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지금 응급실 가고 있어. 아빠가 피를 토하고 쓰러지셨어”
일요일 저녁, 그녀는 딸에게 급하게 전화를 했다.
구급차를 불러서 가고 있는데
지금 받아주는 병원이 없고,
겨우 찾아간 병원은 남편의 상태를 보더니
더 큰 대학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다 하여
조금 멀리 떨어진 대학병원으로
다시 이동 중이라고 했다.
아들들도 병원으로 가는 중이었고.
해외에 살고 있는 딸은 서둘러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다음날 오전비행기를 예약했다고 했다.
딸은
제발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일 없기를 기도하며
뜬 눈으로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가면서
딸은 아빠에게 계속 전화를 했다.
“아빠 조금만 기다려야 돼 기다려 아빠 나 기다려”
아직 응급실이었고
그녀는 누워있는 남편의 귀에 전화기를 대주었고
남편은 눈물만 주르륵 흘리고 있었다.
택시기사님은 아무 말 없이
비상등을 켜고 급하게 달려주셨고
딸을 응급실 앞에 세워주셨다.
“최선을 다해 서둘러 온다고 왔는데 안 늦었기를 바랍니다 “
기사님의 따뜻한 위로의 말을 뒤로한 채,
딸은 병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응급실에 들어선 딸은 아빠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남편의 온몸에는 주렁주렁 여러 장치가 달려있었고
의식은 돌아왔지만 아직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겨우 검사가 진행되었고 결과는 참담했다.
남편의 몸 구석구석에 암이 퍼져있었다.
남편은 평생을 쉬지 않고 달려왔다.
쉬는 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달려왔다.
연이은 사업의 실패에도
밤낮없이 몰아치는 냉혹한 현실에도
오직 가족을 위해 견뎌냈다.
성인이 된 자식들이
각자 제 삶을 꾸려가기 시작한 후에도
남편은 멈추지 않았다.
"당신, 말년에는 꼭 편하게 해 줘야지"
이 말 한마디에 그의 모든 고단함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무게가 결국
무쇠 같던 남편의 몸을 무너뜨렸다.
시도 때도 없이 출혈이 났다.
운전하다가도 귀에서 피가 흘러
와이셔츠를 흠뻑 적시기도 했고
코피가 멈추지 않아 걸음을 걸을 수도 없었다.
결국 남편은 5년 전 암 진단을 받았다.
9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았고,
이후 수십 번의 항암 치료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항암 치료 후의 남편의 상태는
눈에 띄게 쇠약해졌다.
식욕도 없어졌고
한 번 기침을 하면 기침이 멎지 않았고,
쉽게 넘어지기도 해서 온몸이 멍 투성이었다.
예전의 태산 같던
아이들의 아버지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또 한 해가 지났고 작년 연말,
남편은 정말 이상했다.
걷는 것도, 숨 쉬는 것도 힘들어 보였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자식들이 병원에 같이 가보자고 해도,
끝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내가 병원을 가면… 너희 엄마 어떡하냐. 나는 병원 가면 입원하라고 할 텐데 엄마를 어떻게 혼자 두겠어... 혼자 둘 수가 없어.”
남편은 자신의 아내, 그녀 걱정에
당신은 도저히 병원에는 갈 수가 없다고 했다.
남편은 조용히 딸을 불렀다.
“옷장 정리를 좀 해줘. 엄마는 힘들어할 테니 딸이 좀 해줘”
늘 양복을 즐겨 입었던 그녀의 남편은,
연말에 한국에 잠시 쉬러 온 딸에게
그날따라 자신의 옷장 정리를 해달라고 했다.
“몇 벌만 남기고 다 버려. 이젠 입을 일도 별로 없을 텐데.”
딸은 이 말을 아무 생각 없이 흘려듣고
봄이 되면 새옷으로 사드리겠다 생각하며
아빠가 좋아하던 양복 몇 벌만 남기고
시원하게 옷장을 비웠다.
"아이고 좋다. 시원하다. 우리 딸 최고다 고맙다"
그리고 한 달 뒤,
그녀의 남편은
화장실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응급실에서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중환자실은 하루에 한 번
30분밖에 면회가 되질 않는다.
그 30분 동안 2명만 교대로 면회가 가능했다.
그녀와 식구들이 번갈아가며 면회를 했다.
남편은 약물로 인해 손과 발이 퉁퉁 부어있고
몸에는 더 많은 장치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딸.. 아빠 하루만 집에 갔다 오게 해 줘.. 엄마가 혼자 있을 텐데 아빠 하루만 가서 엄마약 챙겨놓고 다시 병원 올게. 하루만 나갔다 오자"
그녀의 남편은 면회 온 딸에게
하루만 나갔다 오게 해달라고 했다.
지켜보던 간호사가 지금 남편의 저 말이
현실을 인식 못하는 섬망증세라 했다.
그러나 딸은 아빠의 진심이라는 걸 안다.
의식은 돌아왔을지 모르지만
몸이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에
딸은 모른 척
꼭 붙잡고 있던 아빠의 손을
억지로 빼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날 저녁에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혈압이 떨어지고 호흡이 안 되고 있으니
기도 삽관을 해야 한다고..
그나마 그것도
일주일정도밖에 버틸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 일주일이 지나고
우리는
아빠에게 남은 시간이
단 하루라고 선고받았다..
다음날 30분의 면회 시간이
아빠와의 마지막 인사가 될 것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현실은,
소설처럼 정해진 결말을 향해 달려가지 않았다.
이렇게 순식간에
한 사람의 처절한 인생이 끝나버린다는 것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엄마의 절규를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마지막 면회 시간,
내 손을 꽉 쥔 아빠의 손이 너무도 따뜻하고 강했다.
아빠의 손을 잡고 또 잡고..
아빠의 얼굴을 수십 번 닦아 내고
아빠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나는 몸무림을 쳤다.
이렇게나 따뜻한데 이게 끝이라니
이렇게 보내라 하다니.
“아빠 아빠 어떻게 해 아빠 미안해 너무 미안해요.."
그리고 항상 우리에게 미안해하시던 아빠에게
이 세상 마치기 전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아빠가 계셔서 나는 너무 행복했어요. 고맙습니다."
입을 떼기도 힘든 아빠는,
고개를 힘겹게 끄덕였다.
그 한 번의 끄덕임이 아빠의 마지막 대답이었다.
그렇게 나의 아버지는
고달팠던 그의 인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