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종과 나비』|장 도미니크 보비, 양영란(역)|동문선|2015. 8
저녁 8시.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손을 뻗었다. 빨간 껍질 안에 들어 있는 바삭하고 매콤한 썬칩. 요즘 큰 아이가 빠져있는 과자였다.
아무렇게나 펼쳐진 과자봉지에 손을 집어넣었다. 무의식적으로 과자를 입에 넣었다. 이후는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부스러기를 입안으로 털어 넣고 있었다. 오늘도 다이어트는 실패다. 자책감이 밀려오려는 찰나, 입 안 가득 과자를 문 채 『잠수종과 나비』의 장 도미니크 보비가 생각났다.
갑작스러운 전신마비로 오직 왼쪽 눈꺼풀만 깜빡일 수 있었던 남자. 그는 정상적으로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 같다고 고백했다.
"입속에 과다하게 고이다 못해 흘러내리는 침을 정상적으로 삼킬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기분일 것 같다."
입 속으로 가져가 목구멍으로 넘기는 '삼킴'의 행위.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걸고서라도 되찾고 싶은 행복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과자를 집고, 입으로 가져가 씹고 삼키는 이 일련의 과정이 얼마나 압도적인 기적인지 선명하게 느껴졌다.
"엄마, 다이어트한다며!"
딸아이가 과자 봉지를 낚아챈다. 이미 늦었다. 황당한 표정을 짓는 아이를 온 힘을 다해 꽉 안아주었다. 아이의 온기를 느끼고, 살결의 향기를 맡으며, 눈을 맞추고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 이 또한 누군가에게는 닿을 수 없는 꿈이었다. 보비는 그의 책에 이렇게 썼다.
내 아들 테오필 녀석은 50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를 두고 얌전히 앉아있는데, 나는 그 아이의 아빠이면서도 손으로 녀석의 숱 많은 머리털 한번 쓸어 줄 수도, 고운 솜털로 뒤덮인 아이의 목덜미를 만져 볼 수도, 또 부드럽고 따뜻한 아이의 작은 몸을 으스러지도록 안아 줄 수도 없다.
우리는 대개 거창한 성공을 쫓느라 내 몸이 부리는 마법을 잊고 산다. 보비의 시선을 빌려 오늘 하루를 다시 떠올려보았다. 눈부신 햇볕을 피해 커튼을 칠 수 있는 팔,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해줄 수 있는 손, 운전하고 걸으며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갈 수 있는 발. 타인의 도움 없이 모든 일을 할 수 있었다. '사소함'이라는 이름의 기적이었다.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 바로 나의 오늘이라는 말은 진부한 격언이 아니라 엄연한 실재였다. 누군가가 그토록 갈망했던 기적 같은 '오늘'을 통과한 우리 모두를 응원하고 싶다. 우리가 누리는 이 평범한 시간이 실은 기적인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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