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도록 잔인했던 열일곱 살 소년의 시간들
그녀의 둘째 아들은 제주도에 혼자 남겨졌다.
큰형은 형 학교에서 잠시 머물다 서울로 대학을 갔고
막내여동생은 어머니가 데리고
아는 이모집으로 간다 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았다.
친척 작은 아버지라는 분이
방을 얻어준다며 제주도로 오셨다.
제주시내 유흥가를 가로질러
조금 지나면 작은 골목이 나오는데
여관방인지 고시원인지 모를,
방들만 가득한 골목이 있었다.
그 골목에 중간쯤 되는 방의 이층을 가리키며
“석 달 치 월세는 냈으니까, 그냥 여기서 자면 돼.”
여기서 지내라 했다. 그냥 자면 된다 했다.
이곳은 술에 절어있는 세상이었다.
앞뒤를 둘러봐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서로 엉켜있는 붉은 세상이었다.
모든 소리들이 색깔들이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고등학교 입학식도 혼자 지낸 둘째 아들은
그곳에서 몇 달을 지냈다.
그래도 교복을 안 입어도 되는 학교라
이게 어딘가 다행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들을 학교에서 모를 리 없었고
같은 학교 친구들, 아니 친구는 아니었다.
동급생들은 다 알고 있었다.
둘째 아들이 처한 현실은,
그들의 스트레스해소의 먹잇감이 되기엔
충분한 소재들이었다.
매일같이 구타를 당하고
다른 애들한테 뺏은 돈을 이 아이의 가방에 넣어두고
도둑 누명을 씌워 선생님들에게도 매질을 당하게 했다.
소풍을 의무적으로 가야 했기에
온 얼굴이 멍든 채 단체 사진을 찍어야 했다.
누군가는 그의 멍든 얼굴만을 골라
집요하게 사진을 찍기도 했다.
어떤 말을 해도
이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같이 말만 해도 옆에 있다는 이유로
그 친구까지 당해야 했기에
아무도 이 아이의 곁에 있어주지 않았고
선생님들도 모른척했다.
오히려 아이들과 한 패 같았다.
대놓고 너 학교 그만 안 두냐며 자퇴를 권하기도 했다.
그렇게 지옥 같은 고등학교 1학년을
석 달이나 버텼고
그러던 중 아버지가 돌아왔다.
둘째 아들의 그 처참한 방을 보고 가슴을 내려쳤다.
아들을 그 방에서부터 학교로부터 꺼내왔다.
아내와 딸이 머물고 있다는 곳으로 향하며
아버지의 가슴에는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엄마 집에 도착한 둘째 아들은
거기서 비로소
귀를 막지 않고 웅크리지도 않고
두 발을 뻗고 온전한 평온 속에서
실컷 잠을 잘 수 있었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이 마냥 좋았다.
원망보다 구해줘서 감사하다 했다.
그리고 몇 달 뒤,
그녀는 우연히 둘째 아들의 책 사이에서
여러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소풍날 찍힌 사진들이었다.
멍투성이의 얼굴, 텅 빈 눈빛.
아직 그녀의 눈에는 너무도 어리기만 한 이 아이는
양옆으로 아이의 팔을 끼고 있던 무서운 동급생들 의해
강제적으로 웃고 있었다.
가슴이 찢어졌다 무너져 내렸다.
유난히도 여리고 눈물도 많았던 이 아이가
얼마나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까
내 새끼 내 아들 얼마나 아팠니..
왜 그 시간, 내 아이를 그 소굴에 혼자 두었을까.
그녀는 오래도록 사진을 쥔 채 오열했다.
무릎을 꿇으며 사진 속 자신의 아이에게 사죄를 했다.
사라진 시간이, 온몸으로 되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