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마지막 인사

감사합니다..

by 수 진

“지금 응급실 가고 있어. 아빠가 피를 토하고 쓰러지셨어”


일요일 저녁, 그녀는 딸에게 급하게 전화를 했다.

구급차를 불러서 가고 있는데

지금 받아주는 병원이 없고,

겨우 찾아간 병원은 남편의 상태를 보더니

더 큰 대학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다 하여

조금 멀리 떨어진 대학병원으로

다시 이동 중이라고 했다.


아들들도 병원으로 가는 중이었고.

해외에 살고 있는 딸은 서둘러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다음날 오전비행기를 예약했다고 했다.

딸은

제발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일 없기를 기도하며

뜬 눈으로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가면서

딸은 아빠에게 계속 전화를 했다.


“아빠 조금만 기다려야 돼 기다려 아빠 나 기다려”


아직 응급실이었고

그녀는 누워있는 남편의 귀에 전화기를 대주었고

남편은 눈물만 주르륵 흘리고 있었다.


택시기사님은 아무 말 없이

비상등을 켜고 급하게 달려주셨고

딸을 응급실 앞에 세워주셨다.

“최선을 다해 서둘러 온다고 왔는데 안 늦었기를 바랍니다 “


기사님의 따뜻한 위로의 말을 뒤로한 채,

딸은 병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응급실에 들어선 딸은 아빠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남편의 온몸에는 주렁주렁 여러 장치가 달려있었고

의식은 돌아왔지만 아직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겨우 검사가 진행되었고 결과는 참담했다.

남편의 몸 구석구석에 암이 퍼져있었다.


남편은 평생을 쉬지 않고 달려왔다.

쉬는 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달려왔다.

연이은 사업의 실패에도

밤낮없이 몰아치는 냉혹한 현실에도

오직 가족을 위해 견뎌냈다.


성인이 된 자식들이

각자 제 삶을 꾸려가기 시작한 후에도

남편은 멈추지 않았다.


"당신, 말년에는 꼭 편하게 해 줘야지"


이 말 한마디에 그의 모든 고단함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무게가 결국

무쇠 같던 남편의 몸을 무너뜨렸다.

시도 때도 없이 출혈이 났다.

운전하다가도 귀에서 피가 흘러

와이셔츠를 흠뻑 적시기도 했고

코피가 멈추지 않아 걸음을 걸을 수도 없었다.


결국 남편은 5년 전 암 진단을 받았다.

9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았고,

이후 수십 번의 항암 치료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항암 치료 후의 남편의 상태는

눈에 띄게 쇠약해졌다.

식욕도 없어졌고

한 번 기침을 하면 기침이 멎지 않았고,

쉽게 넘어지기도 해서 온몸이 멍 투성이었다.

예전의 태산 같던

아이들의 아버지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또 한 해가 지났고 작년 연말,

남편은 정말 이상했다.

걷는 것도, 숨 쉬는 것도 힘들어 보였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자식들이 병원에 같이 가보자고 해도,

끝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내가 병원을 가면… 너희 엄마 어떡하냐. 나는 병원 가면 입원하라고 할 텐데 엄마를 어떻게 혼자 두겠어... 혼자 둘 수가 없어.”


남편은 자신의 아내, 그녀 걱정에

당신은 도저히 병원에는 갈 수가 없다고 했다.

남편은 조용히 딸을 불렀다.


“옷장 정리를 좀 해줘. 엄마는 힘들어할 테니 딸이 좀 해줘”


늘 양복을 즐겨 입었던 그녀의 남편은,

연말에 한국에 잠시 쉬러 온 딸에게

그날따라 자신의 옷장 정리를 해달라고 했다.


“몇 벌만 남기고 다 버려. 이젠 입을 일도 별로 없을 텐데.”


딸은 이 말을 아무 생각 없이 흘려듣고

봄이 되면 새옷으로 사드리겠다 생각하며

아빠가 좋아하던 양복 몇 벌만 남기고

시원하게 옷장을 비웠다.


"아이고 좋다. 시원하다. 우리 딸 최고다 고맙다"


그리고 한 달 뒤,

그녀의 남편은

화장실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응급실에서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중환자실은 하루에 한 번

30분밖에 면회가 되질 않는다.

그 30분 동안 2명만 교대로 면회가 가능했다.

그녀와 식구들이 번갈아가며 면회를 했다.

남편은 약물로 인해 손과 발이 퉁퉁 부어있고

몸에는 더 많은 장치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딸.. 아빠 하루만 집에 갔다 오게 해 줘.. 엄마가 혼자 있을 텐데 아빠 하루만 가서 엄마약 챙겨놓고 다시 병원 올게. 하루만 나갔다 오자"


그녀의 남편은 면회 온 딸에게

하루만 나갔다 오게 해달라고 했다.

지켜보던 간호사가 지금 남편의 저 말이

현실을 인식 못하는 섬망증세라 했다.

그러나 딸은 아빠의 진심이라는 걸 안다.

의식은 돌아왔을지 모르지만

몸이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에

딸은 모른 척

꼭 붙잡고 있던 아빠의 손을

억지로 빼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날 저녁에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혈압이 떨어지고 호흡이 안 되고 있으니

기도 삽관을 해야 한다고..

그나마 그것도

일주일정도밖에 버틸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 일주일이 지나고

우리는

아빠에게 남은 시간이

단 하루라고 선고받았다..

다음날 30분의 면회 시간이

아빠와의 마지막 인사가 될 것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현실은,

소설처럼 정해진 결말을 향해 달려가지 않았다.


이렇게 순식간에

한 사람의 처절한 인생이 끝나버린다는 것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엄마의 절규를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마지막 면회 시간,

내 손을 꽉 쥔 아빠의 손이 너무도 따뜻하고 강했다.

아빠의 손을 잡고 또 잡고..

아빠의 얼굴을 수십 번 닦아 내고

아빠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나는 몸무림을 쳤다.

이렇게나 따뜻한데 이게 끝이라니

이렇게 보내라 하다니.


“아빠 아빠 어떻게 해 아빠 미안해 너무 미안해요.."


그리고 항상 우리에게 미안해하시던 아빠에게

이 세상 마치기 전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아빠가 계셔서 나는 너무 행복했어요. 고맙습니다."


입을 떼기도 힘든 아빠는,

고개를 힘겹게 끄덕였다.
그 한 번의 끄덕임이 아빠의 마지막 대답이었다.


그렇게 나의 아버지는

고달팠던 그의 인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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