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대단한 붓이 있어도, 그리는 건 결국 인간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언제나 기존의 것을 따라 하며 배워왔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왔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도 그랬다. 그는 고대 조각을 연구하고 모사하며 자신의 예술 세계를 확장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의 청년 모습을 이상화한 조각상 ‘다비드’는 르네상스 조각가 도나텔로와 고대 그리스 조각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과장된 손과 세밀한 근육 표현, 정면을 응시하는 눈동자에는 전 시대의 조형적 전통이 반영되어 있으며, 여기에 미켈란젤로만의 해석과 조형 감각이 더해져 새로운 걸작으로 탄생했다. 이처럼 인간은 기존의 것을 모방하며 배우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창작물을 만들어왔다.
비슷한 맥락에서, 셰익스피어 또한 많은 작품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그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미 이탈리아에 널리 알려진 비극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기존 이야기에 섬세한 인간 심리와 운율, 희극적 요소를 더해 완전히 다른 감정의 깊이를 창조해 냈다.
현대에도 이 원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스티브 잡스가 즐겨 인용했던 피카소의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는 말은 단순한 도둑질이 아닌, 기존의 것을 자기만의 철학과 미감으로 재해석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예컨대, 애플의 아이폰 디자인은 독창적이라 여겨지지만, 사실은 독일 가전 브랜드 브라운(Braun)의 전성기를 이끈 디자이너 디터 람스(Dieter Rams)의 디자인 철학을 모티프로 삼아 발전시킨 결과물이다. 그러나 사용자의 경험과 감성적 연결을 중심으로 새롭게 빚어냈기에, 지금의 애플이 독창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처음 카메라가 발명됐을 당시, 화가들은 이를 인간 예술성의 타락으로 여겼다. 19세기 프랑스 시인이자 미술 평론가였던 샤를 보들레르는 사진 기술을 두고 “예술의 가장 치명적인 적”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는 디지털 편집 도구와 컴퓨터 기반 디자인 프로그램들이 ‘예술가의 손이 아닌 기계가 만든 작품’이라는 이유로 외면받기도 했다. 하지만 기술은 늘 저항과 논쟁을 딛고, 예술의 중심으로 걸어 나왔다. 사진은 회화와는 다른 시선과 감성을 품은 장르로 인정받았고, 디지털 아트는 이제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기술은 단지 예술의 적이 아니라, 예술의 언어를 확장하는 도구였다.
오늘날 우리는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새로운 창작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여 이미지, 음악, 글 등 다양한 콘텐츠를 생성한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창작의 문턱을 낮추고, 누구나 쉽게 창작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2022년,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에서 인공지능이 그린 미술작품이 공모전에서 1위에 입상하는 일이 벌어졌다. 게임 디자이너인 제이슨 앨런(Jason M. Allen)은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기 미드저니(Midjourney)를 활용해 ‘스페이스오페라극장(Théâtre D'opéra Spatial)'이라는 작품을 출품하였고, 신인 디지털 아트 부문에서 1등을 차지했다. 그는 인공지능이 생성한 이미지를 포토샵으로 보정하고, 고해상도로 업스케일링하여 작품을 완성했다. 이 사건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협업이 새로운 형태의 창작으로 인정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2024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바바라 캠퍼스(UCSB)에서 개최된 'AI/Human Creativity Contest'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협업으로 탄생한 작품들이 단편소설, 시각예술, 음악 부문에서 수상하면서 인공지능과 인간의 공동 창작이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입증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인공지능이 단순한 도구를 넘어 창작의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기술의 편리함 이면에는 간과되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문제가 존재한다. 바로 창작자의 권리 침해다.
2023년 1월, 미국의 시각 예술가 사라 앤더슨(Sarah Andersen), 켈리 멕커넌(Kelly McKernan), 카를라 오르티즈(Karla Ortiz)는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 개발사인 미드저니(Midjourney), 스테빌리티 AI(Stability AI), 그리고 이미지 공유 플랫폼 디비언트아트(DeviantArt)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들은 인공지능이 자신들의 작품 수천 점을 무단으로 학습하고 스타일을 모방하여, 작가의 동의 없이 유사한 이미지를 생성했다며 권리 침해를 강하게 주장했다.
이 사건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지방법원에서 진행되었고, 2024년 8월, 판결을 통해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이 저작권이 있는 원고들의 작품을 무단으로 학습하고, 이를 기반으로 생성 모델을 구축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와 같은 행위는 원작자들의 시간과 노력, 감정이 담긴 저작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불법적 행위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정당한 저작권 보호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재 많은 국가의 저작권법은 '인공지능이 생성한 콘텐츠'에 대한 명확한 법적 기준이 없다.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인공지능이 만든 결과물은 법적으로 저작물로 인정받지 않거나, 그 소유권조차 불분명하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이 어떤 데이터를 학습했는지, 그 과정에 어떤 저작물이 포함되었는지는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창작자는 자신의 콘텐츠가 어디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권리를 침해당하는 셈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진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의 창작은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다. 그렇기에 더욱, 인간 창작자의 권리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기술이 창작을 대신하는 시대가 아니라, 창작을 확장하는 시대가 되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첫째,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데이터의 출처를 명확히 공개하고, 창작자의 동의와 보상을 보장하는 법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문화적 태도를 교육, 언론, 콘텐츠 플랫폼이 함께 형성해 나가야 한다.
셋째, 창작자와 기술 기업이 동등하게 협업할 수 있는 윤리적 기반이 필요하다. 상호 존중과 투명성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창작 생태계가 절실하다.
인공지능은 분명 우리에게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 진정한 가치를 가지려면, 그 기저에는 반드시 인간 창작자의 권리와 존엄이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인간 창작자의 권리가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