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어머니, 하나꼬
그에게서 버려졌다
아니.. 세상 속에 버려졌다
그가 없어진 이 세상의 공기는 너무도 매웠다
눈을 뜰 수도 없고 숨을 쉴 수도 없다
가야 한다고 했다 미안하다 했다
영원히, 남아있는 일생동안
옆에 있어준다 해놓고
내 손을 놓은 그 사람.
이제는 보내줘야 하는 걸 알지만
도저히 손을 놓을 수가 없다
잘 가세요
나 같은 건 잊고 행복하게 사세요
제발 가지 마세요
어찌 날 버리고 간단 말입니까
나 역시 잘 살아보겠습니다
눈만 감아도 당신과의 기억들이 가득한데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단 말입니까
나는 미쳐가겠지만
그래도 당신 세상은 평온하길 바랍니다
가끔씩만 내 꿈에 와주길 바랍니다
다시금 그 세상에서 같이 얼굴 마주하고픕니다
그러다
혹시 가능하다면
다음 생애에 한 번만 더 만나줄 수 있습니까
하나꼬는 절망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제는 내 나라에서
그와 함께 행복한 날들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하나꼬는
한국인의 이름을 버리고 일본 이름으로 살아갔다.
은행에서 일을 하던 중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던
한국 유학생을 도와주게 되었다.
한국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된다고 교육을 받으며
한국인임을 숨기며 살아가던 때였지만
그때만큼은 어떤 끌림에서였는지
일본말이 안 되어 곤란해하던 그에게
먼저 한국말로 다가갔다.
한눈에 봐도 부잣집 외동아들로
어려울 것 없이 자라온 밝은 청년이었다.
20대의 청춘 남녀는 서로를 마주 보며
둘만의 세상에서 꿈같은 봄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나꼬는 지금껏 자신이 한국인임을 들킬까
아니 조센징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을까
자신의 나라를 머릿속에서 지우며 살았으나
이때만큼은 같은 한국사람이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했다.
그는, 공부를 마치면
한국에 같이 들어가 결혼을 하자고 했고
그녀가 책임져야 했던 두 동생들도
같이 데리고 들어가자고 했다.
한국..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지만
항상 내 나라 나의 조국에 대한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주변 눈치 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고
그와 함께라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러나 부모 없이 동생 둘을 데리고 인사를 온 처자가
그 남자 어머니의 마음에 들리 없었다.
그는 다시 유학을 보내졌고
하나꼬는 그가 몰래 얻어준 방에서도 나와야 했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내 나라에 와서 처참하게 버려지고 나니
이제야 현실이 눈앞에 보였다.
일본에서는 조센징이었고
한국에서는 쪽발이었다.
하나꼬의 나라는 없었다.
그래도 두 동생들과 이 나라에서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슬퍼할 여유도 없이 그를 가슴에 묻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 하나꼬는
새 생명이 자신에게 와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동생들도 있었지만
이 아이를
아비 없는 자식으로 살아가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을 소개받았다.
나이는 많지만 점잖은 교육자집안의 사람이라고 했다.
하나꼬는 그를 마주하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에서 은행 일을 할 때 방문했던 집의 자제분이셨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직 혼자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참 좋으신 분이라 생각했었다.
해방 후 그분은 먼저 한국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하나꼬의 행방을 찾았었다고 했다.
하나꼬의 어떠한 상황이든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 약속하고
서둘러 결혼을 했다.
아이는 신기할 만큼 이 사람을 쏙 빼닮았다.
그렇게 하나꼬와 그녀의 아이는
새로운 울타리를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