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잔고가 줄어들 때,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무라카미 하루키|문학사상|

by 더 로사 The ROSA

휴대폰으로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내가 먼저 입을 뗐다.

"애들 개학하면 나도 일을 다녀야겠어."

"아무래도 안 되겠어? 자신이 없어?"

"자신은 있는데... 자신만 갖고 되는 건 아니잖아. 통장 잔고도 계속 줄고 있고......"

"아직 여유자금 있으니까 조금 더 해봐. 미련이 남으면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을 거야. 그럼 이도저도 아닌 게 되고..."


조급증이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유튜브를 하겠다고 호기롭게 시작했으니 내 예상과 달리 구독자와 조회수는 쉽게 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이고, 반드시 성공할 거란 확신도 들었기에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힘이 들었다. 유튜브를 시작으로 돈을 벌고, 결국 위대한 소설가가 되겠다는 다짐은 평범한 직장인의 삶으로 작아지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성공을 하고 싶었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들을 읽었고, 다 똑같은 말만 한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할 것. 대체 얼마나 좋아해야 좋아하는 일이라 말할 수 있으며 얼마나 해야 꾸준히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성공할 때까지란 기약 없는 약속은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고, 그때마다 성공이 아닌 평범함으로 되돌아갔다.


작가가 되겠다는 말을 했을 때 어떤 글을 쓸 건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막연히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글쓰기가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생각보다 견고한 설정과 필력이 필요했다. 타인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는 『82년생 김지영』처럼 나만의 독특한 설정을 찾으려 애썼지만, 그럴수록 소설은 견고한 성벽처럼 느껴졌고 내 자리는 좁아졌다. 소설 구성부터 막막했던 나는 결국 언젠가라는 말로 쓰기를 멈춰버렸다.


책 리뷰를 쓰며 에세이형식의 글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는 언니가 추천해 준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에세이 글의 해답이 들어있을 거라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단순히 조깅정도로만 생각했다. 산책의 연장선이라 믿었던 것이다. 세계적인 소설가가 매일 달리기를 한다는 말에도 놀라지 않았던 것은 간단한 달리기 정도로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생각과 다르게 하루키는 진지하게 달리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달리기에 관한 책인데, 삶에 대한 그의 태도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루키에게 달리기는 생존이었고, 문학 그 자체였다.


애초에 달리기는 긴 인생을 소설가로 살기 위해 선택한 건강 유지 방법 중 하나였다. 달리기는 사람과 도구가 필요 없었고, 특별한 장소 또한 필요치 않았기에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필연적인 운동이었다.


그는 달리기를 진지하게 바라봤다. 마치 소설을 쓰는 것처럼. 하지 않아야 될 수많은 이유를 물리치며 매일매일 달렸고, 목표를 정하고 기준치를 높여가며 그것을 달성하고자 노력했다.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갔다. 매년 마라톤에 나갔고, 계속해서 글을 썼다.


책을 덮은 후 하루키가 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였을까?를 생각했다. 달리기라는 행위를 축으로 한 일종의 '회고록'으로 읽어도 무방하다는 이야기처럼 삶에 대한 그의 태도가 달리기라는 행위에 녹여져 있다. 그는 달리기를 통해 자신의 인생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 같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나의 삶을 되돌아본다. 어떤 행위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아주 적은 이유지만 계속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단련하고 있는가? 새로운 결심에 수많은 핑계를 대며 포기했고, 난 안돼를 무기처럼 자책하며 살았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다. 하루키에게 달리기가 문학 그 자체였다면, 나에게는 매일 아침 노트북을 켜는 행위가 나의 마라톤이다. '아이들 방학이라 바빠서', '어제 늦게 자는 바람에' 그만둘 이유는 산더미 같지만 그럼에도 해야 하는 작은 이유들을 찾는다. '삶의 기록', '하고 싶은 이야기', '도움을 주고 싶단 생각'......


그가 남기고 싶다는 묘비명을 생각한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실패하고, 좌절하며 스스로를 옥죄고 있지만 내 묘비명엔 이 한 문장을 적고 싶다.

"적어도 끝까지 포기하진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서평이 에세이가 될 때: 나를 각인시키는 글쓰기의 비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