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어느 봄
계엄군과 시민들이 금남로를 꽉 메우고 있었다.
무방비상태로 쓰러져가는 사람들과
그들을 부둥켜안고 울부짖는 절규소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다시 무자비하게 짓밟던
계엄군의 발길질 소리.
이 무시무시한 소리들에 그대로 노출된 아이들은
겁에 질려 입을 틀어막으며
이불 속에 들어가 버렸다.
어제와는 너무 다른 일요일 저녁 시간이었다.
행여라도 저 말도 안 되는 전쟁터로 나간다 할까 봐
자신들의 아들들과 남편들의 앞을 막아서는
어머니들과 아내들의 울음 섞인 애원이
컴컴한 골목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의 어머니는 만삭의 몸으로
남편의 방 문을 닫고 그 앞에 앉아 버티고 있었다.
"안돼! 절대 나가면 안 돼!"
한 소리 더 하려던 참이었는데
무언가 발 밑으로 물이 쏵 쏟아져 내려왔다.
양수가 터졌다.
하필.. 지금..
아이가 나오려고 한다.
허나 지금 병원을 갈 수가 없다.
다닥다닥 붙어있던 그 컴컴한 동네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나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리가 뒤틀리는 진통에서도
신음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르지 않던 그녀는
몇 시간이 지나자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사이렌 소리에 다시 정신이 들었는지
마지막 온 힘을 다해
그녀의 가슴팍까지 올라붙은
이 아이를 있는 힘껏 밀어냈다.
1980년 5월 18일 모든 소리가 뒤엉키는 밤,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그가 태어나고 다섯 살이 될 무렵
그의 엄마는
집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