수도 있고,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는, 나의 ‘표현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이를 직접 실천해 보는 계기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 저의 마음을 따뜻한 조언으로 담아봤습니다.
글을 읽고 쓰고 표현하는 것을 연구하고 가르칩니다.
이윤영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