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상 Oct 21. 2019

3D의 애환

3D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하고, 꿈꾸기 위하여

3D란 무엇인가.


흔히 3D 업종이란 어렵고(Difficult), 지저분하며(Dirty), 위험한(Dangerous) 기피업종을 일컫는 말이다. 또 구직을 희망하는 이가 비교적 적고, 일의 강도가 높은 데 비해 보수나 복지의 혜택이 적은 경우도 3D업종에 해당한다. 일본의 3K(힘들며(Kitsui, きつい), 더러우며(Kitanai, 汚い), 위험하다(Kiken, 危険)의 준말)라는 표현이 한국에 넘어와 3D가 되었다는데, 정확한 유래인지는 잘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3D 직업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라고 물어본다면 어떤 직업들이 나올까. 그리고 그중에 '파티시에(Patissier)'나 '블랑제(Boulange)', 혹은 '제과제빵사'가 포함된 경우는 과연 얼마나 될까.


블랑제와 파티시에, 혹은 제과제빵사. 이 얼마나 고급스럽고 우아해 보이는 이름인가? 주름 하나 없이 잘 다린 새하얀 유니폼, 쇼케이스 안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디저트, 오븐에서 갓 나와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빵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지고 행복에 젖어드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그러나 이런 환상을 거둬냈을 때 마주하게 되는 것은, 아름다운 광경이 아닌 3D의 애환이다.






한국에서 제과제빵사들의 출근 시간은 보통 6시 혹은 7시이다. 이른 곳은 4시나 5시에 출근하는 경우도 있다. 기계의 발달과 복지의 발전으로 출근 시간이 조금씩 늦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출근시간이 이른 편이다. 가게가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제품을 생산하고 포장하고 진열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케이크나 타르트 등의 제과 품목을 생산하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식빵이나 캄파뉴 등의 제빵 품목은 반죽과 성형, 발효와 굽기 등 기본적인 생산에만 최소한 서너 시간이 걸린다. 생산을 담당하는 직원들의 출근 시간이 빠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날마다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에 집을 나서다 보니, 출근을 위해 걷고 있어도 정신은 잠에서 미처 깨어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주방에 도착해 유니폼을 입고 작업을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볼때기를 때려서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주방은 말그대로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방은 미끄럽고, 뜨겁고, 날카롭고, 무거운 것들이 난무하는 공간이다. 


매일 쓸고 닦아도 일하다 보면 바닥은 늘 물이나 밀가루로 미끄러워진다. 특히 나는 물보다 밀가루가 더 무섭게 느껴지는데, 물이야 흥건하게 고여있는 것을 보면 피할 수 있지만 밀가루는 아주 작은 입자의 가루가 쌓이는 터라 알아채기도 힘들고 피하기는 더욱 힘들기 때문이다. 바닥에 미끄럼 방지 패드가 깔린 조리용 안전화도 밀가루 앞에선 속수무책이 될 때가 많다.


수많은 제품을 구워주는 마법사 같은 오븐도 사용하는 사람 입장에선 온몸에 불을 휘감은 도깨비처럼 보일 때가 많다. 낮게는 160도, 높게는 220도까지 올라가는 오븐은 말그대로 손잡이를 뺀 모든 부분이 아주 뜨겁게 달궈질 수밖에 없다. 오븐을 많이 사용할수록 화상을 입을 가능성은 당연히 높아지는데, 특히 주방이 좁거나 작업이 아주 바쁘게 이루어지는 곳에선 화상 사고가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 오븐 문을 여닫는 물리적인 여유나 느긋하게 제품을 넣고 빼는 심리적인 여유가 없어지면 동작이 필요 이상으로 커지고 조급해질 수 밖에 없는데, 위급한 순간에 제품을 희생시킬 순 없으니 대신 내 몸을 희생하게 되는 것이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


기구나 도구는 또 어찌나 무거운지, 믹싱기를 옮기거나 철판이 가득찬 설거지를 하다보면 욕이 절로 나온다. 특히 믹싱기 중에 스파믹서(Sparmixer)라고 성능이 좋기로 유명한 모델이 있는데, 새 스파믹서를 주방으로 옮기다 하마터면 바지에 똥을 쌀 뻔한 적도 있다. (나중에 찾아보니 기계의 무게만 25kg이라고 한다.) 제품을 굽거나 담을 때 사용하는 철판의 무게도 만만치 않다. 보통 철판 한 장당 약 1.1kg인데, 만약 200g인 제품 열 개를 담는다면 도합 3kg이 넘는 철판을 들고 날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제품이 200g일 리가 없고 이동 횟수가 한 번일 리도 없다. 하루에도 수십 번을 무거운 철판을 들고 움직여야 하니 손목 건강에는 빨간 불이 켜진다. 만약 주방이 2층에 있고 오븐과 매장이 1층에 있다면 철판을 들고 계단까지 오르내려야 하니 무릎과 허리도 망가질 수밖에 없다.


이렇듯 주방은 무시무시하다. 이 무서운 주방을 벗어나면 당장 위험은 사라지지만, 그 자리를 여러가지 고통들이 스멀스멀 채운다. 주방에서 살아남은 대가로 손목과 허리, 무릎과 발바닥들이 비명을 지르기 때문이다. 특히 손목과 허리 통증은 정말 많은 제과제빵사들이 두통처럼 달고 사는 통증이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반응은 이렇다. "너무 힘들어 보인다.", "다른 일 알아보는 건 어때?". 동정에서부터 걱정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우리 엄마만 해도 나만 보면 영문과로 유명한 학교의 팸플릿을 슬쩍 내 앞에 두고가거나 동네에 새로 생긴 일자리를 알려주고는 한다. 내가 생각해도 이 직업은 얻는 것에 비해 잃는 것이 너무나도 크고 명확하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3D 직업으로 몇 년동안 먹고사는 이유는 딱 하나다. 즐거우니까.


고통을 즐기는 것인가? 그리 묻는다면 당연히 그렇지 않다. 나도 흉터가 남는 것은 속상하고 아픈 것은 정말 끔찍하도록 싫다. 화상 자국을 보며 '영광의 상처'라고 뿌듯해하던 시절은 진즉에 지났고, 이제는 빠르기보다 안전하게 일하는 방법을 연구하며 일한다. 그래도 여전히 안 다칠 때보다 다칠 때가 더 많고, 약을 아무리 발라도 사라지지 않는 야속한 흉터도 많다.


그러나 그 수많은 상처와 괴로움 끝에 내 손에서 탄생하는 제품만이 뿜어내는 광채란, 실로 어마어마하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아우라 같은 것이 있다. 그 순간 제품은 제품이 아닌 한 편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내 손으로 빚은 작품을 누군가 먹고 행복하다는 표정을 짓는 모습은 몇 번을 봐도 가슴팍이 간질간질 할 정도다.


누군가에게 자그마한 행복을 쥐어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의 즐거움이다.


물론 즐거움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울 때가 더 많다. 오븐의 열기가 너무 심해서 에어컨을 틀어도 유니폼은 늘 땀범벅이 되기 일쑤고, 고무장갑을 끼고 벗을 시간이 없어 맨손으로 철판을 몇십 장씩 닦다 보면 손톱부터 피부가 벗겨져 진물이 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즐거움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그냥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누워서 한숨 푹 자고 싶어 지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하지만 그래도 또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일어나 출근을 하고, 이두박근이 튀어나오도록 철판을 들고 나르고,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을 반복할 것이다. 




제과제빵사는 백조와도 같다고 나는 종종 생각한다.


멀리서 백조를 보는 사람들은 어쩜 저렇게 우아한 새가 다 있느냐며 감탄을 자아낸다. 새하얀 깃털과 도도한 자태. 사방팔방 물을 튀기며 물장구를 치지 않아도 백조는 앞으로 옆으로 우아하게 나아간다. 백조를 보면 아름다운 새라며 사진을 찍고 감탄사를 터뜨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물고기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떨까? 물고기의 시선으로 본다면 백조처럼 힘들게 사는 새도 없을 것이다. 백조는 아가미가 없으니 물에 빠지면 큰일일 것이고, 그러니 물에 빠지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발길질을 한다는 것을 물고기는 알 테니 말이다.


백조는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헤엄치는 것뿐인데, 그런 자신을 향해 어떤 이는 감탄을 하고 어떤 이는 동정을 내비친다. 백조는 그 시선들을 받아내면서도, 여전히 발길질을 멈추지 않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백조가 저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갈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는 것은, 아마 같은 백조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아름다워 보이지만 내 직업은 3D가 맞다. 어렵고, 힘들고, 지저분해지기도 쉽다. 하지만 나는 백조처럼 앞을 향해 나아가고 싶을 뿐이다. 나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그저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그 어떤 감탄도 동정도 필요치 않다. 그러니 나는 이 자리를 빌려 3D의 의미를 새로 쓰고 싶다.


어렵고, 힘들고 지저분한 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Despite), 성장하고(Develop), 꿈꾸는(Dream) 것'이 가능한 일.


이 세상의 수많은 3D 종사자들이여. 감탄에도 취하지 말고 동정에도 스러지지 않고, 함께 앞으로 나아갑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