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우리는 또다시 시작했다

평범한 하루가 가장 큰 기적

by 수 진

다시 시작한 삶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따뜻했다.

모든 걸 잃고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들은

작은 방 하나에서부터

다시 사람 사는 집이 되어갔다.

지금껏 그래왔듯

기죽지 않고 당당하고 활기차게 살아나갔다.

짧은 평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녀의 딸은 공부를 참 열심히 했다.

중학교 2학년 사춘기의 여학생이었지만

학교를 마치면 어디 놀러 가는 것도 없이

곧장 집으로 달려와

엄마 턱밑에 앉아

하루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다 풀어냈다.

이렇게 엄마 얼굴만 쳐다보고 있어도

안전한 이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아무런 걱정 없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남편은 다시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제주도에서도 일어났던 사람이다.

이번에도 역시 일어났다.

돈이 조금씩 모였고

작은 방을 벗어나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녀의 가족에게도 '평범함'이라는 단어가

조금씩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새로 이사 간 아파트 두 개층 밑에

남편의 사촌 형이 살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남편이 똑똑한 탓에

항상 비교를 받아왔던 게 자존심이 상했던지

걸핏하면 올라와서는

윗사람 행세를 한참 하다가 내려가곤 했다.


남편의 일은 걱정스러울 만큼

일이 잘 풀려가고 있었고,

아이들 역시

학교에서도 꽤나 인정을 받아가고 있을 즈음,

갑자기 남편의 사촌형이 찾아와

집에서 쓰고 있는 칼 두 자루를 빌려달라고 했다.

자신의 집에 칼이 다 부러졌다며

급하게 써야 한다며 두 자루를 빌려 달라고 했다.

그녀는 칼을 빌려주고 나서

뭔가 이상하다 싶어 몰래 계단으로 내려가 보니

그 집 문 앞에서

빌려갔던 칼 두 자루를 바닥에 던져놓고

사촌 형이라는 사람은 무릎을 꿇고 앉아

‘굿’을 하고 있었다.


"지금 남의 집 칼을 들고 가서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그녀는 소리를 질러대며 칼을 들고 들어왔다.


남편의 기운이 그 집을 누르고 있다며

그래서 안 풀리는 것이라 ‘굿’을 했다 한다.

그녀의 집은 독실한 가톨릭신자였고

이런 굿판 따위는 믿지 않는다 했지만

기분이 썩 개운치는 않았다.


그러나 하늘에 어떤 기운이 닿았던 걸까

누구의 절실함이 통했던 것일까

잘 풀리던 남편의 일은

거짓말처럼 갑자기 거래처가 끊기고

받아야 할 돈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아닐 거라 믿고 싶었지만

다시 또 벽에 막혀버린 상황이 되어갔다.


당시 남편은 시누의 남편을 데리고 일을 했었다.

시누의 남편은 결혼해서부터 계속 술 마시는 것 이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던 백수였다.

여동생이 안쓰러워 남편이 데리고 일을 했었다.

그런데

돈 줄이 막히고 이 아파트마저 위험한 상황이 되자

시누 남편은

아파트 명의를 자신의 명의로 바꾸자고 제안했고

남편은 그렇게 해야 식구들 살 집이라도 남기겠다 싶어

서둘러 집을 시누 남편 명의로 넘겼다.

그녀는 너무 불안했지만

설마 자신의 형제한테 당할까 싶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설마가…

그렇게 시누에게까지 아파트에서 내쫓기고

그나마 있던 돈도 말라가고, 사람들도 등을 돌렸다.


늘 그랬다.

희망이 보인다 싶으면

그 사이로 비집고 악의가 들어왔다.

어찌 친척과 형제에게 당할 거라 생각했겠는가..


그렇게 또다시

삶이 무너졌다.


이상하게도 우리 집은,

행복이라는 게 3년을 넘긴 적이 없어

그녀는 하늘을 보며

원망을 했을까

자신의 신세를 탓했을까.


정말 그랬다.

언제나 살만하다 숨을 돌릴만하면

그 숨을 꺼뜨리는 바람이 불었다.


평범한 삶이 이렇게도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그녀와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몸에 새겨지도록 배워야 했다.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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