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상 Oct 21. 2019

던져진 자의 심정

첫 발을 내디딘 날의 기억. '어쩌다 보니'의 힘.

스물둘.


누군가는 꽃보다도 아름다울 때라며 감탄하고, 누군가는 학교에서 운명처럼 만난 상대와 다정한 연애를 하고, 또 누군가는 태양 없는 세시반까지 친구들과 술잔을 부딪히는 나이. 나는 그 나이 스물둘에 처음으로 사회에 내 몸을 던졌다.


모든 것은 '어쩌다 보니' 일어났다. 어쩌다 보니 안산에 있는 한 2년제 전문학교에 제과제빵 전공으로 입학했고, 어쩌다 보니 입학한 바로 다음 해에 졸업을 하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졸업과 동시에 눈여겨보던 제과점에 일자리가 생겨 면접을 가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면접에 합격하여 취업을 하게 되었다.


쓰고 보니 '이 사람 좀 막 사는데 운이 좋았네'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운이 좋았던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유유자적 흘러가는 대로 인생을 내버려 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어쩌다 전체수석도 한 번 하고, 장학금도 받고, 교수님들과 동기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니 첫 직장이라도 열심히만 하면 어떻게든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막연한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단 열흘만에.


첫 직장에는 제품을 생산하는 공간 맞은편에 조그마한 사무실이 하나 있었다. 직원들끼리는 '진실의 방'이라고 불렸던 곳이다. 평소에는 서류를 정리하거나 면접을 진행하기 위한 공간이지만, 사장님이 직원들과 긴밀한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때 사용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사장님이 나의 사수였던 동료 언니 A와 나를 진실의 방으로 호출했다. 우리는 깎던 단호박을 내려놓고 진실의 방으로 향했다. 지금도 그 날을 떠올리면 오금이 저리고 식은땀이 흘러내릴 정도로 진실의 방은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장님은 예의 다정하고도 날카로운 눈으로 차근차근 내게 아픈 말을 뱉어냈다. 그중 몇 마디는 지금도 정확히 기억한다.


"잘 들어. 너는 경력도, 실력도, 아무것도 없어. 잘하지도 못하고, 빠르지도 않아."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왈칵 쏟아졌다. 닦아도 닦아도 눈물이 계속 나서 곤혹스러웠다. 사장님은 침착하게 소파 뒤에 갑 티슈를 가리켰고, 나는 내 손으로 티슈를 가져와 허겁지겁 눈물을 닦았다.


"아무것도 아닌 너를 내가 고용한 이유를 절대 잊지 마. 앞으로 선 넘지 마. 절대."


선. 그 단어를 들으니 열흘간의 나의 언행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내가 선을 넘을 만한 짓을 했던 적이 있던가? 있다면 무엇인가? 짚이는 구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 용기 내 던졌던 농담 하나, 실수를 지적당했을 때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뱉어낸 변명 하나. 내 입과 손에서 나온 사소한 것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사장님이 그어놓은 선을 넘은 것이었다.


진실의 방에서의 면담은 눈물바다로 끝이 났다. A도 면담 도중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만 것이다. 사장님은 A와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다며 나를 먼저 내보냈다. 둘이 들어가 홀로 나온 나는 그 길로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엉엉 울었다. 주방에선 절대 울어선 안 된다는 A의 말이 떠올라서였다.


변기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울면서 나는 그제야 실감했다. 나는 그곳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늘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어렸을 땐 발야구를 잘했고, 교복을 입을 때는 영어나 미술을 잘했다. 손으로 하는 작업들을 워낙 좋아해서 전공수업 때도 늘 교수님께 칭찬을 받았다. 그 칭찬에 둘러싸여 나는 내가 무엇이든 잘하는, 조금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날 대면한 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특별한 사람은 더욱 아니었다.


잔업을 마치고 퉁퉁 부은 눈으로 돌아간 집은 정말 작았다. 신발장도 작고, 화장실도 작고, 창문도 작고, 그냥 모든 게 다 작았다. 그 작은 공간에 가득 들어찬 나를 보며 왠지 자꾸만 던져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스스로 찾은 직장이고, 제 발로 들어온 곳인데 자꾸만 누가 나를 던진 것처럼 느껴져 견딜 수가 없었다.


나를 사회에 던진 것은 나였다. 앞으로도 어딘가에 나를 던지는 이가 있다면, 그건 아마 나 자신일 것이다.


나는 사회초년생이다.


젊다기보다는 어린 나이에 가깝고, 두 번의 직장을 거쳤지만 아직 경력이라고 부를 것이 딱히 없는, 잘하는 것보다는 못하는 것이 더 많은 사람이다. 그 날 진실의 방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는 앞으로도 몇 번이나 나의 초라한 알몸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던져진 자의 심정으로 몸을 웅크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부딪히고 깨지며 웅크린 몸을 피려고 할 것이다. 어쩌다 보니 못하는 것을 잘하게 된다거나, 어쩌다 보니 멀었던 사람과 가까워지게 된다거나, 어쩌다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던 내가 무엇인가 되는 날이 올 지도 모르니 말이다.


나는 '어쩌다 보니'가 주는 희망을 믿는다. 사회에 먼저 나간 이들은 아마 막연한 희망이라며 손사래를 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지 않은가. 사회초년생이 아니면 언제 또 믿어보나. '어쩌다 보니'의 힘을.

작가의 이전글 3D의 애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