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보일 용기
2021년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글쓰기를 좋아해 종종 끄적였지만, 쓴 글을 내보일 마땅한 플랫폼을 찾지 못하던 시기이다.
브런치를 알게 된 지 두 해가 지나 '브런치 작가' 타이틀을 탐내게 되었고, 얻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억력이 좋지 않으므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전 일기나 블로그, 아이폰 메모장을 열어 단어 혹은 문장들을 참고하곤 했다. 몇 개의 단어, 문장 단위의 쪽글은 분량을 보태어 브런치 단편이 되었다.
작년 독립출판으로 산문집 <봉인해제>를 출간하며 브런치의 글을 모두 내렸다. 책으로 한 권어치 털어내고 나니, 브런치에 올렸던 글들이 떫고 썼기 때문이다. 생생한 날 것들에서 나는 풋내가 풍기는 것만 같아 부끄럽고 숨기고만 싶었다. 발행 취소는 얼마나 쉽던지. 버튼 하나면 글을 발행했던 걸 없던 일처럼 되돌릴 수 있었다. 게다가 브런치에서 접할 수 있는 글이 담긴 책이라면, 책을 구매하는 분들께 예의가 아니라는 근본 없는 걱정까지 했다.
4월 11일부터 책방밀물에서 진행되는 50일 글쓰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막상 판을 벌여 글을 쓰자니 할 말이 없었기에, 지난 습관처럼 글감을 찾기 위해 오랜만에 브런치에 로그인했다. 꽤 여러 편의 글들이 발행되고 또 취소된 채로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내가 이렇게 쓰는 사람이었구나' 떠올리며 몇 편을 다시 읽었다. 직장과 관련된 글을 읽을 땐 '열심히도 살았네' 싶어 웃음이 나고, 퇴사를 준비하며 쓴 글에서는 회사 밖 삶을 되찾겠다는, 탐험가를 닮은 결연함이 묻어난다. 고양이를 대상으로 쓴 글에는 반짝이는 애정과 사랑이 흘러넘친다.
글을 몇 편 읽다가 결국 발행 취소한 글을 일부 다시 발행했다. 같은 주제의 글을 지금 더 잘 쓸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과거의 내가 쓴 글을 종이책에 수납한 채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회사 다니며 쓴 글, 퇴사 직후에 쓴 글, 그리고 모모가 살아있을 때 쓴 글. 지금은 결코 그때처럼 쓸 수 없단 확신이 들었다. 과거를 지우고 덮으려 말자. 쌓아두고 먼지를 털고 자주 꺼내봐야지. 까보일 용기를 내자. 어느새 미래의 내가 되어, 약간 더 청년에 가깝던 날의 글을 다시 읽으며 되뇌어본다.