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제 시작

by 수 진

그는 아버지를 따라 철도 공무원이 되었다.

그러나 성실했던 아버지와는 달리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는

'한방'을 찾아 헤맸다.


어릴 적부터 여자아이냐고 물을 정도로

예쁘장한 외모에

눈물도 많고 정도 많았던 이 아이는

자신의 집안에 대해 자신이 없던 탓일까

항상 자신감이 없었다.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어린 그에게는

가장 힘든 약점이었다.


어렴풋이 자신을 안아줬던 엄마의 온기가 기억이 난다.

하지만 얼굴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누나는 아마도 엄마의 얼굴은 알고 있겠지.

엄마가 나간 후부터

그의 집 안에서는

'엄마'라는 단어는 금기어였다.


그는 머리가 좋아

학창 시절 내내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집안의 어떠한 지원도 받을 수 없는 것을

일찌감치 알았기에

대학진학보다 다른 빠른 길을 찾고 싶어 했다.


'내가 돈이 많아지면 엄마가 찾아올까'

막연히 돈만 많으면

자신의 이 컴플렉스도 다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돈이 많아지면

행복이 따라올 것이라 생각했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철도 공무원이 되었지만

지루한 일상과 쥐꼬리만 한 월급

이 삶이 너무 답답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에는 비밀로 한 채 사표를 냈다.

그를 잘 알고 있던 몇몇의 사람들이

그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언변에 감탄하며

사업을 같이 하자고 바람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불법적인 일은 절대 없으며

하나만 잘 풀어내도

먹고 사는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일 년에 두세 건만 해도

남부럽지 않은 생활이 가능하다며

그의 마음을 들쑤셔 놓았던 것이다.


‘그래, 공무원으로 뭘 얼마나 잘 살 수 있겠어. 내 거 내일을 하는 거야 ‘

그는 모아둔 돈도 별로 없었지만

그를 부추기던 사람들은

돈은 걱정 말라며

그저 앞장서서 일만 따오면 된다고 했다.


그의 이름으로 법인 회사가 생겼고

명함에는 ‘대표이사’라는 직함이 새겨져 있었다.

그를 부추기던 몇몇의 사람들이

그를 대표로 내세우고

거액의 돈을 투자하며

일의 속도를 붙여나가기 시작했다.

이름만 들어도 다들 알만한

굵직한 기업의 책임자들을 소개받았고

같이 리조트부지를 보러 다녔다.


이제 막 서른이 넘은 이 젊은 대표이사는

활동비 명목으로 돈을 써대기 시작했다.

어릴 적 힘들었던 대가를 이렇게 일찍 보상받는구나

그는 살맛이 났다.


그의 누나는 이런 동생의 행보가 아슬아슬했다.

맘을 졸이다 겨우 한마디 물어봤다.


“누나는 다 잘되고 있는데 왜 자꾸 초를 치는 거야 진짜! 다 유명한 사람들이고 베테랑인 사람들이라고!”


“그래도 경철아.. 아니 우진아.. 아무것도 없는 너한테 이렇게까지 해주는 건 너무 걱정스럽잖아.. 세상은 그렇지 않거든.. “


그는 자신의 지긋지긋한 어린 시절을 지우기 위해

이름까지 바꾸어버렸다.

그러면 새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던 모양이다.


우진은 지금까지 꾸었던 꿈 중에서

정말이지 가장 행복한 꿈 안에 들어가 있는데

누나의 걱정 따위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아무것도 없긴! 내 계획서에 다들 입을 쩍 벌리고 있다고! 누나는 진짜..‘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누나가

자기를 믿어주지 않는 게 너무 서러웠다.

겨우 두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누나지만

우진이 기억이 나는 그때부터 누나는 엄마였다.

사무실로 돌아온 우진은

누나의 그 걱정 어린 한마디가 어찌나 서러웠는지

다시 또 아이처럼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가며

엉엉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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