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지은이)|이성과 힘|2000
곁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하나둘 '권고사직'이란 이유로 떠났다. 빈자리는 고스란히 나의 업무가 되었고, 대표의 요구는 선을 넘기 시작했다. 그때 가짜 가방이 내 삶에 들어왔다. 내 노력과 상관없이 정해진 월급을 받는 것보다 마진이 좋은 가짜 가방을 파는 게 더 이득이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3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장사를 시작했다.
난 명품가방에 사람들이 그렇게 관심이 많은 줄 그때 처음 알았다. 가방을 판지 한 달쯤 되던 어느 날, 경찰이 들이닥쳤다. 살면서 경찰을 대면할 일은 절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겁이 많은 탓에 신호를 어겨 건널 때도 간이 콩알만 해지는 나였다.
경찰은 정중히 말했다.
"불법 판매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물건들을 회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수갑을 채우지도, 고함을 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가짜 가방을 가져가기만 했다. 며칠 후 경찰서에 와서 조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분증을 요구하는 경찰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비단 공포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직한 월급을 비웃으며 손쉽게 이득을 취하려 했던 내 안의 욕심을 들켜버렸기 때문이다.
때맞춰 나타난 친오빠가 아니었다면 대성통곡하며 쓰러져버렸을 것이다. 어떻게 손을 써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오빠는 겁에 질린 나를 대신해 경찰과 함께 남은 절차를 감당했다. 오빠의 등 뒤로 숨으며 생각했다. 내가 벌려한 것이 고작 이런 수치심이었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으며 그때의 생각이 떠올랐다.
공무원 월급표를 보면 뒷집 남자의 월급은 남편의 월급보다 사뭇 적다. 단출한 식구에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자기네는 조용한데, 많은 식구에 적은 월급을 받는 뒷집은 흥청댄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귀가 아프게 들어온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뒷집에만 온 것 같다. 뒷집에 가난은 없다. 그래서 신애는 생각한다. 저 집은 도대체 어느 편인가? 우리는 또 어느 편인가? 그리고 어느 편이 좋은 편이고, 어느 편이 나쁜 편인가? 도대체 이 세상에 좋은 편이 있기는 한가? (p.38)
세무서 조사과 직원이던 뒷집 남자는 월급 외의 부정한 돈을 챙겼다. 그 돈으로 뒷집은 흥청댔지만, 큰딸은 약을 먹었다. 어느 편이 좋은 편이고, 어느 편이 나쁜 편일까?
나는 가짜 가방을 팔아 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통장 잔고는 늘었지만, 내 영혼은 수치심으로 가득 찼다. 그 짧은 풍요의 대가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이었다.
우리는 모두 어느 편에 서서, 무엇을 대가로 지불하며 살고 있는 걸까. 나는 이제 더 이상 '흥청대는 뒷집'의 풍요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 풍요 뒤에 가려진 서늘한 대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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