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그녀의 시간들

불행일까 다행일까

by 수 진

그녀는 언젠가부터 건망증이 심해졌다.

집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새로 산 물건들을 어디에 넣어두었는지,

오늘 아침 약을 먹고 나왔는지 그냥 나왔는지.

그저 노화로 인한 건망증 정도로만 생각했다.


어느 순간

주변 사람들이 자꾸

그녀보고 방금 전에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녀는 배가 고픈데 밥을 좀 전에 먹었다고 한다.

어느 날은 남편이 자식들이

전날 밤에 그녀가 혼자 나갔다가

집을 못 찾아 경찰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고

말을 한다.

그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녀도 너무 겁이 났지만

자식들 역시 겁이 났는 모양이다.

병원에 갔고 여러 검사들을 했다.


'알츠하이머성 치매'


그동안의 행동들이

이 한마디의 단어로 다 정리가 돼버렸다.

그날 밤

그녀는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고

또 가슴을 내리치며 몸부림을 쳤다.


"왜 내가.. 내가 왜!! 뭘 얼마나 잘못했다고!

어떻게 내가 이렇게까지 되어야 하는 거야 왜!"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었고, 너무 억울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던 것이다.

자신의 그 기구한 인생이 어찌 됐든,

기를 쓰고 살아보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이를 악물고 버티며 견디며 살아왔는데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기에

이토록 마지막까지 가혹한 것인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고

누구든 붙잡고 원망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그저 죄인이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며

미안하다는 말 이외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미안하네.. 내가 미안하네.."

그녀의 남편은

자신의 이 암담한 현실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는

그녀의 뒤에서 그저 무릎을 꿇고

같이 울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딸은 애써 엄마를 위로했다.


신의 선물일 거야 엄마...

그 모든 시간들을 다 기억하고 살라고 하는 것도

너무 가혹한 벌일 수 있어요.

잃어버린 시간들은 우리들이 다 기억하고 있으니

그냥 잊고 살아봐요...


그러나 그날 밤

딸의 하늘도 무너져 내렸다.

엄마의 기억들이 지워져 간다면

언젠가는 나도 잊혀버릴까...

이 무서움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또 다른 공포였다.


그녀는 모든 기억들을 다시 기억해 내려

애를 쓰다 다시 울부짖고 발버둥 치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러다 자신의 엄마가 그제야 생각이 났다.

내 엄마, 한국말도 서툴었던 내 어머니 하나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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